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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nG May 06. 2020

디자이너와 포드 V 페라리

디자이너의 역할과  시안

작년 가을 포드 V 페라리라는 영화가 개봉했었다. 미국 포드사의 'GT40'에 관한 지극히도 '포드 관점'에서만 만들어진 영화인데, 뭐 이런저런 미국뽕과 아직 안 들어본 이탈리아의 입장을 빼고서 보아도 볼거리는 많은 영화이다. 60년대 미국 경제 부흥시기의 차들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오픈카라 셔츠나 볼링셔츠, 벨 헬멧 등 과 같은 60년대 패션들과 쫄깃한 레이싱 장면은 멍 때리고 보게 된다. 간혹 나오는 드라이버들의 이름(현재는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네임이 된...)을 발견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영화의 큰 스토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며 미국의 양산형 차를 만들던 포드사가 양산형 차를 탈피하고 스포츠카 시장을 노리기 위해  레이싱 대회인 르망 24에서, 이미 고인 물인 이탈리아의 페라리 타도를 외치며 GT40이란 포드 최초의 레이싱카를 제작하여 우승하는 것까지의 이야기이다.

포드의 첫 스포츠카 모델인 GT40


영화 초중반 포드사는 페라리와의 인수합병 불발당시 페라리 측으로부터 "크고 못생기고 느린 차나 만들라"는 카운터에 명치를 맞고 절치부심하여 미국인으로서 최초 르망 우승자인 레이서이자 차량 디자이너로 그 유명한 '쉘비 코브라' '쉘비 머스탱'을 만든 '캐롤 쉘비'와 그의 절친이자 최고의 레이서인 ' 켄 마일스'를 영입하여 본격적인 스포츠카 생산에 돌입한다. 하지만 개발과정에서 포드 측 임원들은 자신들을 '포드맨'이라 부르며 켄마일스와 쉘비 역시 '포드맨'처럼 따르고 행동하길 원했고, 모든 시스템에서 기존의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며 포드다움을 강조한다. 기존의 포드를 탈피하기 위해 영입한 사람들에게 포드다움을 강조하는 아이러니 라니....... 당연히 그 결과 포드는 첫 줄전한 대회에서 페라리에게 대패를 넘어 참패로 이어졌다................


 굿윌 헌팅 시절의 풋풋한 제이슨 본... 아니 맷 데이먼은 우연찮게 현재 배역인 캐롤 쉘비의 코브라 쟈켓을 입었었다.

얼마 전 한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 연락이 왔다. 본인들의 새 매장 인테리어 매뉴얼과 기존의 B.I체계들이 너무 여러 가지 형태로 정리가 안되어있고, 제 각각이라 새롭게 정리하고 새로운 이미지로 바꾸어 보려 한다고 했다. 기간도 촉박하고 금액도 여유롭지 않았지만 인테리어 매뉴얼과 B.I를 포함한 전반적인 매뉴얼을 함께 진행하는 작업이기에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클라이언트도 고루한 느낌을 버리고 트렌디한 디자인을 원한다길래  수락했다. 우리 회사는 계약 전에는 시안을 내지 않기 때문에 대략적인 컨셉과 방향을 보여 줄 수 있는 레퍼런스 이미지로 계약 전 미팅을 한다. 그렇기에 브랜드 분석과 디자인 컨셉 도출을 위한 방향성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부득이하게 PT를 할 수 없어서 클라이언트에게 자료를 전달하고 자료의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클라이언트에게 돌아온 피드백은 우리가 넘겨드린 자료에 대한 반박과도 같았다. 이건 이래서 안 될 것 같고, 저건 저래서 안될 것 같고, 이건 너무 분석이 안 된 것 같고,  우리 브랜드는 이래서 이렇게는 안될 것 같고, 우리 브랜드는 이건 꼭 들어갔으면 하는데 그건 빠져있고, BLAH...BLAH...BLAH...BLAH.........


바꾸려면 철저히 바꾸라시던 회장님


바꾸고  싶어서 불렀는데, 정작 본인들은 안 바뀌셨네요....

믿기로 했으면 맡기는 것이고, 맡기기로 했으면 믿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디자이너의 역량과 결과물의 질 또한  중요하다. 디자이너는 그 결과물 이전에 치밀한 브랜드의 분석과 요구사항, 디자인 흐름 등을 종합하여 그러한 결과물을 제안해야 함이 마땅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디자인을 던져주고 '너의 안목이 나의 디자인을 따라오지 못하는구나...'라며 디자인적 선민의식을 가지며 정신승리하는 디자이너는 빨리 다른 직업군으로 넘어가 주시길 바란다.  디자이너 역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었을 때 할 말이 있는 것이지, 그것을 충족하지 못했다면 대나무 숲에나 가서 혼자 외치시길....


물론 저러한  상황이나 클라이언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미적 감각을 앞세워서 디자인에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하면, 어느샌가 메스는 마체테로 변해서 숭덩숭덩 순대 썰리듯 썰려나간다. 썰리고 썰려나가서 질깃한 꽁다리만 남는 거지...


영화에서 켄 마일스를 명단에서 제외시키고 다른 레이서를 출전시키려는 비비 부사장의 꼼수에 캐롤 쉘비는 포드 2세 회장을 직접 GT40에 태워 레이싱카의 무서움과 '레이서는 단순히 빠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 준다.


디자이너도 역시 디자이너이다. 단순히 베란다 확장만 해주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디자이너가 갓 뽑아낸 시안을 에스프레소, 클라이언트 의견을 물이라 가정하자. 시커먼 에스프레소에 적당량의 물을 넣으면 맛 좋은 쪄죽따, 얼죽아가 된다. 하지만 물이 많아져서 점점 희석되면...................

9번 테이블에서 클레임이 들어왔샤.....커피 시켰는데  커피콩 담갔다 뺀 물 줬다고 말여......



좋은 시안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났을 때 비로소 좋은 디자인이 된다.

믿을 만한 좋은 디자이너를 찾고, 디자이너를 찾았다면 믿어주는 클라이언트가 늘어나길 바라며, 그 믿음에 실력으로 답해주는 디자이너가 늘어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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