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 May 12. 2020

슬기로운 휴학 생활 4화

와장창, 휴학 계획이 깨지다



내 mbti는 entj로 계획이 깨지는 것을 싫어한다.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해 하루에 정해둔 계획을 마치고 드는 잠을 좋아한다. 다이어리에 대략적으로 한 달간의 계획을 정해두었는데, 1월 한 달간 토익에 몰두했으니 2월에는 놀러도 다니고 여행도 다닐 계획이었다.



그러나, 2월 초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결국엔 한국의 전 지역을 강타시켰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내 일상에도 큰 타격을 줬다.

이로 인해 내가 포기했던 것들을 적어보자면


2월 초, 내가 다니는 대학 지역에서 열리는 영화 프로그램에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 상영과 감독님이 오셨는데 하필이면 그 지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가지 못했다.

둘째 언니 오프에 맞춰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었는데, 여행은 무슨 집 밖에도 나가기 힘들었다.

2월 말쯤,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못 보게 됐다. 티켓팅에 성공해서 1월 한 달간은 그 밴드의 노래만 들었었는데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기왕 인턴 할 거면 서울에서 해야지 라고 생각했으므로 서울 지역으로 인턴 서류를 넣었었다. 넣었다고 무조건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합격한다 해도 그곳에서 인턴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더 이상 인턴 서류를 넣지 않게 됐다.

보고 싶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다니던 토익학원은 홀수달과 짝수 달이 배우는 내용이 달랐는데, 짝수 달을 넘기면 홀수달을 넘겼다가 다음 짝수 달까지 기다려야 했다.

원래 하려고 했던 대외활동이 무기한 연기됐다.

최종 합격까지 했던 국제영화제 스태프를 영화제가 비공식으로 돌려지면서 할 수 없게 됐다.



이것 말고도 앞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더 생길 수도 있다. 처음에는 하나씩 포기해야 할 때마다 분했었는데, 이제는 뭐 너무 익숙해져서 그 타격이 줄어들었다. 기회를 놓친다는 건 또 다른 기회가 온다는 것이니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그렇지만 그 기회도 코로나가 가져갈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렇다 보니 강제 집순이가 되어 버렸다. 나는 성향 자체가 밖순이라 집에 붙어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억지로 집순이가 된 만큼 억지로 집에서 할 무언가에 대해 다시 계획을 세웠다. 안타깝게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됐지만 이대로 무료하게만 있을 수는 없으니 집에서 할 수 있는 계획으로 다시 세웠다.

1. 책 30권, 영화 50편  : 원래도 하려던 계획이었지만, 이 계획에 더 몰두하게 됐다. 5월 10일 기준, 책 38권을 읽고 영화 50편을 봤다. 계획을 달성했지만 기준을 더 높이려고 한다.

2. 홈트레이닝 : 운동을 해서 내가 원하는 몸매를 만들고, 건강한 몸을 만들고 싶다. 마찬가지로 5월 10일 기준, 5kg을 감량했다.

3. 공모전 출품 : 고등학교 때는 공모전 참가율이 높았었는데 대학생이 된 이후론 학과 생활에 치이다 보니 따로 공모전 준비까지 할 시간이 없었다. 우연히 내가 내고 싶었던 곳에서 공모전이 열려 그곳에 집중하고 있다.

4. 에세이 쓰기 : 죽기 전에 자전적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다. 지금은 블로그로 일주일에 두 번 19980827이라는 에세이를 업로드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다음에 종이책으로 출간해볼 생각이다.


이밖에도 언어 배우기, 토익 복습하기 등이 있지만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은 아니라서 제외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생기고, 연장되면서 우리 부모님의 걱정도 나날이 늘어나셨다. 부모님의 걱정 덕에 원래 집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집에만 있으려다 보니 답답하고 우울하기도 했다. 종종 SNS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맘 편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나의 멘탈을 위해 SNS를 끊었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는 거다.


어김없이 집에 있다가 친구에게 전화가 왔었다. 그때도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었는데 그 친구는 나에게 "넌 아직도 집순이니?"라고 물었다. 내가 당연한 건지 네 물음이 당연한 건지 웃으며 얘기했지만 통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저 말이 은근히 거슬리긴 했다. 집순이라는 말에는 집에서 먹고 놀기만 하니?라는 말처럼 들려 집에 있다는 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답답하다 보니 사람이 부정적으로 변하는가 보다. 이럴 땐 무시가 답.


내 길은 내가 걸어간다.


그냥 무시하고 내 할 일 열심히 하기로 했다. 네가 밖에서 먹고 놀 시간에 나는 집에서 유익한 시간을 보낼 테다 라는 마음으로.


처음에는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코로나가 죽도록 미웠다. 하필이면 이때 딱 코로나가 터져서 내 일상을 망쳐놓는 것일까 원망했다. 다만 오로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SNS 세상이 아닌, 내 주변만 돌아봐도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안 찾아오는 게 훨씬 좋았겠지만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거 일상의 소중함에 감사함을 느꼈다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고, 포기하게 되니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집순이도 이만하면 충분해!



이 글은 5월 1일에 쓴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기로운 휴학 생활 3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