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멀 IMEOL Aug 30. 2019

우울이, 불안이, 행복이

정서를 인식하고 명명하기

생각과 행동, 그리고 정서는 연결되어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신체화되어 몸의 고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비합리적인 신념이 우울한 감정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생각과 행동은 비교적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자꾸 떠오르는 생각을 다른 생각으로 대체한다거나, 발상을 전환한다거나 하는 등의 노력이 가능하다. 또 우리가 팔을 올리고 내리는 것도 비교적 자유롭다. 그렇다면 감정, 즉 정서는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




지난 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부정적 정서를 느낄 때 임시방편으로 활용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https://brunch.co.kr/@ajrzn1153/2


그러나 이렇게 집중을 잠깐 딴 데로 돌리는 전략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결국에는 나의 정서와 마주해야 그 정서가 완전히 해소된다. 나는 정서가 마치 풍선 속에 뭔가를 채우는 것 같다고 비유하고는 한다. 잠깐 고개를 돌려 풍선을 보지 않을 수 있지만, 그 풍선 속에 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 상황은 계속해서 생길 것이고, 한참 후에 다시 풍선을 돌아보면 이미 터지기 직전이다. 취미생활을 하는 것은 잠깐 풍선을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고 즐거운 활동을 하러 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풍선 속에 든 정서를 꺼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렇다. 그 정서가 무엇인지 알고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지금 떠오르는 감정들을 단어로 이야기해보자. 

어떤 사람은 '슬픔, 기쁨, 분노'처럼 큰 덩어리로 말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벅참, 행복, 뿌듯, 희망, 실망, 우울, 불안, 아쉬움, 억울함, 무망감' 등 훨씬 쪼개진 단위로 말할 것이다. 

이는 감정이 얼마나 세분화되어있는지,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익숙한지 보여준다. 떠올리다 보면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정말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정서에 이름을 붙여줄 때는 최대한 구체적일수록 좋다. 예컨대 한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고, 그 곳에서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안경 쓰신 분!'
'빨간 옷을 입으신 분!'


이렇게 불러도 내가 안경을 쓰고 있거나 빨간 옷을 입고 있다면 반응은 할 것이다. 그렇지만 비슷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 많을 때는 혼란스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다면 어떨까?

'우울님!'
'행복님!'

확실히 부르는 범위가 좁아지고, 정서를 마주하여 명명하기 수월해진다. 내담자들에게 '지금 어떤 마음이 드세요?'라고 질문했을 때, 감정의 분화가 어려운 사람들은 흔히 '답답해요'라고 말한다. 많이 분화된 감정을 보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뭉뚱그려진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 답답함을 호소할 수 있다. 




나는 정서를 조절한다는 것은 그 정서를 불러서 마주한 뒤에 달래주는 것이라 생각한다(MBTI의 NF 성향이 강해 은유적인 표현을 즐긴다). 최대한 정확하게 그 정서를 불러서 '많이 힘들었지?', '생각을 조금 바꿔보면 네가 이렇게까지 힘들고 아프지 않아도 돼', '괜찮아 네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와 같은 말들로 돌보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인 정서를 인식하고 명명하는 것은 어떻게 연습할 수 있을까? 가장 꾸준히 연습하기 좋은 것은 정서 일기를 쓰는 것이다. (어차피 나만 알 수 있는 것이니 솔직한 감정을 마주하는 연습을 해보자). 

예컨대 오전에 회사에서 상사에게 지적을 받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저녁에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분전환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상사에게 지적을 받았을 때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었는데 지적을 받았다면 억울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동료들이 다 있는 상황에서 큰 소리로 혼났다면 수치심과 원망이 들 수도 있다. 혹은 별로 큰 지적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일이 생각나 우울함이 배가되었을 수도 있다. 친구들과 기분전환을 했을 때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친구들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후련했을 수 있다. 또 힘들 때 의지할 친구가 있다는 것에 대해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을 느꼈을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사고와 감정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혼난 뒤에 '부장님이 나한테만 왜 그러시는 건지 생각했어요'는 감정이 될 수 없다. 부장님이 나한테만 다르게 대하는 것 같아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는 것까지 보아야 감정을 마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소리 내어 말해보자.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아 내가 오늘 부장님에게 서운했고, 또 억울했구나."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서 든든하고 고마웠구나."


처음에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다. 풍선이 가득 차기 전에 조금씩 바람을 빼주면 잘 터지지 않는다. 이는 풍선을 다루는 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 



Reference

이지영 (2016). 정서 조절 코칭북. 시그마프레스.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 구름, 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