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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Oct 13. 2024

이혼의 사적인 기록_딸에게

변명의 낯을 한 반성문

너의 시작은 사랑이란다




사랑하는 딸!

토론토에 눈이 많이 왔다는 소식에 걱정이 된다.

집에 고립된 건 아닌지, 장은 넉넉하게 봐 두었는지, 혼자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중이다. 지난번처럼 길에서 넘어지는 일 없도록 꼭 부츠를 신도록 해.

잔소리 듣는 게 싫어서인지 너는 전화를 안 받네.

너와 떨어져 지낸 지도 벌써 2년인데, 지난여름방학 때 살이 쏙 빠져서 온 널 본 후로는 걱정이 더 늘어난 것 같다. 이런 불안도 적응해야겠지?


너 유학 떠나기 전, 당시 너와 나 둘의 대화는 대부분 ‘이혼’에 관한 것이었어.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이었는데, 이혼은 아니더구나. 나의 문제이지만, 모두에게 미치는 일. 그렇기에 이혼을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너와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 그래서 너에게 약속했지.

“네가 모르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뭐든 항상 너에게 제일 먼저 얘기할게.”

지금 생각하면 너에게 큰 부담을 준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려

그냥, 눈치가 빤한 네가 알 수 없는 일들로 불안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어.


엄마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네가 해준 말들을 떠올리곤 해.

너 첫여름방학 때, 엄마랑 둘이 갈비탕 먹으러 갔다가 너희들 걱정에 이혼 결정을 못 하고 있던 엄마에게 네가 말했어.

“엄마가 이혼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혼하면 행복할까? 행복이 뭐야?” 내가 물었어.

그리고 덧붙여 말했지.

“엄마는 이혼이 행복을 가져다줄 거로 생각하지 않아. 다만, 확실한 불행을 피하려는 거야.”

이혼은 엄마에게도 참 두려운 일이었어.

그때, 네가 참 심플하게 정리하더라.

“엄마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그게 행복이지 뭐야.”

너의 말이 참 든든하고, 고마웠어. 엄마는 항상 기억하고 있단다.

그래, 맞아. 그거였어. ‘하고 싶은 거’ 그걸 잊고 산 거야. 엄마가 원하는 것, 하물며 느끼는 감정마저도 아빠의 해석을 그대로 믿었으니, 당시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인지, 내가 원하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어. 돌이켜보면, 엄마와 아빠는 어떤 것도 서로 통하고 있지 못했던 것 같아. 보이는 것만 보려는 아빠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 준 엄마. 잘잘못 둘 모두에게 있거나, 둘 모두에게 없는 듯하다.




오늘은 엄마, 아빠 사랑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펜을 들었어.

이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 이유는, 이혼이 너의 존재 자체를 불안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야. 너는 분명 사랑의 결실이고, 나는 그 부분이 참 뿌듯한데 그 이야기를 못 해준 것 같아. 그래서 너에게 알려주려고. 너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


엄마 나이 열네 살에 생애 처음으로 좋아했던 남자가 너희 아빠야. 너무 어린 나이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때 엄마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다 했던 것 같아. 지금의 특수교사 일도 그때 결정했으니까. 나이는 때론 주관적이단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면, 엄마가 먼저 아빠를 쫓아다녔어. 같은 독서실을 다니면서 아빠가 밥 먹으러 나가는 시간을 알아내 일부러 우연인 척 너희 아빠 앞에 ‘짜잔’ 등장해 버렸지.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사귀기 시작했고, 꽤 풋풋했어. 주로 돈가스를 먹으며 만났고, 엄마가 말이 많잖니? 그때도 그랬어. 엄마는 주로 말하고 아빠는 주로 들었지. 그렇게 1년을 사귀다가 엄마가 고3이 되던 해에 아빠가 군대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어.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았지.

연락이 끊어진 후에도 아빠는 엄마 학교로 연말이면 카드를 꼭 보내줬어. 그것 때문이었을까? 다른 사람과는 연애를 못 했지 말이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친구들이 불러낸 술자리에 너희 아빠가 있더라.

당시 엄마는 학생회 일로 외할머니 몰래 휴학 중이었어. 그때는 뭐가 그렇게 힘든지 늘 심각하고, 무거운 얼굴로 다녔지. 그렇게 엄마가 많이 약해져 있을 때 너희 아빠를 다시 만나게 된 거야. 그래서였을까? 엄마가 아빠를 많이 의지했고, 세 살 많은 아빠는 오빠처럼, 아빠처럼 엄마를 잘 챙겨줬어. 3년의 연애 후에, 우리는 결혼했지. 첫사랑을 이룬 거야.


이렇게 네가 시작된 거야.

너는 분명 사랑에서 왔어. 이 사랑의 결말이 이혼으로 끝났더라도, 그 사실은 변치 않는단다. 다만, 그 사랑을 잘 가꾸지 못해 엄마로서 미안하다.

첫사랑, 이 긴 연애에 너희 오빠와 네가 있어 참 좋았다.




인생은 시행착오의 연속이란다. 엄마도 그 연속선 위에 있어.

이 시간을 통해서 조금 더 단단해지겠지. 엄마도 여전히 크는 중인 것 같아.

모든 것을 알아주고, 잘 견뎌줘서 고맙다. 오늘 들려준 너의 시작을 잊지 마.      




그리고 말이야,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

살다가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말이지, 엄마라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걱정된다는 이유로 제일 앞장서서 너의 길을 막아서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짙어.

그러니 엄마를 꼭 조심하렴.

네가 어떤 도전을 하든 걱정과 불안은 엄마의 몫으로 해볼게. 네가 유학하러 가겠다고 했을 때도 엄마 잘 참아냈잖아.

앞으로도 되도록 막아서는 사람이 아니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보고 싶은 딸, 끼니 잘 챙기고! 전화는 꼭 받자!


                                                                                                        -사랑하는 엄마

                                                                                                           



추신: 밥 해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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