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Addis Ababa 공항에 앉아서 마지막 환승을 기다리고 있다. 대략 3시간 후면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가족 첫 해외 여행지인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한다. 이 날을 정말 손꼽아 기다렸다.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작년 12월 세계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뒤부터 오늘까지, 이 휴가만을 위하여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들어오는 일, 하던 일-관뒀지만 다시 제안 들어왔던 것 등의 돈벌이가 될 만한 것들을 이번 휴가를 위하여 포기했다. 나의 벨린Berlin에 대한 열망도 잠시 미뤄두었다. 그러니 이번 휴가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우리 가족의 일정은 이렇다. 가장 중요한 킬리만자로 등반을 시작으로 세렝게티 사파리와 케냐의 마사이마라 사파리, 이집트(아스완, 룩소르, 후르가다, 카이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바이까지 약 한 달간 여행한다. 상황적으로만 보면 킬리만자로의 등반이 성공해야 나머지 일정에도 빛을 발한다. 배수의 진을 치고 말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시해야 할 것은 있었다.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라 불리며 산소통 없이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다시 말해 고산병이 관건이며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면 하산을 해야 한다. 이는 배수의 진에 전혀 해당 없다. 우리 가족은 이것에 대비하여 수많은 의견을 나누며 결과가 어떻든 고산병으로 인한 하산일 경우 하산에 흔쾌히 동의하기로 약속했거니와 미련을 갖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킬리만자로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지 않았다. 가면 가는 거고 말면 마는 거고. 등산과 캠핑,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환영이지만 안 간다 해도 아쉬울게 전혀 없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욕심이 단 손톱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산에 오르는 내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이끌고 있음을 나중에 알았다.
7월 27일
우리는 캐리어 4개와 보조가방을 각자 하나씩 짊어지고 공항리무진을 타러 갔다. 약 10분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의 낑낑거림으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는 우리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10-20분 정도 늦게 왔지만 언제나 그렇듯 리무진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의 젠틀함과 쾌적한 냉방 버스는 더위로 인한 짜증마저 사라지게 했다. 리무진에 타자마자 집에서 가져온 바나나 하나를 야무지게 먹었고 출국 전날 설빙에서 먹다 남은 인절미 과자를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두 봉지 모두 가져오기엔 넣을 곳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크지 않아 어제 먹다 남은 반 봉지만 가져왔는데 이렇게 아쉬울 수가. 그리고는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의 약 20-30분 사이에 약간의 선잠이 들었다. 요즘 몸이 많이 피곤한지, 생각이 많은 건지, 자꾸 졸리기만 했는데 아무래도 짐도 점검할 겸 일찍 일어났기에 더욱 피곤했나 보다.
젠틀한 리무진 버스 기사님의 안내와 함께 트롤리에 짐을 싣고 인천 국제공항에 입장했다. 인천공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먹을 것이다. 이상하게 맛있다. 특히 인천공항지점 오리지널 버거킹은 아무 근거 없이 국내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잠시 넣어두어야 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체중계가 없어 공항의 짐 무게재는 곳에서 모든 짐을 각각 23킬로로 맞추는 작업을 시작했다. 나와 동생의 옷가지가 든 캐리어가 무려 32킬로 정도 나가서 깜짝 놀랐다. 그냥 들었을 땐 20킬로도 안 되었던 것 같은데... 다른 가방들로 분산시켜 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1차 식사는 부모님의 식사로 명가의 뜰에서 2인 상차림을 선택했는데 고등어구이와 제육볶음, 물냉면, 갖가지 반찬 등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식의 반찬이 조금씩 다양하게 담겨 나온 상차림이었다. 2차는 동생과 나의 식사로 버거킹은 역시 인천공항 오리지널 버거킹이지 하며 통 모차렐라 주니어 버거와 치즈스틱, 동생은 통새우 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3차는 다 같이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과 치즈케이크 그리고 쿠키로 정했다. 이 쿠키는 방콕에서 아디스아바바행 환승 구역에서 내가 다 먹어버렸다. 이상하게 마법에 의한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 건지 너무너무 먹어도, 먹고 또 먹어도 식도가 닫히지 않았고, 그러나 정작 올것은 오지도 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왕짜증... 왕 스트레스. 식사를 마친 뒤 체크인을 했다. 가방도 부치고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여 꽤나 긴 시간후에 21번 게이트 앞에 앉았다.
*참고로 방콕행 비행기는 오후 7시 30분 출발이었는데 우리는 인천공항에 약 2시 즈음 도착했다. 오후 3시에 비가 올 거란 기상예보에 우산도 짐이 되니 미리 출발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날은 점점 화창해질 뿐 비행기가 뜰 때까지 비는 단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덕분에 3코스 만찬까지 즐길 수 있었으니 괜찮다.
드디어 시작된 5시간의 방콕행 비행. 아시아나 항공 에어버스 기종을 타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방콕으로 휴가를 가는지 처음 알았다. 아무래도 여러 국제적 정치 상황 때문에 주변국 대신 동남아로 휴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탑승 후 1시간이 지나니 밥이 나왔고 나는 치킨을 선택했는데 이렇게 짠 기내식은 생전 처음이었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거의 남겼다. 그래도 사이드 메뉴로 나온 냉파스타는 정말 맛있었다. 식후 영화를 두 편 끝내니 예정시각 오후 11시 10분에 맞춰 방콕에 도착했다.
방콕은 작년 장기여행때 가본 곳인데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 무척 반가웠다. 환승구역에서 에티오피아행 비행기 체크인을 하려고 가보니 내가 두 달 전 표를 구입함과 동시에 지정했던 좌석은 온데간데 없었다. 비행기는 만석이라 하고 우리 자리는 아무 데나 지정되어 있었다. 원래 예약한 자리를 달라고 했지만 인천에서 방콕에 오기 전에 아시아나항공 측에서 티켓팅을 해줬어야 한다며 내가 원래 예약한 자리가 더이상 불가하다고 했다. 분명 아시아나항공 체크인 때는 환승비행편은 방콕 공항의 에티오피아 에어라인에서 따로 체크인을 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적당한 자리를 찾아 달라 했고 우리는 수많은 아프리칸들과 함께 보안검색대를 다시한번 통과한 뒤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 문은 아직 닫혀있었고 사람들은 앉아있을 곳이 없어서 게이트 주변의 길바닥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벤치를 찾아냈고 그곳에서 기다렸다. 일본에서 왔냐고 묻는 내 옆자리의 에티오피아 사람. 한국에서 왔어라고 대답하며 몇 차례 대화가 오가고 날 때쯤 내 배도 고파졌고 게이트도 열렸다. 환승은 정말 기다림의 연속이자 굉장한 인내를 요하는데, 게이트에 들어온 뒤 다시 한번의 기다림이 또 필요했다. 정말 진을 다 빼놓는다. 킬리만자로행 직항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웃긴 건 이러는 와중에도 내 배는 계속 고파와서 한국 스타벅스에서 샀던 거대한 쿠키를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도 배가 고파 기내 간식으로 나왔던 프레츨과 견과류를 먹었다. 이상하게 계속 배가 고파서 계속 계속 먹었더니 가족들이 우려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 조차도 왜 그러는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호르몬이 이렇게 무서운거다.
7월 28일
새벽 1시 20분. 에티오피아 항공은 처음 타본다. 우선 비행기 내부의 공기가 무척 탁했다. 에어컨 작동이 되지 않는지 약간 덥네 싶을 정도로 온도가 올라갔다. 비행기는 추워야 제맛인데. 약간 후덥지근한 비행기에서 다양한 인종의 체취들의 향연 그리고 기내식의 대반전 꿀맛인 파스타. 어떻게 이런 조합이 나오는지. 파스타는 치킨 토마토소스 파스타인데 아시아나 항공 기내식보다 훨씬 맛있어서 싹싹 긁어먹었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졸았던 우리 가족은 식후 다시 한번 꿀잠을 잤다. 그렇게 영화 한 편 안 보고 계속 잠에 취해있다 일어나니 아침식사라며 기내식이 또 나왔다. 소시지와 오믈렛, 감자, 빵이었는데 빵이 제일 맛있었다. 사육당하는 듯한 이 기분 뭔가 좋기도 하면서 한끼도 거르지 않고 다 챙겨 먹는 게 한심하기도 했다. 하하. 에티오피아 항공은 아주 빠르게 날아 도착 예정시각보다 30분 앞선 새벽 5시 30분 즈음 도착했다.
에티오피아 항공 승무원에 얽힌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식사 시간이었다. 내 앞 좌석의 손님이 의자 등받이를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 승무원에게 말했더니 걸크러쉬 승무원은 앞좌석의 의자를 잡고 흔들어서 사람을 깨운 뒤 등받이를 세우라고 얘기했다. 국내 항공사와 굉장히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그 손님은 잠에서 덜 깼는지 등받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다. 다시한번 승무원에게 말했더니 인상을 확 찌푸리면서 앞좌석의 의자를 더욱 세게 흔들며 뭐라 뭐라 손님에게 말을 했다. 정말 대단했다. 에티오피아 항공 승무원 정말 멋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들어서마자마 온몸으로, 제대로,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이 느껴졌다. 인종, 문화, 시스템 모든 것이 달랐다. 우선 문이 열린 펍에 앉아 커피와 물, 과일을 주문해놓고 앉아서 주변을 살폈다. 근처의 화장실도 다녀왔다. 에티오피아는 어떤 나라일까에 대해 생각도 해보며 얘기도 나눴다. 더 이상 음식을 시킬 생각이 없으면 나가라는 눈치를 주는 바람에 30-40분 정도 있다가 펍에서 나왔지만 좋은 구경이었다. 차라리 게이트에 들어가서 앉아있는 게 낫겠다 싶어 게이트를 들어가려고 줄을 섰다. 보안검색대를 다시 한번 통과해야 하는데 이곳에서 베를린 친구가 준 라이터를 뺏기고 말았다. 라이터는 내가 흡연자라서가 아니라 급체했을때 손을 딸 주사기 바늘을 데우고 소독하기 위해서 가지고 온 것이다. 근데 대체 라이터를 왜 가져왔냐는 아빠의 물음에 내가 뭐 잘 못 한 것도 없는데 괜히 찔렸는지 갑자기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하하. 무조건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게이트 근처로 들어오니 신축 건물이라 그런지 엄청 깨끗했다. 진작 이쪽에 와있을걸 싶었다. 더 웃겼던 건 킬리만자로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모두 외국인, 특히 99프로 백인이었다. 2시간은 더 기다려야 탑승하는 바람에 각자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일기를 쓰거나 운동을 했다.
오전 10시 15분. 드디어 킬리만자로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가 떴다. 이전의 방콕 경유 때 지정좌석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직원이 미안하다며 좌석을 1A로 줬는데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예전 인도 라다크 여행 때 처음 타본 1A 좌석, 앞으로도 더 좋은 좌석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한껏 들었다.
오후 12시 50분 우리의 마지막 비행기는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했다. 경비행장같이 작은 공항이었다. 공항의 규모에 비해 수많은 사람들이 입국한다는것이 조금 신기했다. 내부는 보는 외부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작았다.
비행장에 이렇게 내려주어 걸어들어오니 기분이 꼭 개인 비행기 타고 온 것 같았다. 날씨조차 너무 좋았고 23시간만에 세상밖으로 나오니 한껏 들떠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킬리만자로 공항은 내가 그동안 이용해본 공항중에 가장 좋은 공항이 되었다. 가장 멋있었고 가장 나를 반겨줬고 가장 깨끗했고 가장 신선했다. 무한 사랑 킬리만자로 공항이다.
탄자니아 입국 시에는 입국 신고서를 작성한 뒤 50불과 함께 비자를 발급받고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면 끝이다.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현지 직원들이 도와주기도 해서 빨리 끝난다. 아무래도 사람은 많은데 도큐먼트 작성할 공간이 부족해서 얼른얼른 사람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비자 발급도 며칠 묵을 거냐만 물어보고 끝난다.
23시간 만에 인천공항에서 킬리만자로까지 모두 애썼다.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나무들과 자연 광경에 흠뻑 취하며 높은 빌딩이 없어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자유를 누리며 모시 Moshi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