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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fter 이후 Nov 25. 2023

겨울의 어른

나의 아침과 새벽의 기록

글을 언제 가장 많이 쓰는가 하면, 힘들 때나 괴로울 때인 것 같다. 즐거울 때에는 문장을 엮을 생각이 별로 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은 조각의 기록일 뿐이다. 어느 겨울이라는 계절을 타는 어른의 이야기일 뿐이다.



- 12:01 AM 11/23

오늘 문득 잘 채비를 하고 방 안을 둘러보다가. 나만의 취향이 가득 담긴 방이 있다는 것, 돌아올 아늑한 곳이 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뤄 놓은 것이 별 것 없다고 해도 가진 것을을 잃는다면 뼈가 저리겠지. 그래서 내가 이 안온한 하루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까닭이다. 때로는 힘들고 고달플 때에도 이 자체도 삶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원체 삶이란 기복이 있는 것이니까.



- 10: 30 PM 11/24

흔들리는 것이 흔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 것. 인생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하루에 도대체 몇 십가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 감정을 느끼는 일에는 이상하게 한계가 없는 모양이다. 아침의 햇살에 기분이 좋았다가도,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기분이 나빴다가. 점심에 맛있는 것을 먹으면 또 기분이 좋았다가, 어느 오후 모종의 일이 생긴 탓에 우울해졌다가. 일과를 마치고 하는 산책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맞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또 세상살이가 별 것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가. 나 홀로 단칸방에서 저녁을 만들어 먹고 있으면 또 차분해졌다가. 이렇게 기복이 있을 수가 없다. 사람 감정은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결론은 원래 인생살이가 그런 것이라는 것. 인정하자. 편안해졌다.



- 12: 01 PM 11/24


당신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있었다. 인생은 고통이라고 했던가.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그당시 당신의 나이도 그리 들지 않았는데, 어째서 별로 살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단정을 내리나 싶었던 때가 있었는데. 되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항상 즐겁고 평온한 나날들이 이어질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이대로 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나 즐거운 일들이 많은데 왜 당신은 항상 우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 이르러서는, 당신은 죽은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인생은 미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쳐야만 하는 것이라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문장에 대한 뜻을. 


사람, 사람, 사람. 온통 사람들로 가득찬 주변이다.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그 모습들을 보며, 각자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움직이는 이유가 본인의 의지인지, 다른 사람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목적도 불분명, 앞으로의 미래도 불분명. 모든 것이 불확실로 가득차있으며, 주변에는 절규만이 가득하다. 대체 우리는 어디로 무엇을 위해 고통이 가득한 이 삶을 연명하고 있나. 아니지. 본래 삶은 그래왔던 것이다. 삶은 애초에 나에게 즐겁고 평온하기만 할 것을  약속한 적이 없다.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난무한다. 그들은 이것이 맞다고 하고, 저들은 이것이 옳다고 한다. 실로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나는 나일까. 너는 너이고. 우리는 애초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일까. 세상은 현실일까. 현실이란 무얼까.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기 위해 집중했을 뿐인데, 남는 것은 게슈탈트 붕괴밖에 없다. 기대를 너무 한 나머지, 모든 것이 완벽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폐해다. 


점점 미쳐가는 것만 같다가도, 우연히 본 아름다운 것들, 우연히 만났던 너, 당신과 나누었던 대화, 오늘의 날씨, 우연히 보았던 사람들의 미소와, 우연히 집어들었던 책의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소소한 것들을 위해 내일도 미치지 않고 살아간다. 삶은 여전히 고통임을 인정하나, 나는 당신과 달리 우울과 비관에 빠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 5:34 PM 11/25: 한 때 내게 삶이었던, 안리타의 책

모조리 읽었고, 감탄했다. 어려운 단어의 가미라던지, 유려한 문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마치 한 사람의 생을 통째로 고백 받은 기분이다. 삶이란 무엇일까. 삶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존재할 뿐이라는 것.


인간의 고통은 존재의 타당함을 증명하고자 함에서 발병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살았다. 삶의 열의는 존재의 결핍 의식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두 문장을 읽으며 머리를 가격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마냥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에 기반한 문장은 아니며, 다만 삶을 살아가던 중 감상에 의한 통찰이었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전반적인 작가의 삶을 보았을 때 평탄하지만은 않았다는 점도 놀라웠다. 자연을 바라보며 그저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는 줄로만 알았더니 현실적인 경제적 부분이라던지. 그 안에서 느꼈던 고통 또한 엿볼 수 있어서 인간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유년기 시절부터 삶의 어느 한 부분까지. 실제로 저렇게 삶이 아름다웠고 고통스러웠는지는 모를 일이나, 저렇게 담백하게 고백하는 듯한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재능이던지 노력의 부분일 것이다. 


부러웠다. 작가의 유년기 시절을 지금의 내가 살아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도 될 수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떠나 아무도 없는 자연으로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작가와 같이 진리를 추구하려는 사람도,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낼 자신도 없는 그저 겁쟁이일 뿐이라 그저 책에 대한 감상만을 올려두고, 가슴 한 켠의 작은 소망만으로 남겨둘 뿐이다. 그래, 언젠가 은퇴를 한다면 아무도 없는 적적한 산골이나 바다 앞이 좋겠어.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삶에 대해 토론하고, 아침에는 책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차를 우려 마실 거야. 


그래, 지금은 아닌 모양이다. 사람, 사람, 사람. 아직까지는 사람에 치이고 부대끼며 살아갈 운명이다. 그래도 자신을 긍정하고 지키며 살아가며, 사라지는. 그런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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