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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Nov 15. 2022

범죄는 환경이 열악할수록 강해진다.

그럼에도 사회의 어두운 곳에 불을 비춰야 한다.

19번째 보유 사건 처리기간 319일 경과.

19번째 사건이 319일 동안 담당자의 시스템에서 깜빡이고 있다.


며칠만 더 채우면 1년째 , 365일 동안 사건을 가지고 있는 걸로 평가된다. 319일 동안 얼마나 했고 얼마나 잘 처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담당자는 무능한 직원으로 찍혀 버린다. 주기적으로 얼마나 더 진도가 나갔는지 진행상황을 정리한 수사보고서를 만들어 결재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결재권자는 담당자를 불러서 빨리 처리하라고 압박한다. 시스템의 한계에 갇혀서 서로를 비난하는데 워낙 익숙해 그러려니 한다. 시스템은 고소. 고발 사건을 접수 후 90일 이내에 처리하면 국민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규정해 놓았다.

그래서 경찰 수사 규칙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경찰 수사 규칙 제24조(고소. 고발 사건의 수사기간) 1. 사법경찰 관리는 고소. 고발을 수리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마쳐야 한다.

이 19번째 사건은 수사경력에 가장 큰 이정표가 되었지만 시스템은 무능한 수사관으로 만들었다. 319일도 모자라 무려 458일 동안 사건을 가지고 있었으니 무능한 직원을 넘어 감찰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후에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까?'


1년이 넘도록 사건 기록에는 피해자들의 삶과 이를 연결하는 담당 형사의 삶이 배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이어 줄 피의자의 삶이 필요했다.

사건 충격으로 기억을 해내지 못하는 피해자들과 함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던 수개월.

현실로 돌아온 피해자들과 함께 흩어진 기억을 조합하면서 현실을 재구성하는데 수개월.

실체도 모르는 피의자의 존재를 찾아내기 위해 방황했던 수개월.

온라인과 오프라 인속 삶의 연결점이 되었던 이메일 분석에 매달렸던 수개월.

능력의 한계에 부딪혀 사건을 방치했던 수개월.

시간이 흐를수록 시스템은 담당자를 무능하게 만들었지만 피해자들은 나의 뒤에 서 있었다.

이런 응원은 담당자를 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메일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다. 데이터를 해석하고 다시 조합하고 부족하면 영장을 받고 다시 데이터를 해석하면서 뉴욕 JFK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피의자를 끌고 왔다. 시스템은 이 사건을 잊었지만 피해자들은 달랐다. 항상 나의 안부를 묻고 걱정해줬다. 피의자 특정 후 피해자들을 사무실로 불러 그동안의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텅 비어있는 회의실에서 피해자들을 불러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때 수사지원팀에 근무하던 한 후베는 플랫카드도 만들어줬다.(지휘관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여러분들이 후에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제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으로 서로 많이 성장해 있었다. 앞으로 피해자들에게는 이런 사건은 절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것이다. 이 분야에서 만큼은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범죄는 환경이 열악할수록 강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의 피싱 범죄는 이메일을 타깃으로 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핸드폰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이메일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메일은 현실 속 삶과 온라인 속 삶을 이어주는 마스터 키가 될 것이다.


플랫카드를 제작해준 후배는 다음 인사이동 때에 지휘관이 바뀌면 보고 자료로 만들어 주겠다며 적극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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