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신혼부부의 서울 내 집 마련 후유증, 둘
아파트 계약을 마치고 내가 한창 싱숭생숭해할 무렵이었다. 남편이 불쑥 밤 산책을 다녀오자고 했다. 종종 동네를 산책했지만 밤 산책은 처음이었다. 고요한 동네를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 눈에 경희궁자이가 들어왔다.
종로구 대장 아파트.
유력 정치인이 거주해 유명해진 아파트.
못 오르는 나무 쳐다도 보지 말자는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그때까지 두어 번 경희궁자이 앞을 지나가면서도 한 번도 들어가 볼 생각은 못 했다. 하지만 그날 밤에는 어쩐지 경희궁자이 임장을 다녀오고 싶었다. 저 아파트는 무엇이 그렇게 잘났길래 25평에 17억씩 하는지 궁금해졌달까. 그렇게 우리는 한밤의 임장에 나섰다.
경희궁자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조경이었다. 단지 내에 숲을 꾸며 놓았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조경이 잘되어 있었다. 또 동간 간격은 어찌나 여유로운지 답답함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신축이라 커뮤니티 시설도 잘되어 있고 놀이터마저 고급스러웠다. 슬쩍 둘러보기만 했는데도 이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아파트와 어떤 점이 다른지 비교하며, 어떻게 하면 경희궁자이에 살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이곳에 거주할 수 있는 날이 올지 의문도 들었다.
아파트는 결국 명함이야.
임장을 마치고 나오면서 남편과 대한민국에서 아파트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아파트는 명함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문득 대학교 수업이 떠올랐다. 한 영문학과 교수님은 <오만과 편견> 속 베넷 가족의 집과 빙리 가족의 집을 비교하며 집은 계급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집은 거주하는 곳일 뿐이지 그게 계급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소심한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한 용감한 남학생은 나서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학생 시절을 지나 사회에 내던져지니 집은 계급이라는 그 말이, 아파트는 명함이라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일부 이해가 된다. 생각해 보면 '나 ○○동 살아'나 '나 ○○○ 아파트 살아'라는 한마디면 그 사람에 관한 꽤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지치더라. 학생일 때는 성적으로 키를 세우더니 사회인이 되어서는 직장, 연봉… 그리고 아파트로까지 키를 세우는구나. 이 경주는 결코 끝이 없을 것이다.
※ 내 집 마련 경고문 ※
서울 내 집 마련 후유증, 그 두 번째는 끝없는 경주에 올라선 피로감.
피곤하면 내려오면 되겠지만 슬프게도 나는 반드시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