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라캠프~라바타워~바랑코캠프
오늘은 여느 다른 날들보다도 더욱 중요한 날이다. 처음으로 4천미터 이상을 올라가는 날이기도 하거니와 오늘로 인해 다음여정을 계속 해야될지 까지도 어느정도 판가름 나는 날이다. 가이드 하지가 누차 얘기해왔다. 3일차에 정상등반에 대해 90프로 확신을 하고 4일차에 100프로 확신을 한다며, 오늘 일정이 마친 뒤 우리 가족이 정상에 도달할 가능성이 얼마만큼인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뭔가 떨린다.
게다가 오늘은 어제 캠프에 일찍 도착한 일정과는 다르게 첫날처럼 길다. 쉬라캠프에서 출발하여 라바타워까지 고도를 높여 간다음 바랑코 캠프까지 다시 고도를 낮춰 내려간다. 마차메 루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던 고도 적응의 시간, 4천미터를 경험하고 다시 3천미터대로 내려가기.
06:30-50 기상
07:05-15 세수
07:30 아침식사
~ 08:00 짐 패킹완료 및 출발
(아침 일정은 매일 동일)
13:00 라바타워 도착 및 점심
16:00 바랑코캠프 도착
18:50 저녁식사
아침은 부모님께서 입맛이 영 없으셔서 누룽지를 미리 부탁했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한 토스트와 피넛버터 사
랑. 피넛버터 뻑뻑함이 그렇게 좋을수가. 고구마 뻑뻑함은 안좋아하지만 피넛버터 뻑뻑함은 목이 메여도 좋다.
탁 트인 쉬라캠프의 뷰를 뒤로하고 쨍한 햇살을 받으며 트레킹을 시작했다.
산에서 쓴 일기 중(이하"")
"아침 6:38 세번째 날이 밝았다. 다들 긴장상태이다. 오늘이 정상등반 여부를 가른다고 해서 그렇다. 나도 자신만만하지 않고 차분하려고 노력중이다. 현재 3840미터에서 잠을 잤는데 라다크의 고도와 비슷하기에 괜찮은것 같다. 다만 햇빛의 양이 너무나 적어 체온이 급격하게 추워지는게 문제다. 지난 라다크 여행 중 창파 유목민을 만났을때, 그때 고도가 약 4천미터쯤으로 기억되는데 텐트에서 어찌 잤나 신기하다. "
요며칠 어둠속에서 걸은것도 아닌데 햇살을 받으며 걸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안개가 한가득해 시야확보가 불가능한 트레킹은 뭔가 나자신에게 더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라 좋지만 비타민 D가 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는것이 분명하다. 볼 것이 한 가득이라 고프로로 이리저리 계속 촬영을 했다.
포터들이다. 날씨가 화창하니 다들 더 기운내서 트레킹하는건 나만의 착각일지도. 정말 포터들 존경스럽다. 첫번째 짧은 휴식을 취하며 노래를 부르며 올라오는 포터들을 구경하고 또 뒤따라 올라오던 텍사스팀의 우산 할아버지도 구경하고 햇빛도 좋고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리저리 신기한 광경들을 즐기는데 아니나다를까 다시 안개가 급속도로 몰려왔다. 쉬라캠프에서 라바타워까지 가는 길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았지만 날씨가 정말로 변화무쌍했다. 트레킹 초반엔 해가 너무 쨍쨍해 피부가 따가울정도여서 썬글라스와 벙거지 모자를 써야했는데 첫 휴식을 취하고 나니 안개가 몰려오고 바람이 너무 쌩쌩불어 귀가 덮히는 모자를 써야 했다. 특히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바람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나중에 사진에서도 나올테지만 라바타워에 다다를땐 싸리눈도 내리다 멈추다 했다. 모자를 썼다 벗었다 썬글라스를 썼다 벗었다 100번은 한것 같다.
라바타워까지의 길은 이랬다. 눈앞에 보이는 고개를 넘으면 되려나? 해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온다. 이걸 한 3-4번 인내하며 넘으면 산의 허리를 감아 올라가는 듯한 루트가 보인다. 그곳에서 아, 진짜 언제 끝나냐 이 길 하면서 한 번 휴식을 갖고 또 걷다보면 오르막길이 보인다. 그곳에서 눈을 맞으며 숨 안차게 천천히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비바람 맞으며 또 올라가면 드디어 큰 벽이 보이는데 그곳이 라바타워다.
눈바람을 맞으며 쉬라캠프에서 느꼈던 햇빛은 단 한줄기도 보지 못한 채 안개속에서 무한 고개를 넘으며 도착한 이곳 아님 이 길. 라바타워로 가는 마지막 길. 하, 이 길은 정말 멋졌다. 어딘가 관문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마라톤에 성공한 느낌이 이럴 것 같다.
마침내 도착한 라바타워에서 다시 언제 올지 모르니 사진을 여러개 찍었다. 각자찍고 가이드랑 같이 찍고 가족끼리 찍고 가이드랑 가족 다같이 찍고.
화장실을 다녀온 뒤 점심간식을 먹었다. 밥이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사실 아직 아침도 소화가 안되었던터라..머핀은 내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빵 중의 하나이다. 너무 달아서 먹으면 배가 아프다. 근데 이건 왜 맛있지???? 그리고 또 의외로 아빠가 머핀을 좋아하셨다. 처음알았다. 이런게 가족여행의 맛. 다행히 엄마를 위해 셰프가 누룽지를 준비해주셔서 엄마는 그것을 드셨다. 나는 오히려 먹을게 없어서 과일만 먹었던 것 같다.
급 다시 나타난 햇빛에 광합성을 하며 휴식을 취한 뒤 다시 트레킹 시작이다. 이제는 바랑코캠프까지 쭈욱 내리막길. 단 한번의 오르막길도 없이 쭈욱 내려간다. 무릎이 내 무릎이 아님. 라바타워에 머물며 햇빛에 얼굴이 달아오를정도로 몸이 뜨거워졌지만 텐트를 벗어나면 꽤 쌀쌀했기에 고산병대비 체온유지를 위해 모자를 겨울모자로 바꿔쓰고 경량패딩도 입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내리막길이 오르막길보다 수월할것이라는 아마추어스러운, 아니 아마추어도 안할 그 대단한 착각을 한다.
여기 정말 멋있다. 드론이라도 있으면, 아니면 사진작가라도 있으면 어마어마한 사진이 나왔을텐데 싶었다. 이곳을 통과하면서 보이는 멋진 광경도 정말 멋있었다.
한껏 반지의 제왕에 나올법한 곳을 걸어 내려왔더니 만년설이 녹아 생긴 계곡(?)이 있었다. 물의 양은 굉장히 적었지만 빙하가 미끄러져 내려오며 생긴 자국은 정말 컸다.
확실히 지대가 낮아지니 쉬라캠프에서 출발할때 보았던 큰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가지 마음아팠던 건 동생의 머리가 살짝 아프기 시작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하지한테 이 특이하고 커다란 나무에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불렀지만 잠깐만이라고 해버림...너무 미안했다. 동생의 상태에대해 하지한테 설명하고 내 겨울모자를 동생한테 주어 머리를 따뜻하게 했고 물도 마셨다. 아빠의 비상약 중 두통 약을 하나 꺼내 먹었다. 조금 휴식을 취하며 볼일도 보는 시간을 가졌다. 왜냐면 지금 고산병증세가 나타나면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제 갈길은 내리막이 전혀 없는, 계속 상승해야만 하는 코스만 남았으니까 말이다. 부모님은 동생이 빨리 휴식을 취하기 위해 조금 속도를 내면 어떻냐는 의견을 제시했고 하지는 지금 페이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속도를 내도 정말 괜찮을지 물은 뒤 속도를 내기로 결정했다. 이건 대단히 잘못된 결정이었다. (이제 절대 내리막길에선 오르막길보다 천천히 발을 내딛기로 했다. 막판에 속도를 내니 고산증세가 오려고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그리고 실제로 다음날의 내리막길에서는 오르막길보다 더 신중하게 페이스 유지를 위해 노력하니 컨디션 정말 좋았다.)
이 커다란 나무에서 코튼이 나온다는데 짱 신기방기했다. 생긴것 조차 아예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생김새였는데. 그럼 누가 여기까지 와서 이 면을 채집하는 걸까....????
속도를 높힌 초반엔 아직 싱글벙글. 나무들이 신기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정신없었고 동생은 약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서 두통이 괜찮아졌었다. 이제 문제는 나다.
이런 멋진 뷰 대체 어디서 볼 수 있을지, 또 보고 싶은데 평지에 이런 나무들이 있는 곳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확실히 고도가 낮아지니 바닥도 이런 물에 젖은 진흙으로 되어 있었다.
이 특이한 나무 터널을 지나면 캠프가 나온다. 멀리서도 이미 확인했어서 마음이 더 급했다. 동생은 괜찮아졌다고 브이표시를 했다. 다행이었다 정말.
드디어 도착한 바랑코 캠프, 방명록에 이름을 적는데 이때부터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열도 나는것 같았다. 왜지? 대체? 간신히 방명록에 적고 사인보드에서 사진을 찍었다. 너무 힘들었다. 빨리 눕고 싶었다.
그래도 사진은 찍어야지. 쉬라캠프부터 바랑코캠프까지 8시간 걸렸다. 느리지만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꾸준히 가는게 너무 좋았다. 부모님도 한국식 빠른 산행만 하시다가 초반엔 적응이 안되셔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걸음이 빨라지고 하셨는데 이제는 얼추 적응이 되신 듯 하다. 페이스에 잘 맞게 따라주셨다.
근데 웃긴게, 이때는 또 머리가 하나도 안아팠다. 대체 뭐지.
바랑코 벽. 이 거대한 벽때문에 바랑코 캠프로 이름이 지어졌다. 어떻게 이런곳이 있을가 싶으며 감탄의 감탄을 하면서 가이드한테 너무 좋다고 했다. 모하메드 왈, 응 우리 저기 내일올라갈꺼야~. 그말만 안했어도 경치를 충분히 즐겼을텐데 ! 그리고 이어지는 벼랑끝 쪽의 모습. 어어어엄청 멋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곳이 나의 최애 캠프사이트였다.
바랑코 벽 때문에 해가 늦게 뜨고 상대적으로 춥다고 했다. 정말로 다시 돌이켜 보면 여기에서의 캠핑이 가장 추웠었다. 정말 손이 시려웠다. 텐트에 도착한 나는 다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고 저녁식사 전까지 한 숨 잤다. 그러고서도 머리아픈게 가시지 않아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저녁으로 동생이 끓인 라면과 밥(라죽) 그리고 셰프가 해준 백숙을 또 야무지게 많이 먹고 또 엄마와 동생, 아빠가 복용한 혈관확장 약을 한알 먹고 바로 잠을 잤다.
*고산병 약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미리 밝히지만, 약을 복용한 다음날 속이 너무 쓰려 약을 더이상 먹지 않았고 그렇게 정상에 다녀왔다. 사람마다 약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니 각자의 선택이 중요한 것 같다.
산에서 쓴 일기 중
"라바타워 4000미터 넘어까지 성공.
이후 바랑코 캠프까지 오는 길의 마지막에 약간 빨리 걸었더니 바랑코 캠프에 도착해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에도 아팠지만 안압이 조금 심해졌고 머리도 이전보다 심해졌다. 몸에 열이 심하게 나는 것 같이 자고일어나니 한결 괜찮아졌고 라죽을 먹으니 더욱 괜찮아졌고 속이 미식거린데도 계속 먹고싶었다. 그리고 하지와 가이드가 와서 브리핑하는데 또 더 괜찮아졌다. 역시 좋은 에너지가 오가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바타워를 가는길은 산을 넘어 산을 또 넘어 산에 산을 넘는 일정이라 약간 지루했다. 앞에 보이는 산의 꼭대기를 따라잡으니 다음 산이 또 나오고 그렇게 계속 반복... 오르는 동작을 반복하니 발목이 약간 거슬렸는데 걷는 방식이 잘 못되었단것 같아 신경써서 걸으니 괜찮아졌다. 라바타워에서 점심은 누룽지와 고추장아찌, 김치, 마늘 장아찌인데 꿀맛. 머핀도 꿀꿀맛. 바랑코캠프까지는 내려오는 길인데 하산이 너무 어려웠다. 파인애플같은 나무들이 많아 신기했다. 처음보는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