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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ju Woo Sep 25. 2019

카랑가 캠프에서의 하루

카랑가 캠프, 해발 3995m

캠프에 도착하면 사인보드에서 사진 찍기 마련인데, 아니,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구조이다. 레지스터 하는 곳과 사인보드가 대부분 붙어있거나 캠프 사이트에 들어서는 루트 앞에 바로 사인보드가 있어서 자연스레 사진부터 찍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카랑가 캠프는 달랐다. 캠프 사이트에 들어서자마자 레지스터 하는 곳이 더 가까웠고 사인보드는 쩌어 위쪽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짐부터 풀어놓고 사진 찍기로 했다. 근데 우리 텐트가 쩌어 아래, 레지스터 하는 곳보다 훨씬 아래 셋업 되어 있으니 이미 지친 몸을 끌고 다시 레지스터 하는 곳을 넘어 사인보드까지 가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아니 그때 심경은, 아, 뭐 사진 안 찍어도 됨이었다. ㅋㅋㅋ 지금은 안 되겠으니 점심 먹고 찍기로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이따 저녁 전에 찍자, 저녁 전이되어가자 내일 찍자. 어차피 우리 글로 올라가야 된데 ^^ 그래, 그거 좋다. 그래서 우리는 사인보드를 내일 베이스캠프 가는 길에 찍기로 했다. 아주 잘한 결정.


그래서 다시 레지스터 한 그때로 돌아가면, 

레지스터 한 이후 쩌어 아래위 치한 우리 텐트를 향해 더 산행해야 했음... 진심 우리 텐트가 셋업 되어 있던 곳이 뷰가 기가막히긴 했는데 왜 또 내려가...??? 그러면 내일 더 많이 올라야 하잖아??? 이것 때문에 다들 지쳤었는데 텐트에 도착하고 나니 세상 뷰 전부 우리 꺼였다. 우리 앞에 아무 텐트도 없음 정말 좋았다. 

레지스터 한 곳과 킬리만자로를 등지고 다시 내려가는 중
파란색 식당과 양쪽 주황색 우리 텐트, 킬리만자로를 바라보며


카랑가 캠프에서는 꽤 여유가 있었다. 머리도 안 아프고 속도 괜찮고-안 괜찮아도 어차피 식욕이 폭발했다-시간도 많고 뷰도 좋고. 그래서 캠프에서의 하루를 기록해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착 후 신발을 바로 벗었다. 이동시에는 끈을 느슨하게 해서 돌아다니거나 버켄스탁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녔다. 

엄마와 나, 텐트에서
텐트에서 보이는 광경을 배경으로 사진.

더플백을 정리하며 침낭 깔고 사진도 찍고 하면 팝콘과 차가 나오니 잔뜩 먹기만 하면 된다. 


카랑가 캠프에서는 유독 텐트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도밖에 앉아서 마시기로 했다. 물 100미리 정도에 마일로 6스푼 넣으면 딱 맞음.

얼굴은 점점 부어간다. 밥을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고도가 높아져서라고 말하고 싶다.


차를 좀 마시다 보면 점심식사가 준비된다. 오늘의 페이보릿을 또 발견했다. 내가 매번 식사할 때마다 아음~~~~ 맛있다!!!라고 외치는데 ㅋㅋㅋ나중에 얘기해주셨지만 엄마는 식욕 제로, 아빠는 식욕은 둘째치고 빵에 질리셨었는데 나 혼자 계속 맛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했다고 식욕이 점점 늘어서 신기했다고 하셨다. 일기에서도 드러난다 내가 얼마나 해피해피했는지 :D 


산에서 쓴 일기 발췌(이하"")

"오늘 점심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은 진심 개짱맛. 여태 나왔던 것 중 최고라고 얘기할 수 있다. 우선 닭고기와 웨지 감자 그리고 마요네즈로 버무린 야채들 그리고 밥과 다진 고기 수프. 다진 고기 수프는 엄마가 잘 드셨고 마요네즈 야채는 아빠가 잘 드셔서 좋았다. 최고는 마늘장아찌에 마요네즈 야채와 감자를 하나 딱 찍어먹으면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 난다. 추천했다. 다들 인정했다. 후후. 닭고기도 가슴살이 참 맛났다. 오늘 진심 많이 먹고 싶은데 너무 많이 먹어 소화불량 올까 봐 참았다. 그리고 2시간 30분 뒤에 또 저녁식사가 시작되니 저녁을 위하여!"



점심을 먹고 나면 할 일이 없다. 엄마는 쉬셨고 아빠는 주변을 산책하셨다. 동생과 나는 하지가 빨래하는 것을 구경했다. 


"하지가 빨래하는 모습을 담았다. 세 바켓에 물을 각각 두었다. 1번 바켓은 비누칠해 떼를 빼는 곳 2번 바켓은 헹구는 곳 3번 바켓은 마지막으로 헹구는 곳이다. 그렇게 해서 바위에 널었다.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해서 비가 오다가 해가 나왔다가 요동이다. 안 마르면 어쩌냐니까 내일 마를 거고 아니면 그다음 날에 마르면 입는다 했다. ㅋㅋㅋ빨래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빨래를 다 한 뒤 하지와 파스칼이 아프리카 음식을 맛보라고 줬는데 진심 우리 점심보다 맛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이즈 가루로 뭉친 건데 그거를 손으로 뭉쳐서 수프에 찍어먹는다. 수프는 시금치가 들어가 된장국 맛 같이 느껴졌다. 짱 맛. 하지가 포터들이 이거 먹어서 힘이 세다고 하길래 그럼 그걸 우리 줘 여지 왜 우리 안주냐 했더니 그저 웃는다 ㅋㅋㅋ농담 천재 하지." 


오늘 저녁은 한국식 제육볶음이 나왔다. 여행사에서 신경 써주신 한식 부분이다. 거기에 우리가 이미 끝내버린 고추장아찌를 대체할 로컬 고추로 만든 장아찌까지. 고기는 양이 상당히 많았다. 맛도 있었다. 


"어제저녁은 우리가 많이 못 먹는 것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오해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의 식사량은 타가족에 비해 턱없이 작다. 아프리카에서는 내일 못 먹을 수도 있으니 매 식사를 마지막 식사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남기는 음식의 양이 굉장히 많아서 맛이 없거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 수 있게 할 수도 있단 생각에 파스칼이 아프리카 문화에 대해 얘기했을 때 우리 배가 그냥 작을 뿐야 음식 진짜 맛나라고 했었다. 사실이다. 가이드들은 우리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나 싶어 고민이었다는데 전혀, 실제로도 맛있다."


해는 일찌감치 밥 먹기 시작하면서 내려갔다. 밥 먹다가 뭐 좀 더 달라고 얘기하려고 밖을 나간 순간 은하수와 쏟아지는 별을 발견했다. 그리고 모시 시내가 한가득 반짝였고 킬리만자로 공항까지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나는 야경에 참 관심이 없는 편인데 이곳에서만큼은 밥 먹는 걸 중단하고 한참 구경을 했을 정도로 예뻤다. 

렌즈를 제대로 닦고 촬영했어야 했는데...


"오늘의 문제는 이거였다. 하행길에 겨드랑이 쪽이 갑자기 아파와서 기흉인가 라는 별 생각을 다했다. ㅋㅋㅋㅋ 그러다가는 갑자기 어깨까지 아파오길래 가방 때문인가 싶었다. 하행을 마치고 마지막 상행 코스, 거의 90도 경사를 올라오니 폐가 아프기 시작했다. 숨을 쉴 때마다 아픔이 느껴졌는데 경미했다. 혹시 몰라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하지(가이드)한테 말했더니 내가 아플 거라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뭐라고???ㅋㅋㅋㅋㅋ 하지 왈, 가방때문이라며 내일부터 자기가 들겠다고 했다. 평소 가방을 멜 때 허리 벨트를 골반이 아플 정도로 세게 매고 산행을 했다. 산행하면서 계속해서 골반이 움직이기에 벨트도 자연스레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출발할 때 아예 세게 묶고 가는 편이 나에게 맞았다. 그런데 우비를 입으면서 내리막길 코스에 굉장히 신경 쓰다 보니 미처 허리 벨트에 신경을 못썼나 보다. 마지막 90도 상행 코스 전의 마지막 휴식을 취하며 가방을 벗었다 다시 매며 허리 벨트를 점검하니 제대로 꽉 조여 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어깨에 무게가 가해지고 자연스레 가슴을 제대로 세워서 걷질 못하고 숙여서 걸으니 가슴과 겨드랑이 쪽이 짓눌렸던 것이다. - 나는 상체를 세워서 걷기 위해 팔짱을 끼고 동생은 뒷짐을 지고 걸었었다. - 그 사소한 실수가 이렇게까지 영향을 줄 줄은..."


먼지가....


"내 피부는 점점 빨개지고 각질이 나오고 난리다. 어차피 더 나빠질 것도 없으니 해도 정면으로 쬐고 물티슈로 마구 닦았다. 건조해서 그런 것 같은데 의외로 눈은 덜 건조해서 다행이다." 



"서플라이 먼트로 요청했던 스니커즈가 올라왔는데 코코넛 맛을 시켰다. 생애 처음 코코넛 맛 스니커즈를 맛보고 우리 취향이 아니라 전부 하지한테 줬다. 파스탈은 거기에서 우리 꺼 몇 개 있냐며 최소 10개 이상 있어야 된다며 걱정을 했다."


은하수.
동생.


"여기는 카랑가 캠프 사이트이다. 지금은 점심을 먹은 뒤 4:13이고 누워서 텐트 애 서 쉬고 있다. 하루 일과는 7시 기상 7:10 씻기 7:30 아침식사 8시 출발이다. 점심을 먹는 날엔 대략 1시 정도 도착 후 짐 정리 후 손을 씻은 뒤 팝콘과 차를 마신다. 이후 점심식사를 하는데 오늘 같은 경우 2:30에 했다. 저녁은 6시이고 씻고 잔다.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 다했지만 여기서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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