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라서 저녁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안된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더니
"아들, 너네 엄마 요새 많~~이 바쁘시다~"
"왜요? 친구분 만나러 가셨나?"
"아이다. 요새 공부 시작했데이."
"어? 무슨 공부요?"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 시작하셨다. 바쁘시다~"
한 30분 후 걸려온 엄마의 전화.
"아들, 전화했네?"
"아이고, 엄마! 공부 시작하셨다면서요!"
"어, 요양 보호사 자격증 공부시작했데이. 오늘은 일정 안내만 받고 왔고. 앞으로 밤에 2시간씩 강의 듣을끼라."
"아이고~ 우리 엄마, 고마 대학생이네 !"
"뭐라카노. 그런데.. 뭔가 배운다니까.. 괜히 좀 설레고 글타! ㅎㅎㅎ"
평생 배우고 싶은 욕구를 참고 사셨던 우리 엄마. 시골에서 아들만 공부시키는 집에 태어나셔서.. 중학교 졸업하시고는 간호학교라도 보내달라고 그렇게 부탁했건만 그 당시 시골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결국 홧병이 나서 한참을 앓았다는 엄마는 결국 꿈을 꺾으셨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다는 걸 아시고 아들만큼은 원하는만큼 공부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꿈이 생기셨지.
그렇게 공부에 한이 생기셨던 엄마는 내가 정말 가고 싶어했던 포항공대에 합격했을 때 나보다 훨씬 더 좋아하셨다. 가슴의 응어리가 풀려서일까..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동해안을 놀러가시면 일부러 포항공대 들러서 나를 추억하셨단다. 어쩌면 포항은 나보다 부모님에게 더 특별한 곳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20살의 꿈을 이룬 곳이기도 하지만, 20년보다 더 오랜 기간동안 부모님의 가슴에 시리게 묻어있던 배움의 한. 국민학교 이 후 학교를 떠나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셔야만 했던 아버지와 중학교 이 후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엄마의 배움의 한을 한 방에 날려버린 곳. 비록 아들은 머리 싸매며 교수님들 수업 따라기가 벅차서 바득바득 공부하느라 너무 고생한 곳이지만, 그런 곳이기에 부모님의 마음의 한을 더 날려버린 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결혼을 일찍하셔서 둘째인 나를 무려 23살에 낳으셨다. (형은 21살에. 졸지에 49살에 할머니가 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 입학했을 때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한, 아니 나보다 한 살이 어리신 한창 젊으신 나이셨다. 나는 지금도 대학원을 다니며 내가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공부하는데, 나보다 한 살 어리셨던 젊은 우리 엄마는 아들 대학 공부시키느라 꿈을 미루시고, 뒤에 아들 결혼 시키느라 꿈을 또 미루셨다. 그러다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오늘 통화를 나눈 엄마의 살짝 상기된 목소리. 수강료 내고 수업 듣는게 그렇게 좋으시단다.. 내가 다닌 학교의 등록금, 학원비 등 그렇게 많이 내셨으면서 정작 당신을 위한 학비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57년 닭띠로 몇년 후 칠순을 바라보시는 연세이신데...
수강료 내드린다니 한사코 거부. 대신 용돈과 이번 주말에 찾아가서 효도라도.. 돋보기 안경이라도 새로 맞춰드리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