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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ug 29. 2019

1년 전 오늘, 런던 한달살이의 끝

한달살이의 진짜 의미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여행 스타일이 있다면 바로 '한달살이'가 아닐까 싶다. 1주일 만에 여행지를 보고 오는 것은 단순 관광에 그친다는 생각과 좀 더 여행지에 젖어들고 싶은 마음에 타협한 것이 '한달살이'가 아닌가 싶다. 1년 전 오늘 나도 내 인생 첫 한달살이를 끝냈다. 런던에서 말이다. 



그래서 한 달간 뭐했냐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했다. 철저하게! 

음향으로 뼈대 굵은 영국에서 내 전공인 레코딩과 사운드 디자인에 관한 수업도 들어보고 뮤지컬 덕후로서 웨스트엔드 뮤지컬과 연극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수많은 버스킹을 촬영하고 즐기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매일 즐겁게 보냈다. 


사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많은 계획을 하지 않고 비행기표와 숙소만 고르고 그곳으로 일단 간다. 그 흔한 블로그 한번 뒤져보지 않고 가서 낭패를 겪을 때도 많지만 여행지에서 남들이 하면 좋다고 하는 것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을 때까지 여행지를 둘러보고 그 속에서 기다리는 편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도 내가 철저하게 원하는 것만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술관보다는 역사박물관을 좋아하는 편이라 런던 필수 관광지로 꼽히는 내셔널 갤러리도 가지 않고 영국박물관에서 이집트 유물을 보며 신기해했다. 또 양식을 한 분기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한 사람으로서 스테이크보다 영국의 크고 작은 한식 체인점과 동양 음식점을 섭렵했다. 누군가가 봤을 때는 비싼 돈 주고 귀한 시간 내서 간 여행에서 너무 체험을 안 하고 오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내가 기뻐서 하는 체험과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체험은 확실히 다르다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미술관을 간 적이 없는데 갑자기 영국에서 미술관을 간다고 흥미가 생긴다면.. 뭐 사람에 따라서는 생기기도 하겠지만 나는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하기에도 한 달은 부족한 시간이다. 그런데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하는 것만큼 시간 낭비가 있을까? 자신을 좀 더 생각하고 위해 주자!


물론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처음 웨스트엔드에서 본 뮤지컬이 <위키드>였는데, 줄거리도 모르는 데다가 영어도 잘 안 들리고 심지어 3층 끝에 앉아있어 무대와 동떨어진 느낌으로 2시간가량 그저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만 받고 나왔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진짜로 즐기기 위해 내가 줄거리를 봤을 때 흥미가 가고 관심 있는 뮤지컬부터 봤다. <레미제라블>, <드림걸스>, 그리고 <킹키부츠>. 킹키부츠는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후 영국에 다시 왔을 때 또 한 번 봤다.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뮤지컬을 보며 내가 정말 뮤지컬과 공연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후 뮤지컬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박람회인 <Theatre Craft>를 참석하기 위해 영국으로 다시 왔고 <알라딘>과 <마틸다>를 보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 연극 역시 내가 그동안 접했던 연극과는 아예 다른 연출이어서 신선한 충격과 함께 이런 연극을 한국에서 연출해보고 싶다는 아이디어도 얻게 됐다. 


3학점 전공선택 in SSR London


레코딩과 사운드 디자인. 음향으로 뼈대 굵은 영국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방식으로 수업이 이뤄지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래서 유럽 언어가 아닌 영어로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영국의 음향 수업을 마구 구글링 하다가 SSR London이라는 음향 아카데미를 발견하고 그곳의 Studio Recording과 Sound design for Film and Game 수업을 신청하고 영국으로 날라갔다. 3개의 스튜디오와 아이맥으로 가득 찬 공간들이 있었다. 수업 첫날에 장비에 대한 설명과 간단한 음향 이론을 마치고 바로 실습으로 들어갔다. 하루라도 마이크를 먼저 잡아보고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고 학생들도 끊임없는 질문과 일종의 영업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믹싱 방식에 대한 것도 아끼지 않고 서로 공유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당장 귀로 차이를 느끼고 마구잡이로 소리로 실험해보기를 원했다.


"Dont' be nervous to touch the knob. Just play with it!" 


나는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될까?


영국 지하철에서는 인터넷이 안될 뿐만 아니라 전화조차 터지지 않는다. 'IT 강국'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런던 지하철에서 멘붕을 겪는 순간이 아마 그런 순간일 것이다. 한달살이를 하며 지하철에서 멍하게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계단을 올라갈 때쯤 전화 신호가 연결되면서 들리는 노랫소리. 역 내에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할아버지도 아코디언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고 젊은 남자의 노래에 무료했던 지하철에 갇혀있던 머리를 깨우기도 했다. 어느 날은 한 흑인 남성이 색소폰을 부르고 있는데 연주 실력도 좋고 음악을 즐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가만히 서서 동영상을 찍으며 연주자에게 호응했고 연주가 끝난 후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자신은 음악으로 돈을 벌어 아프리카에 음악학교를 짓는 것이 목표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주기적으로 역 내에서 버스킹을 한다고 했다.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하는 이 음악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어떤 목적이 있고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모든 행동에 목적이 있을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가면서 하는 이 일이 그래도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멋지지 않을까? 


처음엔 놀았다고 글을 시작했지만, 내가 노는 것은 정말 단순히 논 것만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놀고 그 속에서 내 존재가치, 나 자신을 알아가며 즐겼던 시간들. 이 모든 것이 내 한달살이의 결과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내가 새롭게 좋아하게 된 공연기획이라는 분야에 눈을 뜨며 부산 문화 진흥에 펌핑을 넣는 사람이 되고자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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