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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Oct 12. 2024

이혼의 사적인 기록_분실사고

#_내 마음도 모르면서



잃어버렸어, 아니 사라졌어. 언제 어디로 사라진 줄도 모르고
나는 빈껍데기로 살았잖아, 엉터리네.




화내는 방법을 잊었을까?

화낼 타이밍을 매번 놓친다. 어느새 나는 뒷북을 치는 사람이 되어있다.  

“왜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이래? “


그때는 말이야, 내가 말하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만 같아서 침 삼키듯이 눈 한번 질금 감았어. 근데 내 마음은 내 생각보다 옹졸한가 봐. 자꾸 마음이 보채.

‘네가 그때 말을 안 해서 지금 내가 아프잖아. 왜 날 무시해? 나는 네가 소홀해도 되는 존재가 아냐! 날 좀 들여다봐달라고.’ 내가 나한테 너무 했나 하는 순간이 있어. 그때 서러움이 터져 나와. 멍텅구리가 되곤 하지.


마음의 소리는 심연으로 가라앉고, 말을 잃은 나는 긴 숨만 쉬고 있다.




X에게는 내가 언제나 여중생 동생이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나지만, 그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참견해야 하는 어린애였을까? 그렇게 느끼게 한 것이 나일까? 아니면 그의 사랑법일까?

막내가 초등 3학년이 되기까지 우리는 모두 그의 손바닥 위에서 살았다.

우리가 그 손바닥을 벗어나려는 시점에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겨났다.


“마트 가자!”

“난 집에 있을래!”

“가자! 다 같이 가야지!”


“밥 먹으러 가자!”

“난 생각이 없어. 집에 있을래!”

“나와!”


아이들의 사생활이 생기면서 아빠와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느 집이나 아이가 커가면서 흔히 있는 일이다.

아이들을 하루라도 빨리 자립시키고 싶었던 나에게는 반가운 상황이었지만, 그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족이므로, 우리는 늘 함께해야 한다.


"본래 부모 자식은 멀어져야 하는 관계고, 부부는 가까워져야 한대. 아이들 키우느라 우리 둘이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잖아. 뭘 해도 늘 넷이었지. 그러니까 이제 우리 둘의 시간을 갖자!"

나만의 생각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의 불편함을 견뎌내야 했다.

소소한 갈등이 반복되면서 각자 방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는 우리가 서로 각각의 풍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하나의 풍선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시소를 탔다.

내가 불행하면, 그가 행복하고

그가 불행해야 비로소 내가 행복을 향한다.


내가 결혼에 갇혀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 지키고 싶었던 것 역시 가족의 행복이었다. 함께, 또 따로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 가며 서로의 행복을 지지하는 가족,

내 옆에 있는 사람의 행복이 중요했던 나의 시소는 멈췄다.

그리고, 나는 '나'로서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잃었다. 아니, 나 자신을 잃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색, 음식, 배우... 모든 것이 흐릿해지면서 나는 무채색의 사람이 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사라진 줄도 모르는 나를 찾을 방도도 없이 속 빈 강정처럼 엉터리가 되었다.

자기 마음도 모르는 엄마가 아이들은 본인과 다른 삶을 살기 원하는 것은 순 엉터리다. 엄마로서 스스로를 구하는 게 아이들을 구하는 길이다.


첫사랑이 끝나가고 있었다.




지금 하는 이혼 후기

딸들은 엄마의 감정을 날것 그대로 느끼는 듯하다. 확실히 아들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집안 분위기 때문에 딸이 불안해 할 수 있어 제일 먼저 딸에게 나의 결심을 말했다.

"엄마가 뭐든 다 얘기해 줄게. 너에게 말하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지 말고 너도 뭐든 엄마한테 말해줘."

나는 마치 상사에게 보고하듯이 진행 상황을 딸에게 늘 보고했다.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부모의 이혼에 있어 아이들은 애초에 본인들의 의사결정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하지 않으면 이혼하지 않겠다고, 마치 '너도 의사결정권이 있어'라는 듯이 말하였지만, 어쩌면 거짓말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엄마가 이혼했으면 좋겠어."

"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혼하면 행복일까?"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살아. 그럼 행복해지겠지."

"엄마는 행복보다, 확실한 불행을 피하고 싶어. 너 나중에 연애하고 결혼도 하고, 엄마가 이혼하면 너에게도 피해가 있을 수 있어."

"그런 걸로 문제 삼으면 이상한 사람이지. 좋은 필터가 생겼네."


아이가 바란 것은 부모의 행복이었다. 부모만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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