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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멀 IMEOL Sep 03. 2019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내현적 자기애에 대하여.

"내가 너를 위해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늘 고민하고 노력하는데…."


평소에 나를 힘들게 하던 상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약해진 적이 있는가? '(그 노력이 어떤 노력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데…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상처를 주는 그 행동에는 전혀 변화가 없고, 또다시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는 한다. 하지만 저 말에서의 노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노력일까?


만일 내가 저 말을 자주 듣거나, 자주 상대에게 한다면 한 번쯤 생각해볼 법하다.




자신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에 대해 떠올려보자. 흔히 나만을 사랑하고, 나만이 세상의 중심인 양 행동하는 과장된 나르시시즘을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하며 다른 사람들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되어 있는 '내현적 자기애' 또한 존재한다.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는 거대하고 과장된 자기 지각과 과시적인 태도, 과도한 찬사 요구가 특징이다. 또한 외현적 자기애와는 달리 그것이 무의식적이고 내면에 숨겨져 있다. 또한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어 보이지만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욕구와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상태이다(강선희, 정남운, 2002).

내현적 자기애 성향이 강한 사람은 상처 받거나 거절당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자신을 지각하는 것이 과대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무언가를 거절했을 때 훨씬 크게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굉장히 봉사적이고 헌신적인 인간관계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소심하다고 여겨지는 특징과는 다르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잘 표현되지 않지만 사실은 '너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고 위하는 착하고 좋은 나'에 취해있을지도 모른다. 즉, 상대를 위해 늘 고민하고 헌신하려는 노력은 정말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해서 그것을 충족해주고자 하는 노력이 아닐 수 있다.


너는 너, 나는 나


병리적인 자기애 성향이 강한 사람과 오랜 기간 지내다 보면, 상당히 지치고 힘들기 마련이다. 특히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부던히 노력하는 사람을 상대한다면 더욱 그렇다. 더욱이 당사자는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 때 내가 상처받지 않기 이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이렇게 너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너도 내 기대에 충족하기 위해 노력해!'

내가 내현적 자기애 성향이 강한 사람을 오랜 기간 만나며 꾸준히 들어온 메세지이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런 이야기를 자꾸 듣다보면 정말 스스로가 잘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저 사람은 좋은 의도로 한 거였는데, 내가 이상하게 느낀건가? 지금 내가 힘든 게 이상한 걸까?'

자꾸만 나를 돌아보고 채찍질하는 생각이 들 때, 그 사람의 기대와 평가를 나와 일치시키며 자기감이 흔들리기까지 한다. '기대를 충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나는 못나고 부족한 사람이야'와 같이 말이다.

그럴 때 나를 지키는 방법은 그의 기대와 나의 행동을 분리하는 것이다. 


가령, 몇 달 간 새로운 일로 나의 업무 성과나 태도를 은근히 지적하며 힘들게 한 상사가 있다고 해보자. 그는 새로운 일이 끝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자신이 살테니 금요일 저녁에 갑작스럽게 회식을 제안했다(제안이라 쓰고 통보라 읽는다). 나는 지금 너무 쉬고 싶고 지쳐있다. 그러나 그 사람 나름대로는 우리를 생각해서 회식자리를 마련했을 것 같고,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바라는 것 같다. 이럴 때 나는 그가 바라는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 할까?


실제로 사회 생활을 위해 억지로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것과는 별개로 생각했을 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아니오'이다. 우선 그 사람은 동료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보상을 제공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바라는 것은 그 사람의 기대일 뿐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루고 있는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나의 과제와 상대의 과제를 분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상대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나를 미워할까봐 걱정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고, 내가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것도 그 사람의 마음이다. 그리고 내 행동이 달라진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이 달라진다는 보장도 없다. 당연하지만 나는 나고 너는 너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부던히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힘들고 변화가 없을 때. 그리고 그 노력의 대가로 자꾸만 무리한 기대를 충족시키도록 요구할 때. 그 사람의 행동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자. 그냥 스스로의 모습에 취해 하는 행동 같다면, 과감히 그 사람의 기대를 못 본척 해보자. 나는 나고 너는 너니까! 



[Reference]

강선희, 정남운 (2002). 내현적 자기애 척도의 개발 및 타당화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14(4), 969-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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