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 Sep 30. 2024

이혼의 사적인 기록_괴물의 탄생

#_직업이 아니라면 괜찮을지도 몰라

 

아내라는 직업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내 주 직함은 아내에서 며느리로, 그리고 엄마로 수시로 변동되었다.     

직함에 따른 업무분장에 대헤 어쩌다 발언 기회를 얻더라도 대부분 묵살이다.

억울할 때 편이 되어 주는 든든한 노동조합도 없다. 커뮤니티는 있지만, 주로 하소연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물론 그 안에서 무릎을 ‘탁!’ 칠만한 해결책을 제안받기도 하지만, 실무 적용 시 무용(無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 집에서는 통한 게, 우리 집에서는 안 통한다.

그만큼 ‘한 가정’이 갖는 변수들이 많다.     


결혼이라는 게 억울한 면이 있다.

한 사람을 사랑했고, 헤어지기 싫어 결혼했더니 이 사람 저 사람 나를 수족처럼 부려 먹는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업혀 들어간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발로 위풍당당 식장을 걸어 들어갔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맹세까지 해버리는 실수를 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둘이 카약을 타고 강 한가운데에 가서 속닥속닥, 소곤소곤 조용히 새끼손가락 걸고 하겠다. 얼마나 약한 마음이면 그렇게 요란하게 맹세하냔 말이다. 그런 약해빠진 마음이라면 그냥 안 하고 말겠다(이혼했으니까 하는 말).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니 나만 사랑하던 남자는 남편이 되어있고, 딸처럼 아껴주시겠다던 어머님은 딸이 없으셔서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모두가 각자 자기 자리에서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담당한다.

내가 결혼 후 처음으로 배치받은 자리가 ‘아내’이고, 이 일에는 부수적으로 며느리가 따라붙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잘 해내자 마음먹는다.

퇴근하면 다시 출근이다.

금요일, 퇴근 후 출근길 시장에서 장을 봐 멀리 지방에서 올라오고 있는 남편의 식사를 준비한다. 오징어 눈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 미끄덩 손에 잡히지 않는 오징어를 붙잡고 다리를 잡아 뽑는다. 검지로 눈을 후벼 파 잡아 뺀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오징어볶음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준비한 한 상. 반찬들을 예쁜 접시에 담는다. 일주일 만에 만난 남편은 식탁 앞에 앉았다가 식탁을 훑어보고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달걀후라이를 한다.

그리고 달걀후라이와 맛있게 밥을 먹는다.

오징어의 숭고한 희생을 생각하니, 괜한 짓을 해 오징어도 나도 상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와! 이 오징어볶음 당신이 한 거야? 너무 맛있다. 잘 먹을게! 고마워!”

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아겠다는 마음의 소리를 내어본다.

“너 피곤한데, 전화는 매일 안 해도 돼! 그리고 주말에도 오지 말고 집에서 쉬어!”

라는 시어머니의 말은 어땠을까?


아내라는 직업은 좀처럼 매력을 찾기가 힘들다.

좋은 직장이라고 꼬셔도, 그 사람 말만 믿지 말고 꼭 직접 확인하자. 꼼꼼하게.

그리고 되도록 식장에는 업혀서 입장하자. 그래야 나중에 내가 내 발등 찍었다며 한탄하는 일은 좀 줄 테다.

그러니 부디 결혼을 결심한 상대가 평생 팀원으로서 괜찮은지 꼼꼼하게 살펴라.

그리고, 결혼 후 주어진 역할을 매일 학습지 하듯이 해나가지 말고, 지붕 아래 함께하는 사람을 보자.

내가 가족을 위해 했던 희생과 노력, 그 안에 갈아져 들어간 ’나‘를 생각한다.

아까운 나.

날 먹잇감 삼아 자란 괴물은 반드시, 나를 잡아 삼키게 될 것이다.

집에 괴물이 살고 있는가? 그 괴물을 키운 용의자는, 아마도 당신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하는 이혼 후기      

잘해보겠다는 큰 다짐이 일을 망친 것 같다. 그냥 적당히 대충했더라면 상처도 덜 받고, 괴물도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거절을 잘 못 하는 분들은 안타깝게도 ’아내‘ 역할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아마도 그 집에는 엄청난 괴물이 자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때의 내 거실로 돌아간다면 장기하의 “그건 니 생각이고” 노래를 하루 종일 틀어놓겠다.     


너가 나로 살아봤어?

아니잖아! 아니잖아! 어? 어?

-[그건 니 생각이고], 장기하    

 

착한 사람일수록 주변을 나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남에게 말고 나에게 먼저 착한 사람이 되어 주자. 때로는 그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이전글 이혼의 사적인 기록_엇나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