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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랄라 Aug 08. 2020

15년 후면 환갑이다

나에게 쓰는 글

시간은 기어가기도, 걸어가기도, 뛰어가기도 하는 듯하다.

스무 살이 맞이하는 시간과 사십 대 중반이 맞이하는 시간은 느껴지는 긴장감이 매우 다르다. 올해가 지나면 마흔다섯이 된다. 살아온 날 만큼 앞으로 더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중년이라는 나이에 당당히 입성해 버렸다. 아!  


슬슬 걱정도 밀려온다.

15년 후면 환갑인 데, 노후 연금, 보험 하나 없는 우리 부부 괜찮을까? 에 대한 대화가 여느 때 보다 진지해 지곤 하는 요즘이다. 결론은 <안 괜찮은 것 같은데…>로 종종 끝나는 데, 이러한 사실을 알아도 딱히 방법이 없으니 그냥 미뤄 두는 것이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통화할 때 공감 팍팍! 온몸의 공감 세포가 이곳저곳 촉을 세운다. 가끔 통화하는 영국의 친한 친구는 자다가도 노후 생각하면 벌떡 일어난다고 하였다. 뒷목이 댕겨서.

사십 대 중반이 된 친구들과의 대화는 재테크, 노후, 자식 교육, 대출금 상환, 퇴직 후 삶이 주를 이룬다.  




나는 종종 억울한 생각이 든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노후를 걱정해야 하다니…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내가 직장을 접고, 아이가 쑥쑥 커가고, 세월에 맡겨 그날그날을 후루룩 살아내다 보니, 이제 남편의 퇴직 후를 걱정해야 한다.  


내가 서 있는 지금 이 자리도 의문이다.

오랫동안 떠돌며 살아온 외국 생활에 대한 피로감과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으면서 ‘아차’할 때가 있다. 세월의 변화에 둔감했던 순진함과 미련함이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이루려 던 꿈들의 허상에 매번 속아버린 건가?

아니다. 이런 회의적인 생각은 나를 좀 먹는다. Stop!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한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

빨리 달리는 기차에서 밖을 보았을 때의 세상의 속도와 멈춰 서 있는 기차에서 바라본 세상의 속도는 다르다. 그렇다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인생과 그 자리에서 여유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자의 세상에 대한 삶의 속도는 다른 것일까?

나도 달리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러면 세상은 천천히 변해야 하는데 매번 세상의 속도는 나를 뛰어넘고 있다.


별로 안 뛰는 것 같은 우아한 내 지인들의 세상의 속도가 훨씬 느려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조인가? 수면 밑에 오리발로 물살을 들입다 쳐내고 있는…

아니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는 DNA가 정녕 있단 말인가?   




얼마 전, 주식에 빠져있는 언니와의 대화를 통해서 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재테크!


언니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라>는 그 재테크의 세상!


재테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바꾸어 버리는 힘을 가졌구나!

그래! 나도 더 이상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   




작년 겨울부터 주식을 하나둘씩 사기 시작했다.

Seed money가 충분치 않았지만 주식 시장을 맛볼 수는 있는 금액이라 조금씩 조금씩 하나씩 하나씩 욕심 내지 않고 샀다.

근데 급락을 한다. 자꾸만 내려간다.

겁이 나서 팔면 올라간다. 잘도 올라간다. 이런!

남편은 한국 주식 말고 미국 주식을 해 보라며 독려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83달러에 산 주식이 60달러 후반으로 급락한다. Oh! No!  


6개월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주식을 하며 깨달았다. 이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머피의 법칙을 막을 방법이 없다.  




조작된 기억과 허상이 아니라면 나는 내 의지를 믿고 싶다.

세월이 가서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고, 무덤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자유의지에 내 몸을 맡겨야겠다. 그리고 그냥 열심히 뛰면서 살아야겠다.

<달리기는 노안도 동안 만들어 준다> 던 기사가 떠오른다.

재테크는 못해도 열심히 뛰면서 젊게 살아야지! 오늘의 다짐이다.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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