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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 Oct 27. 2024

축하의 의미

졸전에 참여하는 친구와는 학번 차이가 나지만 꽤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누구보다 고생했을 친구를 오픈 첫날에 축하해주고 싶었다. 가는 길에 같은 소모임에 있는 다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고 싶은데, 자기는 회사에 있는 몸이니 꽃이라도 축하의 몫으로 대신 사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둘이 합쳐 다발보다는 바구니를 사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지하철 환승역에서 학교 근처 꽃집에 전화를 걸어 꽃바구니를 할만한 꽃이 충분히 있겠냐고 물었다. 바쁘게 생활하고 중요한 미션을 수행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꽃집에 도착했고, 사장님이 마무리하시는 동안 대화를 나눴다. 사장님은 좀 전에 화환 예약이 들어왔다며 졸전에 가는 것을 예측하고 계셨다. 바구니에 꽂을 카드며, 축하의 의미를 더욱 화려하게 장식할 만한 디자인이며, 무척 신경 써주신 사장님은 직접 행사에 가주는 내가 좋은 친구라며 칭찬해 주셨다. 친구에게 미리 말하진 않아서 잠깐 얼굴을 볼 수 있는지 메시지를 남겼는데, 확인을 못하는 모양인지 답이 없었다. 사장님은 얼른 전화해 보라며 기껏 왔는데 꽃도 전해주고 인사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재촉했다. 그럴 참이었는데, 당사자보다 더 다급하신 사장님이 귀여우셨다.


친구는 오프닝 세리머니 리허설 중이었고, 그래도 잠깐 시간을 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날씨도 좋은데 친구가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이라고 사장님을 안심시켰다. 요즘 날씨가 너무 좋다며 일 년 내내 이러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장님이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엄청 행복해질 테지만, 좋은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사장님의 바람을 업고 친구에게 달려갔다.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지만, 금방 친구의 작품을 해설과 함께 볼 수 있었다. 친구의 작품은 평소 친구가 다른 디자인과 분들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정체성을 가졌다. 공간을 설계하는 대신, 공간을 공간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경계인 벽을 기준 삼아 관람자가 공간을 만들어볼 수 있게 설계했다. 준비 과정에서 나에게도 이것저것 물어보며 몇 달간 고민한 걸 알고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뒤엎고 지금의 작품은 두 달 만에 완성했다고 했다. 친구는 열정적으로 작품의도를 설명해 줬다. 다른 작품도 돌아볼 수 있었다. 도심에서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한 작품도 있었다. 본인이 생각하는 세계관을 작품으로 표현한 '작가님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자아표현에 충실한 작업을 보니 나까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나도 글쓰기든 어떤 표현이든 충실한 작업을 계속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같이 전시에 참여한 동기에게 멘토 같은 선배라고 소개해줄 때 괜히 멋쩍었지만, 나를 그런 존재로 여기고 있었구나 하고 뿌듯했다. 기념사진 몇 컷을 찍었다. 첫 방문으로서 방명록도 남겼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인사를 하다가 나왔는데, 친구가 너무 힘이 된다며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밖에 보이는 하늘이 파릇하고 맑았다.


누군가의 성취를 축하해 주고, 내 의지를 다지고, 응원을 주고받을 수 있어 다행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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