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Dec 16의 기록
2022년 12월 16일. 첫 취직했던 회사를 나왔다. 생각보다 퇴사는 별 것 없었다.
몇 장의 서류만으로 끝. 그걸로 내가 다녔던 회사는 너무나도 쉽게 나올 수 있었다.
회사에서 나오는 길, 그 날의 날씨는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는 추운 겨울이었다. 너무나도 추워서, 손이 얼어 핸드폰으로 문자를 하기도 어려운 날. 나는 꽁꽁 언 손으로 친한 친구들에게 제일 먼저 퇴사 소식을 알렸다. 부모님께는 먼저 말할 수 없었다. 나온다고 이전에 말을 해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늦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참 좋은 곳에 취직을 했다고, 네가 행복해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던 부모님이었는데, 서울로 올라간 딸의 회사가 한 순간에 휘청인다고 하니 마음이 편안할 리가 없었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퇴사를 한 것이라, 함께 나온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과 또 새로운 출발을 약속했다. 서울 한 구석의 공유 오피스를 빌려 매일 출근을 하자고 한 것이다. 그나마 방구석에서 땅굴을 파며 혼자 우울해 할 일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같이 퇴사 서류를 작성하고 나온 순간,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기분에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추운 겨울에, 주머니에 두 손을 쿡 쑤셔 넣은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군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상한 기분이네요. 월요일에 또 출근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인데. 저도요. 짧은 몇 마디의 말과 함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서로 힘이 되어주며 나와서 이직 준비를 하면 모두가 잘 될 것만 같았다.
집에 가는 길, 매일 퇴근하던 버스를 타고 집으려 향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시간은 대낮. 차 창 밖으로 지나가는 한강대교 너머 한강의 모습이 그날따라 왠지 쓸쓸해보였다. 확 트인 시야의 한강과 하늘에 쑥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에서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Kitri라는 일본 가수가 부른 <New Me>라는 노래였다. 반복되는 멜로디, 어딘가 편안한 보컬의 음향. 그리고 후에 찾아본 가사가, 보석 같은 노래를 발견했다는 마음을 들게 해주었다.
공감해주는 사람이나 이해해주는 사람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나아가는 마음이 중요해.
열정이 있으면 이름도 없는 목적지가 무섭지 않아. 좋아하는 대로 살아, 독특한 winner가 되는거야.
정확하게 번역 되어 있는 한국어 가사는 없었지만, 해석본과 내가 들은 바로는 이렇게 들렸다. 좋은 가사구나, 하며 노래의 좋아요 버튼을 눌렀다. 그 이후로 며칠을 들었는지 모른다. 집에 도착하니, 이전에 주문했던 맥북이 때마침 도착했다. 일을 하려면 장비가 필요하니 어쩔 수 없이 구매한 것이었다. 내가 생각한 첫 맥북을 손에 쥐는 순간은 조금 더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한데, 어쩐지 타이밍 좋게 도착한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그렇게 노트북을 켜서 세팅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아무 데이터도 없는 노트북. 마치 지금의 나와 같았다. 그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어려울 것도 없지. 주먹을 꾹 쥐고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안될 것도 없다면서, 계속해서 그렇게 되뇌이는 하루였다.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어른들은 회사에서 버티며 이직 준비를 할 것을 권유했지만, 보통 그 이유는 회사가 있는 것이 안정감이 있어서 버티라는 것인데, 지금의 판단으로는 회사 자체도 휘청이는데 안정감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그런 것에 대한 불만을 토해내는 직장 동료도 은근히 스트레스였고, 무엇보다 남아 있을 원동력이 되어주던 사람들도 회사를 포기하고 나간다고 하니 더더욱 버틸 이유는 없었다.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아 눈치만 보며 일을 대충하고 있는 사원들을 보니 더욱 희망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나는 나를 이런 곳에 방치해두고 싶지 않았다. 피하는 것보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번 기회가 새로운 다른 경험에 대한 출발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른들이 말하는 '사회에 찌들어 사는 것이 버겁고 재미 없는 어른, 무능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정했다. 퇴사를 했다.
지금은 공유 오피스를 빌려 공부를 시작한 지 첫 날이 되는 날이다. 한 것도 없이 피곤하지만, 또 다른 시작이 내일 기다리고 있으니 늘어질 시간은 잠시 접어두고 달려야 한다. 멀리 보되, 너무 여유롭게 굴지 말자. 가까이 매일의 할 일을 하되, 너무 근시안적인 사고를 하지는 말자. 삶은 무엇이든 적당히의 조율이 필요한 것이고, 이 방법이 가장 어려운 것을 안다.
아무튼, 그래서 퇴사 생활의 시작이다. 아무래도 힘들겠지. 스타트업은 혹한기고, 투자도 얼었고, 어딜 가든지 쉽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나의 커리어를 시작한 이상, 멈출 수 없다. 삶은 본래 이런 것.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그 안에서 잘 살아 남으며 즐겨야 한다. 이것이 삶이니까. 그래, 그 뿐이니까.
힘내자.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