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모복은 타고난다.
2024년 10월 27일 일요일,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부모복은 내가 선택하고 태어나는 걸까 선택당한 걸까, 강제인 걸까 자발적인 걸까.
지속적으로 자행되는 아버지의 발작과 폭언, 협박이 도를 넘어 다시금 나를 휘몰아쳤다. 우리 아버지는 참 나에게 끊임없이 바라고 또 원망하며 폭력적이다.
어릴 땐 내가 좀 더 공부를 잘해야지만 성에 차 하셨고, 반에서 10등 밖을 벗어날 때면 성적표를 집어던지며 학교를 가려는 나를 붙들고 때리고 원망하고
패륜아 취급했다. 그리고 내가 지덕체를 겸비한 완벽한 딸이 되기를 대놓고 주지시켰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눈칫밥이 일상이라 식탐이 생겨서
아빠가 원하는 늘씬하고 예쁜 딸이 아닌 늘 요요로 고생하는 퉁퉁한 딸이 되어갔고 또다시 구박한다. 똑똑해져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대들고 버르장머리가
없으며 잘난 척한다고 미워한다. 이러면 이런다고 미워하고 저러면 저런다고 미워한다.
기준은 현재 본인의 감정상태다. 좀만 불안하고 우울해지면 그 모든 탓은 나에게 돌아온다. 가장 화내고 감정쓰레기통 짓을 하기에 적합한 상대,
본인의 어두운 민낯을 드러내도 아무런 보복이 없고 손해가 없으며 다 참아주는 사람은 외동딸은 나뿐이다.
그래서 난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외동딸이냐고 묻고 확인하는 게 너무 싫고 부담스러웠다. 또 프레임을 씌우니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와 확증편향을 많이 당하며 살았다. 쉽게 말해 지레짐작으로 나를 평가당하기 일쑤였다.
늘 아빠는 세상에 불만이 많다. 세상이 다 문제고, 본인의 기분과 기대를 벗어나면 곧바로 분노를 뿜어낸다. 그러나 자신에게
물질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이득이 된다 느끼면 그런 의협심은 완전히 사라진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인 것이다.
나는 그 결과 누구보다 마음공부, 내면세계,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습관이 생겼고 혼자서 이 모든 짊을 감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MBTI는 INTJ로 오롯이 성장했다. 실제로 여성들에게 가장 적다는 유형.
엄마 아빠는 늘 내가 자취를 못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는다. 당신들이 굉장히 불쌍하다고 여기며 부모덕을 못보면서도
장유유서로 과도하게 할머니 할아버지께 순종하고 희생하는 삶을 사셨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호인이다. 그러나 내리사랑을 받고자 한다.
그 모든 한과 원죄, 업보는 다 나에게로 대물림 되었다. 나는 욕받이고, 감정 쓰레기통이며 아랫물이다. 나는 40년을 산 지금껏 벗어나지 못했다.
결혼을 못한다고 구박하지만, 정작 남자를 데려오면 다 반대했다. 기준과 메뉴얼이 없다. 그때그때 눈에 보이는 데로 불평하고 문제시 삼는다.
늘 생색을 내시는 부분이 있는데 어릴적 도시락을 매일 싸준것과 등하교를 태워주신 것이다. 그때도 나를 태워주는 차에서 도로위의 다른 차와
싸움을 벌이셔서 내가 개입해서 울고 같이 싸우는 감정소모를 해야 끝이 났다. 늘 내 감정을 소모시키고 에너지를 빼간다.
두분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셨다. 그 이유는 바로 이런 정서적 영향력을 간과하기 때문이란 걸 모르기 때문이다.
늘 내게 말씀하셨었다. 너도 어른이 되보라고, 어른이 얼마나 힘들고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넌 어려서 모르는 거라고.
지금 내가 그 나이인데 나는 절대 사회생활에 대한 힘듬을 부모님께 전가하거나 의지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놀며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 나이가 되보니 알겠더라 그냥 우리 아빠가 너무 많이 유약하고 의존적인 거라고, 본인이 약해서 가까운 관계의 사람에게 끊임없이 화풀이를
하고 감정을 퍼부어야 해소가 되며 자신의 마음이 지옥이라 남들도 계속 그 상태에 있길 바라는 것. 그런데 자녀이기에 자신에게 금전적
성공으로 지원은 바라니 그게 원하는 액수만큼 될리가 있나, 죽어야 끝날 이 악순환의 고리, 왜 이런 부모를 만난건지 전생을 탐구해야 끝나는
이 답 없는 길고긴 문제점들. 이젠 왠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버티는 강철 멘탈이 되어버렸다. 내 심장엔 철심이 수백개 박혀있으니까..
난 한집에 악플러와 산다. 원래 브런치에 쓰고 싶은 글감은 다른 것이었는데 이 부분이 너무 휘몰아쳐서 자꾸 내 일상에 계속 끼어드니 오늘의 주제가
아빠, 부모복, 부모님 욕으로 바뀌었다. 내가 그동안 태어나서 봐온 부모들 중 우리 부모님보다 심한 케이스는 더 글로리의 문동은, 장윤정의 부모와 추자현의 부모
정도가 떠오른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 무섭고 야속하고 두렵다. 세상 누구보다 내 말이 먹히지 않는 분들이고 남들보다 내게 냉혹하며 무관심하고
나에 대한 편견과 불만, 가스라이팅이 심하고 나를 혼내는 재미에 사는 정도로 본인들의 자존감과 사회적 자기 효능감은 바닥을 친다.
최근에 사람들을 관찰하며 느낀 바가 있다.
기대는 진실을 동반한다는 거다. 내가 누구에게 아직 기대가 남아있고 바라는 게 있다면 , 연락이 하고 싶다면 그건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왔다는 거다.
도움이 되거나 내 맘을 채워준 적이 있었다는 거다. 그런 부분이 고갈되거나 아예 채워진 적이 없다면 아무리 기대와 헛된 희망이 큰 사람이라도
상대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게 된다. 무념무상이 되고 혐오하다가 어느덧 관심을 끊어버린다.
우리 부모님은 내게 늘 탓을 하고 혼내고 욕설을 퍼붓고 협박을 하고 소리를 치고 분노를 뿜어대며 뭘 해주지 않는 다 고래고래 소리치며 효도를 늘 강권하시지만
진짜로 불효하는 자식에게 부모는 절대 이러지 않는다. 기대가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빠의 논리는 전부 틀렸다. 아빠는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 나보고 나이 마흔 먹어서 언제까지 애처럼 굴 거냐고 조용히 저녁을 차려먹는 내게 폭언을
했지만 스스로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몇십 년째 아빠는 지치지도 않고 나에게 돈을 바라고 왜 더 열심히 살지 않느냐고 왜 더 결과물을 만들어서 보여주지
않느냐고 끊임없이 보채고 불평하고 닦달을 한다. 따로 살 때는 왜 연락을 하지 않느냐, 왜 나를 데리고 여행할 플랜을 짜오지 않느냐, 아버지가 학원사업을 하셨을 땐
왜 무급으로 일해주지 않고 돈을 받으려 하느냐고 나를 몰아붙였다.
오늘은 고 김수미 씨의 죽음까지 거론하며 나를 협박했다. 그래서 사주에 능통한 내가 대답했다. - 아빠로 인한 세상의 부조리함을 일치감치 깨닫고 6살 때부터 나는
운명학을 탐구했다. 김수미 씨는 나와 사주와 운의 흐름이 같아. 아빠가 아니고, 그랬더니 아빠는 소리쳤다. 너 지금 하다 하다 부모한테 네가 먼저 죽는다고
협박하는 거냐? 이 불효녀아???
불과 며칠 전 엄마는 야근하고 기진맥진해서 들어온 나에게 고생했다 밥은 먹었냐 등의 상식적인 답이 아닌 엄마가 요즘 죽을 거 같아 너는 그럼 어때?라는
말로 하루 인사를 시작했었다.
오늘의 나는 좀 더 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이치와 원리를 탐구하려면 갈길이 멀구나 생각을 하며 일단락 지어야겠다.
평소에 누구보다 이성적인 나라고 자부했는데 이러한 최강 빌런들이 가장 옆에서 괴롭히고 나면 멘털이 많이 흔들리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아빠를 피해서 다녔었는데, 더욱더 늘 붙박이처럼 집에 붙어있는 아빠를 피해 어디론가 떠돌아다녀야겠다.
우리 엄마 아빠라고 세팅된 두 분의 내면자아에는 어떤 괴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걸까?
우리 엄마 아빠를 잡아먹고 기생하는 악귀라고 위로도 많이 하는 것 같다.
내가 이래서 영화와 드라마, 다큐, 역사물을 좋아한다.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다. 다음부턴 제대로 정신 차리고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고자 한다.
나의 불행이 누군가에겐 위로와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애써 떠올리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