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미드의 자아 이론과 부캐 열풍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이른바 '부캐 열풍'을 불러 왔다. 처음에는 드럼을 배우는 유재석에게 '유고스타'라는 별명이 붙어 우연히 하나의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음 프로젝트에서부터 유재석은 새로운 이름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유산슬', '라섹', '유르페우스', '지미유', '카놀라유'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유재석은 그의 본연의 캐릭터 외에 새로운 캐릭터를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시작되어 게임에서 사용하던 '부캐릭터'의 줄임말인 '부캐'가 일상생활에까지 옮겨 왔다. 일반 대중들도 '부캐릭터'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기존 삶과는 조금 다른 결의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SNS에서도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을 올리는 '본계정'과 함께 책, 영화, 여행 등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된 게시물만 업로드하는 '부계정'이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부캐'를 만든다는 것은 '나'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나' 외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에 대한 괴리에서 '부캐'를 만들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그만큼 '나'에 대한 고민이 많다. 취업을 할 때도,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나'가 잘할 수 있는 일 또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강박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강조했던 '진로' 설정이 평생의 숙제처럼 따라오는 것이다. 어딜 가나 너의 꿈의 뭐냐고 묻는 한국에서 '나'에 대한 고민 없이 살고 싶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제 조금 사회학적인 생각을 시작해보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의 해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나’에 대한 고민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 지속되었던 진부한 고민일 테지만 복잡하게 뒤엉킨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절실할 것이다. 한 사람은 그의 삶에서 수많은 사람과 마주하고 수많은 관계를 이어 나가는 사회성 짙은 ‘나’이다. 그런 ‘나’가 소중한 이유는 수만 가지의 관계가 얽혀 있는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거미줄 같은 사회 속에서 그저 한 점을 차지하는 인물로 바라보아야 할까? 아니면 그 점을 빛내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우뚝 서야 하는 걸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지 미드(George Herbert Mead)는 무려 100년도 더 전에 ‘나’에 대한 고민에 꽤나 명쾌한 해답을 제공했다.
미드는 자아란 사회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외부와의 관계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자아는 인간이 태어났을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미드가 말하는 자아를 가지고 ‘나’에 대해 고민할 때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상황들, 사고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나’라는 작은 점과 이어져 있는 또 다른 점과 선들을 따라 가며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인물인지를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의 관념에 따른 ‘나’는 ‘어떤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또다른 질문으로 귀결될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아주 커다란 거미줄 속에 걸린 작은 곤충일 뿐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회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정말 '트루먼쇼'의 삶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다소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기 전에 미드의 이론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미드는 분명 한 개인의 자아에 점철되어 있는 사회를, 타자의 흔적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드가 모든 인간의 개별성과 유일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자아의 특수한 개인성을 사회적인 자아의 전제조건 또는 그 반영물로 보면서 미드 또한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자아를 ‘주체적 자아(I)’, ‘객체적 자아(me)’로 구분하고, 이 둘의 필수적인 결합으로 전체적인 자아가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사람은 자신을 하나의 객체로 인식하며 그를 둘러싼 사회에 의해 조직된다. 이것이 ‘객체적 자아’, 즉 ‘me’이다. ‘me’는 그가 속한 사회의 규약과 기대를 반영하는 자아인 것이다. 반면, ‘주체적 자아’는 자신을 향한 타인의 태도에 응답하는 것으로 자유롭고 주도적이다. ‘I’는 한 개인의 독특함과 개성을 책임지는 자율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me’와 ‘I’의 복합적 결합물이 전체로서의 자아라고 할 수 있다. 미드가 말한 ‘주체적 자아’, 즉 개인적 자율성에 집중하면 ‘나’는 결코 사회가 만들어낸 꼭두각시가 아니다. 사회는 일률적인 거미줄이 아니라, 다채로운 ‘주체적 자아’의 형형색색 실로 이루어진 니트와 같은 것이다. 그 속에서 자신의 색깔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한 질문이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는 누구인가’일 것이다.
미드가 강조한 ‘주체적 자아’와 ‘객체적 자아’의 결합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 결합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사회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는 ‘me’를 독특한 ‘I’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이다. ‘I’와 ‘me’의 적절한 조화는 사회성 부족한 별난 인물로 낙인 찍힐 수 있기 때문에 전면에 ‘me’를 드러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조지 미드의 이론에 따라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최근 유행했던 '부캐'는 어쩌면 ‘me’가 ‘I’를 잠식해버린 한국 사회에서 가능한 ‘I’의 마지막 반란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 끝에 해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나’를 사회에서 드러내는 게 어려운 사회이다. 사회의 기대를 반영한 ‘객체적 자아’만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에 맞춰 자신의 개성마저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취업을 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고, 경제적 안정을 위해 맞지 않는 가면을 쓰고 하루 종일 웃어야 하는 한국인의 고충은 그동안 얼마나 많이 거론되어 왔던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작게나마 품고 있던 꿈을, 펼치지 못한 자신만의 ‘주체적 자아’를 버리지 않고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로 ‘부캐’를 생성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 받은 것이다. 다만, ‘부캐’는 결코 본래의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음을 강조해야만 진정으로 ‘주체적 자아’를 지켜낼 수 있다. 사회의 기대에 여전히 부응하며 ‘객체적 자아’를 전면에 내세우고 살아가겠지만 그와 별개로 만들어낸 ‘부캐’ 활동을 통해 조금이나마 죽어 있던 자신의 개성, ‘주체적 자아’에게 숨쉴 틈을 열어주는 것이다.
100년도 더 지난 미드의 이론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지점은 ‘주체적 자아’와 ‘객체적 자아’를 분리해야만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 사회가 ‘결합’ 그리고 ‘양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넘어 해답으로 찾아낸 ‘나’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더욱 바라고 목소리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