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과 여유를 기억하려 쓰는 글.
오후 느지막한 적당한 시간. 가장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사람들과 나들이에 나섰다. 사실 나들이를 계획하게 된 것은 어떠한 의무감에서 시작되었다. 이 한가로운 주말과 오늘의 날씨를 놓친다면, 다시 언제 올 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런 날씨에는 꼭 바깥에 나가서 햇빛을 1시간이라도 쬐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아 어제 너무 늦게까지 놀아서 힘든데. 꼭 가야 할까?"
"그럼 잠깐 자고 3시에 나갈까?"
"아니. 더 늦어지면 우리 진짜 못 나갈지도 몰라."
"그럼 그냥 지금 이 상태로 몸만 나갈까?"
정말이지 대화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일사불란했다. 주말에 외출을 한다는 것은 게으른 편인 나로서는 상당히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제도 꾸물거리다 예쁜 하늘을 놓친 나는 제법 비장한 각오였다. 사이즈 업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3잔, 커피를 열심히 마신 증거로 받은 피크닉 매트,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책도 한 권, 배드민턴 라켓과 셔틀콕, 챙기다 보니 또 보부상 마냥 한 짐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집을 통째로 가지고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
"아냐. 다 쓸 데가 있을 거야."
한강에 도착한 우리는 최대한 사람이 없고 조용하면서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나섰다. 주말의 한강은 정말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강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 캐치볼이나 배드민턴을 즐기는 사람들, 자전거를 빌려 타는 사람들, 돗자리에 누워 간식을 먹는 사람들. 우리는 마지막을 목표로 했다.
제법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았고, 우리는 움직임 한 번에 감탄 한 마디씩을 하며 돗자리를 펼쳤다.
"오늘 날씨 진짜 최고다!"
"자리를 너무 잘 잡았어!"
"경치도 좋은데 심지어 그늘이야. 게다가 시원해!"
돗자리를 펼치고 자리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은 그야말로 쾌청 그 자체였다.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 얼마만인지. 창문이 없는 연구실에서 주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는 푸른 하늘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물감을 쏟은 듯 새파랗고, 닿지 않을 듯 높은 하늘. 그리고 나와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듯 천천히 유영하는 구름. 어쩌면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흘러가는 구름과 같은 삶일지도 모른다. 구름을 움직이는 기분 좋은 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까지! 정말 모든 것이 완벽한 날씨였다. 나는 누워서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다 나지막이 말했다.
"진짜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렇게 우리는 한강에서 해가 질 때까지 실컷 여유를 즐겼다. '해야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자유롭게 하는지 느끼면서 말이다. 책을 펼쳤다가 그만 읽고 싶으면 덮고, 배드민턴을 치다가도 금방 멈출 수 있다. 하늘이 보고 싶을 때는 고개를 들어 한참 구름이 흘러가는 걸 바라볼 수 있다. 다시 한번 역시 바쁜 호흡으로 돌아가는 일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꽤 긴 시간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선유도공원으로 향하는 다리로 산책을 갔다. 마침 해가 지면서 하늘이 분홍색으로 물들어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햇살에 물든 뭉게구름을 가장 좋아한다. 같은 덩어리로 흘러가면서도 그 면면이 많은 색을 품고 있다. 보고 있으면 아련함이 느껴지는데, 해가 지는 것이 아쉬워 빛을 담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에 떠있으면서도 하얗게 흘러가던 때와 달리, 햇빛에 물들어 동화되는 시간의 구름은 너무 아름답다. 집으로 돌아가며 최근에 하루가 가는 것이 이렇게 아쉬웠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일정도 날씨도 사람도 그리고 나의 마음도. 이렇게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져 행복한 기분이 들 때면, 이 순간이 끝날까 봐 불안해진다. 계속해서 마음이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일까. 지난달 일기에 써둔 문장이 떠올랐다.
'마냥 나쁘기만 한 일은 없고, 마냥 좋기만 한 일도 없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지나간다.'
그렇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고, 아무리 행복해도 영원히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행복했던 순간을 잊지 않기 때문에 힘든 날들을 살아나갈 수 있다. 그래서 행복했던 오늘을 잊지 않으려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