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 K Jan 25. 2022

스페인의 삶의 질

스페인은 실제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가?

우리는 보통 GDP(국민총생산)를 통해 특정 국가의 경제 수준을 파악한다. GDP가 유용한 지표임에는 틀림없지만 모든 경제적 실체와 보이지 않는 삶의 질까지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GDP는 일정기간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합한 값이기 때문에 시장을 통해 거래되지 않는 여가, 자연환경, 근로시간, 인간관계 등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들이 배제되는 단점이 있다.  


IMF가 2021.10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스페인과 한국의 세계 GDP 순위는 각각 14위, 10위 였다. 1인당 GDP 도 스페인 $30,536, 한국 $35,195로 한국이 조금 더 높았다. 비록 GDP 수치는 우리보다 낮지만 스페인은 GDP 가 미처 반영하지 못하는 '삶의 질'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질적인 풍요와 더불어 정신적인 행복과 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삶의 질'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높은 삶의 질은 해외 투자 및 인재 유치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실제 스페인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일까? 각종 지표들을 통해 스페인의 숨은 경제적 가치인 '삶의 질'을 측정해 보자.


스페인 삶의 장점 

주관적 측면이 강한 '삶의 질'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러 기관들의 평가들을 통해 전반적인 생활수준과 스페인 생활의 장단점을 파악해 볼 수 있다. OECD는 2년마다 '삶의 질 보고서(How's life?)' 를 통해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 BLI)'를 발표하는데, 동 지수는 삶의 질을 측정하는 데 있어 가장 공신력 있는 지표로 알려져 있다. 경제・환경・건강・사회적 관계・안전・지식역량 등 다양한 측면에서 얼마나 물질・비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측정한다. 2020년 종합 지수 순위에서 스페인은 전체 조사대상국 40개국 가운데 한국보다 11위 앞선 19위를 기록하였다. BLI 지수는 11개 분야 24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11개 분야]

물질적: 주거, 소득, 직업

비물질적: 공동체, 교육, 환경, 시민참여, 건강, 삶에 대한 만족, 안전, 일과 삶의 균형


스페인은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 '건강', '안전', '공동체'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고용, 교육 부문은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①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

스페인은 전체 11개 분야 중 '일과 삶의 균형' 부문에서 가장 높은 순위인 4위를 기록하였다. 많은 업무량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에게 '삶의 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 이다. 하루 일과 중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이지만 삶의 모든 의미를 그곳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개인적 자유시간을 보장받는 것이 필요하다.   


스페인의 풀타임 근로자들은 하루 중 OECD 평균보다 1시간가량 더 많은 평균 15.9시간을 여가, 사교 등 개인적 돌봄에 할애하고 있었다. 필자가 체감하기에도 스페인에는 직장 외 개인 생활을 최대한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직장생활과 개인생활이 잘 구분되어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각자의 개인생활을 각종 사교활동이나 취미활동으로 채운다. 덧붙이자면 스페인은 1년에 근무일 기준 22일 또는 자연일 기준 30일의 유급휴가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전체 근로자들 가운데 장시간 근무자 비중 역시 OECD 평균 1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에 불과했다.


노후빈곤률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상당수의 노인들이 정년을 넘어서도 생계유지를 위해 일하고 있다. 반면, 스페인의 노인들은 탄탄한 국민연금과 무상의료를 바탕으로 노후를 안락하게 보내고 있다.  인구 노령화와 저성장 고착화로 현 국민연금 제도의 장래는 점차 불투명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삶의 질을 유지시켜 주는 핵심 버팀목 중 하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② 건강

스페인은 대표적인 장수국가다. 스페인 국민의 기대수명은 83.4세로 일본, 스위스에 이어 3번째로 OECD 평균보다도 3세 가량 높았다. 2018년 영국의 더 타임즈(The Times)지는 심층보도를 통해 스페인 사람들이 장수하는 7가지 비결로 △간단한 산책 △붉은 포도주를 곁들인 지중해식 식단 △식사 후 오수 △많은 휴식 △행복한 단어 사용 △간단한 저녁 식사 △몸에 좋은 (토마토, 올리르 오일 등) 음식물 섭취를 꼽은 바 있다. 주관적인 내용이지만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중도 OECD 평균 69%보다 높은 72.4%를 기록하였다. 32.5%로 최하위를 기록한 우리와 대조를 이뤘다. 스페인은 무상의료 시스템을 통해 국민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③ 안전

스페인은 치안이 우수한 나라 중 하나이다. 세계적인 관광대국으로 수천만 명의 해외 관광객이 방문하기에 소매치기와 같은 경범죄가 많이 일어나지만 신변에 위협을 느낄만한 강력 범죄로부터는 안전하다. 주요 관광지나 번화가에는 항상 경찰이 있고, 외국인들에게도 친절한 편이다. 한 나라의 치안상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바로 살인율인데 스페인의 10만명당 살인율은 0.6명으로 OECD 평균 3.7명보다 현저히 낮았다. 또한, 국민의 82%가 밤에 걸어다니는 것도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응답하는 등 대부분 자국의 치안상태에 안도감을 표출하였다.


④ 공동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 및 그들과의 관계는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 기쁘거나 슬플 때 강한 사회적 유대관계는 여러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하는 지지대 역할을 하고,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 다양한 기회가 유발된다. OECD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주변 사람이 있는지 여부를 통해 공동체의 질을 평가하였다. 스페인의 경우 도움을 청할 주변인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OECD 평균 89%를 상회하는 93.4%로 높았다. 우리나라는 동 항목에서 78%로 40개국 가운데 최하위의 불명예를 떠안았다. 적어도 스페인 사람들이 우리보다는 덜 외롭게 살고 있었다.


스페인 삶의 단점  


① 직업

직장은 개인적인 자아실현 및 소득의 원천이 되는 장소로 물질적 풍요를 책임지는 기본 요소이다.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스페인은 직업 분야에서 40개국 중 36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전체 11개 평가 분야 중 제일 저조한 성적이다. 열악한 고용사정은 스페인 경제의 최대 약점으로, 2021.3분기 기준 스페인의 실업률은 14.1%로 EU 회원국들 중 가장 높았다.


    [2021년 3분기 기준 EU 주요 국가별 실업률 현황]

출처: 유로스탯(Eurostat), 2022.1월


15~64개 샹산가능인구 가운데 유급 근로자 비중은 OECD 평균 68%에 6%p 못 미치는 62%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1년 이상 장기실업자 비중도 7.7% 로 OECD 평균 1.8% 대비 4배 이상 높았다. 장기실업에 빠지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삶에 대한 의욕이 꺾일 확률이 높다. 스페인 정부도 고용창출을 경제회복의 제1 우선순위에 두고 고용사정을 개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② 교육

우수한 인재는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다. 우리가 반세기 남짓한 시간에 이뤄낸 한강의 기적도 뜨거운 교육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교육은 현재의 삶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스페인은 교육 분야에서도 40개국 중 31위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25~64세 인구 중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인구 비중은 59%로 OECD 평균(78%)과 큰 격차를 보였다. 경제활동인구의 교육수준이 낮으면 취업경쟁력과 생산성도 낮을 가능성이 크다. OECD는 3년 단위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실시하여 15세 학생들의 수학,읽기,과학 등의 수학능력을 국가별로 비교하고 있다.  2015년, 2018년 평가 결과 스페인 학생들의 수학, 과학 수학능력은 OECD 평균보다 낮았다.

출처: OECD  '2015, 2018 PISA  보고서'
출처: OECD2020 삶의 질 보고서


3.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준비상태

OECD  '삶의 질 보고서(How's life?)'는 현재 삶의 질뿐만 아니라 미래에 나은 삶을 위한 국가의 자원 상태도 발표하고 있다.  2020년 보고서는 자연자본, 경제자본, 인적자본, 사회자본으로 나눠 분석하였는데 취약한 정부 재정상태, 청년들의 낮은 교육성취도, 정부에 저신뢰 등이 미래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분류되었다.

출처: OECD '2020 삶의 질 보고서'
외국인이 생각하는 스페인 생활은?

스페인의 생활수준을 판단하는데 있어 스페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평가도 의미있는 근거자료가 될 수 있다. 전 세계인들이 자국과 비교하여 의견을 제시하기에 정보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세계적인 금융그룹 HSBC는 매년 세계 해외주재원들을 대상으로 '해외주재원 설문조사(Expat Expoler Survey)'를 진행한다. 해외 주재원들의 인식에 관한 조사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걸쳐 생활 전반에 관한 만족도를 묻는다. 전 세계 160여개국 18,000여명의 주재원들이 참여했던 2019년 조사에서  스페인은 세계에서 4번째로 주재원이 살기 좋아하는 나라로 꼽혔다. 특히, 스페인은 총 15개 세부항목 중  '삶의 질', '신체 및 정신건강' ,' '일과 삶의 균형', '적응 용이성', '인간관계 형성' 등에서 최상위권에 들었다. 반면, 커리어 개발 항목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해 앞선 OECD 보고서 내용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외국인들은 스페인에 살면서 그들은 이전보다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개방적이고 친절하며, 스페인 내 도움이 될만한 외국인 네트워크도 잘 형성되어 있어 적응이 수월하다고 응답하였다.  


[스페인의 2019 HSBC 해외주재원 설문조사(Expat Exploer Survey) 결과]

 출처: 2019 HSBC  Expat Exploer Survey


세계적인 주재원 커뮤니티인 독일의 인터네이션스(InterNations)도 매년 '주재원 인사이더(Expat Insider)보고서'를 통해 주재원 생활과 관련된 여러 지표들의 순위를 발표한다. 스페인은  '삶의 질' 지표에서  2019년 2위, 2021년 8위로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다. 반면, '해외근무' 지표에서는 2021년 59개국 가운데 51위로 부진하였다. '삶의 질' 세부 항목 중에서 여가와 건강부문이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외국인들은 스페인의 여가 환경을 세계 최고로 인정하였다.


살기 좋지만 일하기 쉽지 않은 나라 스페인

많은 한국인들이 스페인을 삶의 질이 높은 살기 좋은 나라로 인식한다.  원래 남의 떡이 더 커보이기 마련인지라 한국이 유독 취약한 일과 삶의 균형과 사회적 관계 부문에서 스페인이 강점을 보이고 있기에 더더욱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스페인은 개인적인 여가, 건강, 인간관계 등 비물질적 측면에서 우수한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경제적 기반이 되는 직업이나 커리어 개발 면에서는 분발이 요구된다. 한마디로 살기는 너무 좋지만 일하기는 쉽지 않은 나라 정도로 요약된다. 자국 인구의 2배 가량(*) 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해마다 스페인을 방문하는 이유도 결국 스페인이 살기 좋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독일, 영국 등 부유한 북유럽 국가 국민들이 은퇴 후 스페인에 터를 잡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한 해 스페인 방문 외국인 관광객은 8,350만 명을 기록한 바 있음. 


가장 개선이 시급한 부분은 역시 취업과 교육 분야였다.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는 이상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 주는 양질의 직장이 많아져야 국민들의 삶도 윤택해진다. 당장 직장이 없으면 건강을 챙기고 여가를 즐길 여유도 없어지기 마련이다. 지금의 안정적인 치안과 사회적 안전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직장이 많이 생기고 세금을 내는 인원도 늘어나야 한다.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직장을 구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미국, 영국과 달리 스페인에서는 질 좋은 일자리는 거의 스페인 자국민이 차지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가 중요하다 보니 많은 일들이 관계에 따라 처리되는 경향이 있는데 구직시장에서의 취업도 객관적 시스템 보다는 주로 인맥을 통해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취약한 취업환경이 회복되어 스페인 국민들의 삶이 더욱 윤택해지기를 바란다. 


el.K



작가의 이전글 스페인 경제의 족쇄, 공공부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