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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fter 이후 Jan 13. 2024

사색의 시간

사색을 가지며 썼던 조각글 모음

운이 좋게 사색하기 좋은 두 곳을 찾았다. 


을지로에 있는 <라이팅룸>과 시청역 근처 덕수궁이 보이는 사색 카페 <마이시크릿덴>에서 사색을 즐기며 글을 썼다. 라이팅룸에는 쪽지로 다양한 주제를 제공했는데, 그중에서 사랑과 온기에 대해 적을 수 있었다. 조각글과 함께 장소 두 곳을 추천해본다.


을지로, Writing Room에서


#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날 문득 네 이름 세 글자가 생각나는 일이 잦아지는 것. 당연하게도 내 삶에 들어 앉게 되는 것. 애정을 노래하는 음악을 들을 때면 너와 함께했던 시간이 생각나는 것. 맛있는 것을 먹거나, 아름다운 순간을 목도할 때면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 그런 것이다. 쓰고 보니 사랑은 생각이다. 


생각은 곧 머리에서 퍼져나가 가슴에 도달한다. 마음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그렇게 가슴이 뛰는가보다. 오래된 빛바랜 사랑도 여전히 뛴다. 물리적으로 박동하기 보다, 온기가 맴돈다는 뜻이다. 사랑은 온기다. 


사랑의 정의는 사람마다 달라서, 타인에게 사랑의 정의를 물어보는 일도 즐겁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물으면, 질문을 받은 사람의 표정이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는 것이 좋다. 사랑은 행복이다. 사랑은, 사랑의 본래 사전적 정의보다 온갖 따뜻하고 기분 좋은 것들에 대한 정의를 대신 붙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생각하며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얼굴을 보니, 

그렇게 생각했던 사랑의 정의는 결국 당신 그 자체인 모양이다.



# 온기

온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작년의 겨울은 너무나도 추워서 유독 기억에 남는 까닭이다. 그 이후로 나는 겨울이 미웠다. 매번 좋다가도, 단 한번의 사건으로 계절 자체가 이리도 지독하게 여겨질 수 있다니.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혹독한 겨울에도 온기는 항상 존재했다. 유독 슬픔에 사무치던 날, 그 사람의 품에 기대어 목놓아 울었던 어느 겨울 밤의 온기를 기억한다. 전화를 받으며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기려고 하던 때, 나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느꼈던 온기를 기억한다. 자기도 똑같은 세월을 살아온 주제에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서투른 위로를 건네고는, 축 쳐진 내 어깨를 다독이던 네 손길의 온기를 기억한다. 


그렇게 작은 온기들을 모으다 보니 혹독하던 겨울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겨울이 고개를 들면 어느새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봄에게 차례를 넘겨준 것 뿐이지만. 코 끝을 간지럽히는 봄바람의 따스한 기운, 생명이 박동하는 봄의 온기를 느끼고 있으면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생각해보면 본래 우리네 인생들은 겨울이다. 그대로 있으면 얼어 죽을 테니, 서로의 존재에 위안을 받고 온기를 그러모으며 살아낸다. 그리고 언젠가 황무지같은 겨울에 온기가 필요한 누군가를 마주한다면 내가 받았던 온기를 그에게도 나누어 주며 함께 살아갈 뿐이다.


이것이 살아낸다는 것이다. 온기는 삶에서 필수불가결이다.



덕수궁 앞, 마이시크릿덴에서


# 어른이 된다는 것

어릴 적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자신만의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며, 그 돈으로 맛있는 것을 마음대로 사먹을 수 있는 것.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고 그만큼의 자유를 누리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 아침에 햇살이 들어오는 나만의 집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것. 그런 멋진 사람이 어른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의 말에는 책임이 따르니 조심해야만 하고, 좋은 커리어를 향해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많고, 돈은 꼬박 벌고 있지만 미래를 위해 오늘을 조금은 타협하며 포기해야 하는 부분은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 가끔 고된 일이 있으면 친구들을 불러서 늦게까지 알코올에 취해 있다가 아침은 포기하고 허둥지둥 출근하는 날이 있는 것. 그런 평범함을 인정할 줄 아는 것. 그런 것이다.


내 꿈은 재미없는 어른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남들이 말하는 그저 그런 직장에 들어가, 일에는 열의가 없고, 그저 일어나기 싫은 아침에 꾸역꾸역 일어나 많은 인파에 둘러쌓여 죽은 눈으로 희망도 없이 출근하는,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재미없는 어른은 그런 것이었다.


그랬었는데, 문득 돌아보니 그런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을 보니 눈에는 조금의 지루함이 내비쳤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삶에 조금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을 떠올린 김에 다시 거울을 보고 눈에 힘을 준다. 조금만 힘을 주면 안광이 돌며 예전의 안색을 되찾는 것이, 조금만 다시 더 노력해보면 되겠다고. 나는 여전히 삶에 열의를 담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그런 것이지만, 나는 보편적인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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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을 즐기고 싶다면 한 번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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