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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희 Feb 18. 2020

인과적인 다행

[리뷰] 영화 '작은 아씨들'을 보고



현아, 어쩌면 너의 생일에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작은 운명 아닐까. 우리 인생은 아주 작고 소중한 운명들로 이루어져 있잖아. 너와 내가 한 배에서 태어난 것, 공유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 너는 영국 나는 서울에 있다는 것, 멀어진 거리만큼 애틋해질 수 있다는 것.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거쳐오면서 머리를 쥐어뜯고 싸우기도 하고 네가 언제나 건강하기를 바라고 네가 가려는 길을 반대하다가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이런 무수한 이야기가 이 영화에 있어.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라는 구절을 들려준 적 있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의 명대사야. 이 영화는 그 문장을 계속 떠올리게 해. 마침 이 영화의 포스터에도 비슷한 결의 문장이 적혀있지. "우리의 인생은 모두가 한 편의 소설이다."

명화를 한 땀 한 땀 깁어 영화로 만든 것 같은 아름다운 시퀀스와 그 아름다움 속에서 여성 각자의 삶이 변주되고, 슬픔과 기쁨이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반복돼. 낭만적인 과거는 따뜻한 색감으로, 비루한 현실은 차가운 색감으로 표현되면서 말이야. 행복은 멀어 보이고 불행은 가까워 보인다는 우리의 대화가 생각나는 순간이야. 현아, 혹시 그거 아니. 행복과 불행에서 쓰이는 행은 똑같이 '다행 행'이 쓰여. 행복은 다행 행과 복 복이 만나 '다행인 복'이 되고, 불행은 아닐 부와 다행 행이 만나 '아닌 다행'이 돼. 어떠한 수식어가 붙든 나는 '다행 행'이라는 말에 큰 의의를 두고 싶어 져. 불행도, 행복도 삶에서는 다행으로 읽혀서 말이야. 사람이 만드는 영화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래. 버릴 장면이 없어. 불행은 이겨낼 수 있는 장치, 행복은 더 크게 나아갈 발돋움이 돼. '우리의 인생은 모두가 한 편의 소설이다'라는 영화를 대표하는 이 문장은 우리 인생의 불행과 다행도 인과적인 다행이 된다는 셈인 거지.


현아, 작가가 되길 꿈꾸는 주인공 조는 엄마에게 말해.


"여자는 감정과 영혼이 있는 존재예요. 여자는 외모만이 아니라 재능이 있어요. 사람들은 여자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결혼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어요."
조가 자신의 글을 자극적인 요소만 편집해 신문사에 돈을 받고 투고하는 전반부에 비해 대비되는 대사야. 자극적인 요소만 편집하지 않겠다는 확신이기도 하지. 너는 종종 내가 왜 비혼주의자인지, 왜 사랑에 관해 쓰는 걸 그만뒀는지 궁금해했잖아. 한때는 나도 불행이라 여겼어. 내 가치관이 뿌리내린 것을, 이 뿌리가 너무나도 단단해서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된 것을. 하지만 작은 운명으로 짜인 우리 삶에서 그게 과연 불행이기만 할까. 사랑만 쓰던 여성인 내가, 주변으로 시선이 확장되고 여성의 삶에 대해 쓴다는 게 과연 '아닌 다행'일까.

감정과 영혼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는 자꾸 별것들을 쓰고 싶어 하고, 사랑으로부터 몸부림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불행이라 여겨온 가치관의 확립이 이겨낼 수 있는 장치가 되었어. 이 영화로 인해. 내 삶으로 한 편의 시와 소설을 쓴다면 분명히 사랑만이 있지 않거든. 쉼 없이 너와 다투고 화해하던 유년 시절, 입시에 실패한 날, 무수한 외로움, 이불을 내려칠 정도로의 분노, 잠을 물리치고 오는 질투와 열등감이 있을 거야.

너에게 이 영화를 마구 추천하고 싶어져. 우리의 삶에는 사랑만이 있지 않고, 여러 사건과 장면이 교차하며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고. 근사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노라고. 달려가는 조의 미소가 내 마음을 질주하고 있어.

언젠간 불행을 다행으로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 편지를 보내.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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