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독거 청년의 일일 #1
혼자 살겠다는 말이 엄마 아빠에게는 같이 살기 싫다는 말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그 둘은 분명히 다르다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엄마 아빠를 설득한 건지 자식 이기는 부모 없어서 넘어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그런 엄마 아빠를 외면하고 스물아홉에 기어코 독립을 했다는 것이다.
허황된 꿈같았던 독립이 서서히 구체화되자 부모님은(특히 엄마는) 말로는 '혼자서도 살아봐야지' 하면서도 왜 나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자주 비쳤다. 아무런 계기도 없이 갑자기 집을 나가겠다는 딸을 이해하는 건 부모로서 어려운 일인 듯했다.
새 출발, 시작, 반환점, 터닝포인트. 뭐가 됐든 나에게 독립이란 기쁜 일이기는 매한가지인데 엄마가 자꾸만 울었다. 나를 위한 선택이 주변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는 건 퍽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살다 보면 그런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고 난 그럴 때마다 놀랄 만큼 덤덤한 척을 잘했다. 그건 오랜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저녁 식탁 위에서 내가 이 집을 나가게 된 후 당신들에게 찾아올 기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령 엄마는 더 이상 나의 옷가지를 손빨래하지 않아도 되고 아빠는 이따금 내방의 물건들을 가지런히 놓는 귀찮음이 줄어들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엄마 아빠의 표정을 읽고 싶지 않아서 깨와 기름기 같은 반찬의 세세한 얼굴을 뚫어져라 볼 때가 많았다.
어느 날은 ‘우리는 이제 해방이야’ 하고 엄마가 기쁜 듯 말했다. 하지만 다시 아빠랑 싸우면 찾아가서 자고 와도 되냐고 물었다. 아빠는 갑자기 치킨을 사서 찾아갈지도 모른다 했고, 엄마는 애들은 그런 거 싫어한다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굳이 말렸다.
엄마는 칫솔 같은 생필품을 훔쳐가지 못하게 집 비밀번호를 바꿀 것이라 겁을 줬다가, 책상을 두 개를 놓고 싶다는 나의 말에 한 달은 살아본 후에 가구를 사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빠는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지 않는 저층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다 엄마는 ‘좀 슬프네’ 하고 웃었고, 아빠도 소리 없이 웃었다.
20대가 되면 한 번쯤은 부모님과 떨어져 살 일이 생긴다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서, 군대를 가서, 교환학생이나 유학을 다녀와서, 회사가 멀어져서. 계기는 많다. 항상 집과 가까운 학교와 회사를 다녔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었다. 독립한 후 이 한 몸 돌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알게 됐고, 부모님 집에 내내 살았던 일이 감사한 일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나온 건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니다. 추후 이야기 하겠지만 단지 혼자인 것을 너무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점이 강한 독립 동기가 되었을 뿐이다. 혼자이고 싶다는 뜻은 100% 내가 컨트롤 가능한,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원하는 만큼의 아늑함 아래 고요한 시간을 가득 채우고 원하는 시간에만 사람들 들이는 것. 살면서 단 한번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
난생처음 네이버 부동산을 뒤적거리고 모아둔 돈을 이래저래 계산해 보고, 대출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고, 원룸 이사 업체와 입주 청소 업체를 비교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혼자 해가며 자주 좌절했다. 은행의 대출 창구에 처음 가던 날엔 처음인 게 티 날까 벌벌 떨면서 번호표를 뽑았다.
어려움이 닥치면 가장 먼저 엄마 아빠에게 손 내미는 것이 당연한 삶을 살았다. 부끄럽지만 스물 아홉에도 그랬다. 다만 독립만큼은 힘 닿는 데까지 홀로 헤쳐나가기를 선택했고, 이사는 보통 일이 아니라 살이 원치 않게 쭉쭉 빠졌다. 하지만 그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과도 같았다. 현실은 분명 녹록치 않았지만 다행히 별 탈 없이 이사를 마쳤다.
그래서 독립 4년 차가 되었습니다
2020년 봄부터 준비했던 독립 준비는 그해 여름에서야 마무리되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이사를 하고도 한참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당신들 집에 더 머물기를 바랐다. 결국 이삿짐을 들이고도 열흘은 더 지나서야 자취방에서 홀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잠드는 법을 몰라 오래도록 뒤척였다.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다시 일어나 방의 창문과 베란다 문, 현관문을 다시 확인을 하고서야 침대에 누웠고, 혹 깨워주는 사람이 없어 지각할까 알람을 10개나 맞추고 긴장하며 잠에 들었다. 알람을 여러 개 맞추는 버릇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금에 와서 그 무렵을 떠올리며 나의 독립이 엄마아빠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회사가 먼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닌데, 고작 30분 거리로 뛰쳐나가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내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까. 자라며 부모님께 혼난 적도 거의 없거니와 반항심에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딸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런 계기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스스로 나가버린 딸의 뒷모습을 보는 엄마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식을 기르는 시간 속에는 이보다 더 많은 풍파가 있었을 것이기에 보이지 않는 마음 너머까지 넘겨짚지 말자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엄마 아빠에게 물어보고 싶다. 내 갑작스러운 독립이 조금이라도 상처가 되었는지.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가끔은 그렇게 용기를 내, 묻고 싶은 싶은 밤이 있다.
덧붙여 2020년 여름, 독립 직전의 일기
내가 가장 오랫동안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있었던 것은 고작 3주 남짓한 유럽여행이 전부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욕실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있던 엄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맺혔다. 엄마는 언제든 나에 관해서는 슬퍼할 준비가 되어있는 듯 보였다.
누가 보면 이민이라도 가는 것처럼 느낄지 모르겠다. 그래 봤자 서울에 사는 것은 마찬가지고 바뀐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주기만 한다면 언제든 오갈 수 있다. 다만, 엄마 아빠 나. 세 사람 중 누구도 서로가 없는 삶을 준비한 적이 없을 뿐.
최근엔 하루는 집을 나가고 싶다가도 하루는 집에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그저 혼자일 때와 혼자가 아닐 때를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내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는데, 이제 와서 내가 독립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게 맞나 고민한다.
혼자 지내는 일상을 선택했지만 결국 엄마 아빠가 없는 일상을 살게 될 것이다. 둘은 같아 보이지만 분명 다르다. 엄마 아빠가 잠든 새벽은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하지만, 문을 열면 그곳에 언제나 엄마 아빠가 있다. 세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 밀린 근황을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짧은 만남인만큼 슬픔이 끼어들 틈 없이 내내 즐거운 얼굴일지 모른다. 그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믿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