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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 Oct 27. 2024

명상록

어느 날의 제주일기

명상할 때는 생각이 빠져나가게끔 두는 게 좋지만, 생각이 빠져나가지 않고 생각에 대한 판단을 계속한다면, 그 판단으로 만들어진 내가 진정 나인가 되묻는다.

몸이 뜻대로 안돼도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아침에는 누구나 굳고 몸이 안 움직여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미 일어난 일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몸을 너무 미워말라.

지나온 과거나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생각을 붙들지 않고 저편에 보낸다. 그래야 현존하는 내가 된다.

같은 책을 좋아한다는 기쁨이란 환상적이다.

지난번 제주에 와서 블라인드북으로 구매하고 나서 인생책이 있었다. 피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이었다. 오늘, 그 책을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동네책방 주인장님이 들려준 ‘이걸 좋아하면 이것도 좋아하실 거예요’ 하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책을 구매하고야 말았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어느 동네책방이야 안 그러겠냐만 이번에 간 책방은 특히 더 주인장님의 취향의 공간이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으로 가득 채우는 재미’가 가득 차 있었다. 주인장님의 눈이 빛나보였다. 우리는 독서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얘기했다. 주인장님은 고전을 읽을 때 순서대로 읽는 것보다 목차와 소제목을 보고 끌리는 문장을 찾아서 읽는다고 했다. 신기하게 점을 보듯 그때그때 필요한 문장이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책 내용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은 피하는 게 좋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여기에 책에 정답을 바라면 힘들다는 누군가의 말로 공감했다.

책을 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까지 추천받았다. 운이 좋게 비가 오지 않고 맑은 날씨가 유지되었고, 성산일출봉과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떠나기 직전, 주인장님은 좋은 공간 감사하다는 말에 대화가 즐거웠다는 답을 해주셨다.

제주에 오면 동네책방을 꼭 방문하는 이유가 추가되었다.


제주는 날씨가 하루에도 12번씩 바뀐다고들 한다. 오늘만 해도 구름이 안개처럼 껴 몽환적이었다가, 갑자기 비가 내렸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번쩍였다가,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날씨 같다고 생각했다, 흘러가고 빠져나가지만 계속 들어오고 새로운 생각이 채워진다.


그러니 불필요한 생각이 들어왔을 때 그 자체로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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