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라캠프에서 보이는 킬리만자로는 그 어느때보다 빛났다. 그 어느 캠핑장에서 봤던 킬리만자로보다 좀 더 영광스러웠다고 해야하나, 적절한 표현을 못찾겠지만 가장 빛을 발하고 있었다.
따뜻한 킬리만자로 티를 마시는 중. 블랙티 인데 여지껏 마셔본 블랙티 중 가장 맛있었다. 산에선 뭐든 맛있으니까 :)
동생과 아빠가 저 멀리서 화장실 다녀오시는 중이다. 이렇게 안개가 껴있지만 갑자기 언제그랬냐는 듯 햇빛이 한 가득할때도 있었다. 하루에 사계절이 아니라 한시간에 사계절이 있었던 것 같다.
산에서 쓴 일기발췌(이하"")
"텐트에 들어가 몸을 녹인 뒤 화장실을 다녀왔다. 멀고도 가까운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한시간정도 낮잠을 잔 후 3시경 점심을 먹었다. 포터 2명이 늦게 올라오는 바람에 주니와 엄마의 더플백이 없어서 나와 엄마텐트에 모두 모여 차를 마시고 스트레칭도 했다."
왼쪽 파란색텐트가 식당, 오른쪽 사진의 주황색 텐트 두개가 우리 텐트
점심식사, 언제나 맛있다.
"점심은 닭구이와 밥 그리고 야채스튜였다. 스튜는 역시 케첩베이스였다. 아, 닭구이가 나오기전에 에피타이저로 스프가 나왔는데 짱맛. 바나나는 몽키바나나보다 약간 뚱뚱했지만 짧았고 맛은 약간 신맛이 강했고 단맛은 약했다. 산에서의 첫 식사때 발견한 피넛버터에 바나나를 찍어먹으니 짱맛. 디저트로 나온 망고는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오렌지는 저엉말로 맛있었다. 엄마는 속이 편치않아 많이 못드셨다. 고산이라 아무래도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라다크 여행때 현지 친구들이 마늘스프를 먹으면 좋다고 했었는데 그게 이제 생각이나서 마늘환이라도 드셔보라고 드렸다. 같은 마늘이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리고 하지를 통해 며칠 뒤 올라올 서플라이에 마늘도 넣어달라고 여행사에 이야기 했다. 반대로 나는 너무 많이먹는것 같아 조절했다. 밥이 왜이렇게 맛있는지. 아빠는 진 밥을 좋아하는데 산이라 꼬들밥이되어 나와 오버쿠킹을 요청했다. 엄마는 밥을 끓여먹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요청했다. 하쿠나마타타."
"항상 밥을 먹을때면 우리는 대접받고 가이드와 포터들은 그렇지 않은것이 참 그렇다. 우리가 돈을 낸것은 맞지만 포터는 그렇다쳐도 가이드와는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기에 마음이 많이 쓰인다. 어차피 음식의 양은 굉장히 풍족하고 우리가족의 식사량이 원체 많은 편도 아니라 하지와 파스칼에게 이것좀 먹어보라고, 이거 먹어봤냐고 하면서 함께 먹자고 유도를 하긴했으나...너희가 배불리 먹어야 내일 산에 갈 힘이 있다고 우리 챙겨주기 바빴다."
점심을 먹고 나니 조금 심심해졌다. 할일도 없고 가족들은 쉬는 중인데...캠핑장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하지에게 부엌 구경시켜달라고 했다. 마침 셰프가 저녁 메뉴 만드는 중이라며 어차피 자기도 가서 확인할 것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인도 3번 다녀온 내가 봤으니 망정이지 가족들에게 이 텐트안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글쎄 ㅋㅋㅋ식사 하실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이런곳에선 오로지 셰프의 얼굴과 끓고 있는 스프에'만' 집중해야한다. 주변은 보이지만 안보이는 것 처럼 생각해야한다. 어쨌거나 단한번도 배가 아팠던 적은 없었으니 뭐 괜찮음 :)
하도 심심해서 하지만 쫄래쫄래 따라다니니 하지가 동굴에 다녀오라고 다른 가이드를 붙여줬다. 원래 날씨가 좋으면 동굴 구경겸 동굴 위쪽으로 올라가볼 참이었는데 날씨가 좋지않으니 동굴까지만 다녀오라고 했다. 엄마는 쉬기로 하셨고 아빠와 동생, 모하메드와 오말리 이렇게 다섯이서 왔다. 크기는 굉장히 작지만 예전에 캠핑장이 없었을적엔 이 동굴에서 잠도 자고 불도 피우고 밥도 먹고 했단다. 지금은 푯말에 야영 금지라고 써있다.
동굴을 구경하고 밖을 나오니....대박.....
이래서 쉬라캠프가 좋았다. 햇빛의 폭이 넓다고 해야하나. 햇빛의 양이 굉장히 넓고 고르게 들어왔다고 해야하나. 포근한 햇빛이었다. 게다가 금새 또 안개가 급속도로 밀려오는 그런 광경도 멋졌다.
구름, 햇빛, 안개의 색도 매 초마다 변했다. 이 짧은 순간 이후 다시 안개가 캠핑장을 뒤덮었다.
저녁시간.
촛불 하나켜고 밥을 먹는다.
부모님께서 식사를 잘 하시지 못해 셰프가 이것저것 진수성찬을 냈다. 메뉴도 다양했고 밥도 두가지 종류로 했다. 정성이 한가득. 정말 고마웠다. 셰프.
이제 자야지. 어차피 깜깜한 어둠이라 보이는 것도 없다. 근데 침낭이 말을 안듣네? 결국 지퍼가 고장났다. 하지를 불렀더니 이렇게 실과 바늘로 고쳐줬다. 이런 가이드 봤나요...바느질 실력 엄마도 못 따라갈 수준급이라고 엄마가 어디서 배웠냐고 신기해하셨다. 못하는게 없는 하지.
하지를 보내려는데 와 하늘에 무슨일 난거지. 별이 쏟아진다. 이렇게나 많은 별 라다크에서도 못봤었는데 진짜 처음이다. 생전 처음. 밀키웨이가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 하늘도 굉장히 낮았고 색도 분명했다. 동생도 부르고 엄마도 부르고 아빠도 부르고. 엄마는 하늘을 보자마자 그 밤에 소리지르셨다. 어쩜 이럴수가 있냐며. 한참 감상하다가 사진도 찍어봤다. 막 찍어도 이렇게 나오니 대포카메라로 찍으면 대체 어떨까 싶었다.
쉬라캠프가 아마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구름 없는 하늘이 상대적으로 많이 보였던 곳이자 밤에 바람이 덜 불었던 곳. 텐트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있었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