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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Sep 02. 2020

02.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원래 일은 다 이렇게 배우나요?

패션, 공연, 여행, 음악 분야 사회적 기업에서 우리를 각각 나누어 데려갔다. 나는 공연이나 축제 등을 기획하는 문화기획자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공연 분야의 사회적 기업은 기획자가 아니라 당장 무대에 설 수 있는 퍼포먼서를 원했다. 그래서 그다음으로 기획을 해볼 수 있고 그나마 문화랑 가깝다고 생각한 여행 분야의 사회적 기업을 골랐다. 


당시 나는 주 5일 일 8시간을 근무하면서 세금 떼고 290,100원을 받았다. 필요하지 않은 인력이지만 내가 속해 있던 대안프로젝트 측에서 부탁해서 데려가는 거고, 우리는 일경험을 제공해주지 않느냐라는 명목 하에 책정된 급여였다. 열아홉에 처음 근로계약서라는 것을 썼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때 자존감이 좀 깎여나갔던 것 같다. 필요하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받아주는 거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그 기업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사실만 포함한 말이긴 했는데, 나는 어쩐지 짐덩어리가 된 것 같아서 많이 속상했었다. 그래도 들어가면 뭐라도 배우겠지. 일이라도 제대로 배우겠지. 대학을 가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 첫 시도니까 열심히 해보자. 집에 와서 그렇게 다짐했었다.




처음 들어가서는 대표가 분위기 파악 정도 하고 있으라고 했다. 회사 컴퓨터가 없어서 집에서 쓰던 넷북을 들고 갔다. 당장 신입 OJT라도 할 줄 알았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해도 당시의 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쌩초짜, 인력이라고 할 수 없는 보릿자루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회사는 여행 상품을 개발한 직원이 가이드까지 도맡아서 하는 시스템이었다. 여행 상품을 개발하는 절차는 생각보다 느슨해서 담당자가 '나 이거 하고 싶어요'라고 밝히면 대부분 여행지 답사후 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당연히 자기 상품의 고객 응대도 본인이 했다. 따라서 여행 상품의 질과 고객의 만족도가 담당자의 능력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근데 여행 상품이라는 건 대체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개발하는 거지? 나는 이 여행 상품이 좋은지 나쁜지 구별하는 눈도 없고, 수익을 어떻게 얼마나 내야 하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고객 전화를 받을 줄도 모르는데. 설상가상으로 나는 길치에 방향치였다. 에코여행을 진행하는 회사라 산으로 걸어 다니는 여행상품이 대다수였는데, 그런 데서 잘못 길 잃으면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살려고 지도 보는 법을 공부했다. 스마트폰이 갓 나온 시절이라 지도 어플을 켜서 나침반 기능을 사용해 길을 찾는 것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후 내 사수가 배정되었다. 첫 사수는 마케팅 팀이셨고 나는 여행 팀 소속이었던지라 몇 주 있다 같은 여행 팀의 다른 분으로 바뀌었다. 두 번째 사수는 해외여행 담당자라 완전 신입인 내가 곁에서 배우기엔 어려운 일들을 많이 하셨다. 해외여행 상품 개발을 위해 답사도 나가셔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국내여행 담당자인 사수로 바뀌었다. 아마 딱히 신입 사원을 육성할 체계는 없으니 경력자가 알아서 쟤 사람 구실 하게 만들라는 것 같았다.


어찌 됐든 인트라넷에 들어가서 그동안 쌓인 보고서를 줄창 읽고, 회사 홈페이지도 들락날락하면서 어떤 여행 상품이 있는지 보고 했는데도 시간이 참 안 갔다. 그러다가 대표가 갑자기 두 번째 사수의 가이드 보조를 하라며 해외여행 상품의 가이드로 던져 넣었다. 국내여행도 아니고 해외여행... 그때 나는 여권도 없어서, 근처 마트 사진관에서 급하게 여권 사진 찍고 여권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그 여행에선 사수가 엄청 고생했다. 나는 거의 도움이 안 되는, 고객 수준의 직원이었으니 혼자서 얼마나 뛰어다니셨는지. 여름에 더운 나라로 갔었는데, 나는 가이드는 '덥다' 같은 말을 하면 안 되는 줄도 몰랐다.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수증 챙기고, 사진 찍고, 보고서에 넣을만한 것들 기록하고, 고객들이랑 대화하고 민원사항 있으면 사수에게 얘기해주고... 그 정도였던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여행 프로그램 진행, 돌발상황 대처, 가이드로서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것들은 못했다. 절 데리고 다니면서 화도 한 번 안 냈던 사수 분... 잘 지내시죠...? 그땐 죄송했어요. 


해외여행을 다녀와서는 사수가 대표에게 문제제기를 했는지 쭉 국내여행 가이드 보조만 했다. 사수도 바뀌었다. 국내여행은 훨씬 편했다. 일단 해외여행에 비해 변수가 적었고, 기간도 대체로 1박 2일 정도로 짧았다. 국내여행은 내가 할 수 있는 서류 작업도 좀 더 많았다. 사업보고서랑 지출결의서 쓰고 영수증 첨부하고 그런 서류 작업들이 나에겐 하나의 일거리를 마무리 짓는 느낌이라 다 하고 나면 되게 뿌듯했다. 이렇게 약 2~3개월 정도 가이드 보조를 하면서 어떻게 상품을 기획하고 진행해야 하는지 몸으로 체득했다. 틈틈이 다른 분들 사업보고서를 계속 보면서 수익률 설정과 상품의 콘셉트 및 프로그램 구성을 어떻게 하는지도 서서히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일에 재미가 붙었다.




사실 처음 입사하고 나서 3개월 동안은 거의 매일 옥상에 올라가서 울었다. 너무 못하니까. 계속 민폐만 끼치니까. 일을 시작하기 전엔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었다. 스스로 적극적이면서 뭐든 좋아하고 잘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장에서 나는 10대 후반의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당장 현장에 투입될 수 없는 찌끄래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당연한 건데 그때는 그게 스스로 용서가 안됐다. 적어도 민폐는 끼치지 않고 싶었다. 


그때는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보다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강한 시절이었다.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나에게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고 해주고 싶다. 그 에너지 모았다가 나중에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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