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냄새는 안나고.'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기 전 첫 공기에 대한 평이다.
해외 여행은 그 나라의 공기 냄새를 맡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글쎄 특별한 냄새가 없다.
여행 오기 전 유튜브로 본 건데 이봉주 선생님의 성함을 버릇없게 부르면 인삿말 완성이란다.
"봉쥬."
그대로 했다. 좀 통하는 것 같다.
별 말 없으신 택시 기사님과 짧은 인사를 주고 받고 시내로 향한다.
타지에 오니 한국에서 탔던 택시까지 생각이 다 난다. 지각이 의심되는데 부랴부랴 대중교통 타서 내내 핸드폰 속 분침을 보며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돈을 주고 정신건강을 찾겠다는 내 철칙은 짧은 거리도 택시를 부르게 했다. 심지어 버스 타는 것과 이동 거리상 별로 차이 나지 않는 거리도 말이다. (요금은 5배 차이)
불과 작년만 해도 택시 기사님과 주고받는 만담이 꽤 쏠쏠했는데, 요즘은 목적지까지 조용히 라디오만 듣다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 근래 기사님과 수다 떤 기억이 거의 없다. 기사님마다의 성향보다 택시 안에서도 무언가를 바쁘게 하고 이어폰을 꽂으며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다. 파리의 기사님을 슬쩍 보니 업무에 열중하고 계신다. 어디서 왔냐는 흔한 질문도 또 질문할 만한 관심도 없는 듯 하다.
차창으로 관심을 돌려본다. 여기는 선텐을 진하게 하지 않네. 경차가 많구나. 다 차가 낮네. 차마다 누가 운전을 하는지, 조수석에 앉아있는 사람과 어떤 관계인지, 개가 있는지, 차에 짐은 왜 저렇게 많은지... 다 보인다. 진짜 다 보여서 안을 들여다보다가 차 주인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되게 빤히 쳐다봐서 고개를 돌린다. 외국인과 이렇게 정통으로 눈이 마추진 적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인지 겨울인지 다녀온 파주 영어마을 이후 처음이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둔다. 파리 기사님은 이 정도면 의도적으로 쳐다보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만큼 백미러로도 나와 일행을 쳐다보지 않는다. 백미러로 눈이 마주치면 슬쩍 웃어드리겠다고 다짐 했었는데, 파리 조금 딱딱하네.
파리는 지금 교통 파업 중이다. 그래서인지 공항에서 도심 가는 길도 그렇고 파리 시내에 차가 천천만만이다. 아까보다 좀 더 거리를 살펴본다. 해가 수평 너머로 넘어가고 하늘이 잿빛에서 짙은 남색이 되는 시간, 거리에는 대부분 흑인이다. 다들 바지핏이 예술이다. 다리가 길고 얕게 비가 흩뿌려지는데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은 채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걷다가 심심한지 선탠이 약한 우리 택시 안으로 나를 본다.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나를 본다. 한국이 생각난다. 나는 동양인 젊은 여자고 내 옆에는 나보다 더 쫄아있는 여동생이 보인다.
망했네.
15시간 전 공항부터 얕게 떠있던 설렘이 이제는 차창 너머 풍경과 맞물리며 무겁게 가라앉는다. 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