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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코 Mar 05. 2024

글쓰기 수업을 떠도는 부랑자

단편소설에서 작사, 희곡까지


오늘은 꽤 만족도 높은 실패 경험을 세 개나 꺼내보려고 한다. 제목에서도 보듯 세 번의 글쓰기 수업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 경험들을 단 한 번도 실패라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객관적 사실에 기반해 이들을 명명하자면 성공보단 실패가 적절한 이름표임을 부정하진 않겠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 얻은 것이 주로 "난 아니구나"였으니.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재밌었다"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하여 또 새로운 글쓰기 수업을 찾고 있는 나를 보면 말이다.




맞아 나 소설을 쓰고 싶었지



7년 전, 나는 대학교 중앙도서관 정문 앞에서 불현듯 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래는 예전 글에서 썼던 대학 시절 에피소드.


중앙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문 옆에 디자인이 귀여운 작은 책이 수십 권이 쌓여있는 걸 발견했다. 대학내일 같은 잡지나 학교 홍보물이겠거니 생각하며 지나치려는데 표지에서 '문학'이라는 글자를 봤다. 그리고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거기 가만히 서있었다.


"맞아. 나 소설을 쓰고 싶었지."


스무 살에 첫 소설을 썼다. 불성실한 인형 뽑기 가게 알바생과 CCTV로 하루종일 알바생을 감시하는 사장, 그리고 그곳에 오는 폐지 줍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 소설을 썼다는 사실조차 내내 잊고 살았던 것이다.


이후로도 나는 한참을 망설였고 직장인이 되어서야 용기를 내 소설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였다. 소설가, 시인, 카피라이터, 평론가, PD 등 다양한 전문가에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 언론인 지망생이었던 나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소설 수업이 있는지는 몰랐다. 그렇게 내 첫 글쓰기 수업을 등록했다.


수업을 들었던 몇 달의 시간을 생각하면, 소설가 지망생이 품을 수 있는 가장 황홀하고 흠집 없는 희망이 수시로 주입되는 인큐베이터가 떠오른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스무 살에 A4 3장짜리 소설(이라 생각한 무언가)을 쓴 게 전부인 신생아 상태로 강의실 문을 열었고, 그곳에서 나의 목표는 몇 달간 10장 내외의 습작 1편을 완성하는 게 전부였다. 일상에 치여 때때로 수업을 빠지고 해와야 할 것들을 못하는 날도 있었지만 내가 다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마치 작가가 된 것처럼 일주일에 3번은 퇴근 후 카페에서 소설을 썼고, 합평일이 다가오자 급기야 매일 새벽까지 퇴고하기에 이르렀다. 행복했다. 그 피로함이 글쓰기 수업 합평이 아니라 출판사 계약을 앞둔 것이라는 망상까지 더해지면 레드불 저리 가라였다.


문제는 합평날 그 모든 행복이 단숨에 폭삭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 글은 합평날 여러 문제점을 지적당했다. 지적당하기 전까지는 "와 내가 이런 걸 썼다고?" 하며 기뻐했던 나는 합평이 끝난 뒤 "와 내가 이런 걸 썼다고?" 하며 좌절했다. 수업이 끝난 뒤로 합평 때 받았던 여러 피드백 중 공통된 부분을 반영해 수정을 거쳐 최종본을 만들었고, 그렇게 내 첫 번째 글쓰기 수업은 끝났다.


두 번째 글쓰기 수업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였다. 그 사이에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수업만 듣고 나면 어디든 쭉쭉 뻗어나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되레 수업을 들은 뒤 절필(?)하게 된 것이다. 혹시 합평에서 칭찬받지 못했기 때문인 걸까? 그에 반해 내가 봐도 자신만의 문체가 확고하고 주제의식도 분명한 글을 써온 다른 수강생들에게 기가 죽은 건 아닐까? 그래서 은연중에 '생각보다 나 별로인 거 아냐?' 하는 두려움이 생긴 건 아닐까. 이유가 무엇이든 수업을 들은 이후로 글을 쓰지 않게 된 것은 분명했다. 글을 쓰려고 하면 뱃속 어디선가 좌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쩌면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제대로 얻어맞은 것이다.




작사가는 어떻게 되나요?



나의 두 번째 글쓰기 수업은 작사 수업이었다. 갑자기 작사라니, 조금 생뚱맞지만 시작은 <NCT127의 Favorite>이라는 노래였다. 본업에서 NCT 멤버 한 분의 작업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걸 계기로 NCT 노래들을 찾아 듣게 됐다. 가장 맘에 들었던 곡이 'Favorite'이었는데 별생각 없이 듣다 문득 제목을 다시 보니 'Favorite(Vampire)'인 것이다. 아, 뱀파이어였구나! 뱀파이어임을 알고 나니 전에 들었던 가사의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게 다가왔고, 화자의 몸짓과 표정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졌다. 그런 순간을 경험하고 나니 나도 이렇게 멋진 걸 써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나 같은 일반인이 작사가가 되는 가장 확실한 루트는 작사 학원을 다니는 것이다. 일단 초급반 과정을 마친 뒤 반을 올라가게 되면 실제 소속사에서 제공하는 데모 파일을 받게 된다. 음원에 맞춰 가사를 보내고 운 좋게 내 가사가 채택되면 작사가로 데뷔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소속사의 요청대로 꽤 많은 수정을 거쳐야 하고 또 작사 작업이 끝났는데 앨범이 나오지 않게 된다거나 곡이 빠진다거나 하는 일도 있으니 실제 데뷔로 이어지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착실히 수업을 받으면 나에게도 데모 음원을 들을 기회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수업을 수강할 이유가 충분했다. 이럴 땐 나는 일단 해보고 생각하자는 주의라 가장 작사가 데뷔 수가 많아 보이는 학원에 등록했다.


가사는 살면서 써본 글 중 가장 색다른 글이었다. 멜로디라는 지지대 위에 내 입맛대로 단어를 집어넣는 일을 여태껏 해봤을 리 없었다. 묘한 쾌감이 있었다. 애초에 사전에 단어 검색해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제한된 글자수에 맞추기 위해 단어를 찾는 일이 짜증스럽지 않았고, 원체 한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편이기 때문에 가사를 붙이기 위해 같은 노래를 듣고 또 듣는 일이 지겹지 않았다. 아, 이렇게 완벽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단어를 찾고 싶은 대로 찾고 노래를 듣고 싶은 대로 듣다니. 먼 훗날 카페에 앉아 가사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자면 도무지 업무 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데모 파일을 받아보지 못했다. 초급반에서 중도 포기했기 때문이다. 핑계를 대자면, 당시 매일 같이 야근을 하는 통에 너무 바빠서 수업을 소화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작사를 포기한 이유는 또 있었다.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내가 아이돌과 아이돌 음악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함께 수업을 듣던 수강생들은 모두 흔히 말하는 K팝 덕후인 듯했고, 나는 아이돌 그룹 이름만 간신히 들어본 머글이었다. 평소 듣는 음악은 대부분 인디음악이나 힙합 음악, 아이돌 곡은 멜론 TOP10에 들어오는 노래가 아니면 잘 듣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사 의뢰는 아이돌 곡이기 때문에, 각 그룹의 세계관과 지금까지 발표한 곡까지 모두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걸 수업까지 가서야 깨닫는다는 게 어이가 없지만 아무튼 그랬다. 물론, 일이라 생각하면 얼마든 공부할 수 있겠지만 소설 수업을 들었을 때의 내 모습과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아 아이돌 곡을 듣는 모습은 잘 상상이 안 갔다. '아, 난 아니구나.' 두 달간의 수업 후 내게 남겨진 유일한 성과였다.




대사가 안 떠올라요 선생님



나의 세 번째 글쓰기 수업은 <1막 1장>의 희곡 수업이었다. 갑자기 희곡이라니 역시나 뜬금없는 방향 전환이다. 계기는 단순했다. 퇴근 후 광화문 교보문고를 서성거리다 지만지드라마의 핑크색 희곡집이 잔뜩 꽂힌 책장을 발견했고 그야말로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날 곧바로 희곡집 6권을 충동 구매했고 이후로 한동안 희곡을 읽었다. 그러던 와중에 SNS에서 희곡 수업을 발견했으니 들어볼 수밖에. 물론 강사님은 있지만 강의가 있었던 건 아니라 수업보단 희곡 모임에 가깝겠다.


매일 아침 주제가 전달되었고 수강생들은 분량에 상관없이 각자 작성한 희곡을 공유했다. 매주 주말이면 선생님이 내 쓰레기 같은 희곡을 열심히 읽고(죄송..) 피드백을 전달해 주신다. 그렇게 써서 낸 나의 글이 어딜 봐서 희곡이겠는가.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 내려간 대화에 불과하다. 그래도 매일 무대라는 공간을 상정하고 두세 명의 인물을 데려다 주제에 맞는 대화를 시켜놓고 적어 내려가는 과정이 마치 재미난 인형 놀이를 하듯이 느껴졌다. 또 하루 만에 써서 제출해야 한다는 압박에 문체를 생각할 틈도 없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내 말투가 단어 하나하나에 낱낱이 박혀서 좀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을 쓸 때도 나는 인물 간의 대화를 쓰는 게 유난히 어려웠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대사가 10줄이 넘어가자 슬슬 할 말이 없어 벅참을 느꼈다. 사실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이것 나름 연습이 되리라 생각하며 어찌어찌 인물 간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수업이 끝난 뒤 조각글을 한데 모아 보니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함께했던 수강생들도 선생님도 나와 나의 글을 잊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호기심에 냅다 뛰어들어 얼렁뚱땅 썼으니 당연한 결과다. 다만, 그렇게 몇 주 동안 매일 만들어낸 인물 중 조금 더 긴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은 두 사람이 있었고 미완성 글감 폴더에 그들의 짤막한 대화를 넣어두었다. 쓰레기 같은 글은 일단 뒤로 젖혀두고, 단지 이 두 사람을 발견한 일을 위안 삼으며 세 번째 수업을 마쳤다.




그럼에도 수업을 찾아다니는 이유



그럼에도 글쓰기 수업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업이 끝날 때쯤 내 노트북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없던 글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멋진 일이다. 어디에도 없던 인물과 대화와 이야기가, 온 세상이 내가 노트북 앞에 앉아 타자를 치면 만들어진다는 것이 말이다. 더욱이 반복되는 회사생활 속에서 이런 류의 성과는 정말 중요하다. 이 소소한 성취감이 일상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명령 없이 스스로 뛰어든 스트레스 속을 헤엄치며 창작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주어질 결과보다 지나갈 과정이 더 즐거운 순도 100%의 에너지라 볼 수 있다. 또한 불확실한 꿈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가고 있으며, 언젠가 글을 업 삼은 미래의 나와 하이파이브할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다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덧붙여 함께 수업을 듣는 분들이 보낸 응원과 초심자에게 건넨 선생님의 따뜻한 말들도 함께다. 첫 번째 소설 수업에서 합평을 앞둔 전날 밤, 수강생 한 분이 미리 올려둔 내 글을 읽고 함께 듣는 수강생들 중 가장 잘 썼다는 말을 전해왔다. 예상치 못하게 받은 칭찬에 나는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내가 쓴 글을 좋아한다면 그걸로 됐다 싶었다. 또 두 번째 작사 수업을 중도 포기하며 카톡방을 나설 땐 현생도 꿈도 응원한다는 인사를 받았고, 회사생활에 치여도 꿈을 좇는 일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세 번째 희곡 수업에선 내가 늘 부족하다 생각했던 대화 글에서 나도 몰랐던 장점을 발견해 주신 선생님 덕에 내 글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 이런 말들이 가슴속에 콕콕 박혀서 혼자 허허벌판을 걷는 기분일 때면 한 번씩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싶어 진다.


2023년 하반기엔 내내 홀로 소설 습작을 쓰며 꿈에 부풀었었다. 결과는 완전히 꽝이었지만. 2024년 계획 중 하나로 글쓰기 수업을 넣었다. 물론 내가 과몰입했던 건 소설이 유일했으니 다시 소설 수업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지금의 나라면 합평에서 무슨 얘길 듣는다 해도, 설령 선생님이 평생 글을 쓰지 말라며 내 글을 박박 찢어버린다 해도(?) 두렵지가 않다. 내가 써온 시간들을 믿기 때문이다. 새해엔 이렇게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래서 다음 글쓰기 수업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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