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예찬 산책 코스
여름의 열기 속 기다려지는 건 강렬한 기세가 한풀 꺾이고 난 후의 어스름한 무렵이다. 찰나의 이 시간을 차분히 걷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잘 보낸 것처럼 마무리 되니 오늘도 걸을 수 밖에.
범섬
서귀포 도심의 이름난 '섶문새범'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 섬이다. 솟아난 모양도 두 글자의 이름도 비슷비슷해서 각각의 섬을 인지하기 헷갈릴 수 있지만 걸음 후 이곳에 당도하면 단번에 네 개의 섬 중 범섬이 또렷히 마음에 자리 잡을 거라고 확신한다. 제주올레 6코스 중반부 구두미포구에서 가장 잘 생긴 범섬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데,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양옆의 아스팔트 길이 지루하다 싶어도 서서히 존재감 있는 섬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하면 무거웠던 걸음이 그새 황홀함으로 물든다. 해지기 전 붉게 스며든 하늘, 선명한 섬의 질감, 어우러지는 포구의 분위기까지 백 번 천 번 서귀포에 살길 잘했다.
걸매생태공원
회사와 집 근처에 공원이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달라진다. 직관적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걸매생태공원은 자연 생태 중심으로 조성되어 가벼운 산책으로 단시간에 자연의 에너지를 흠뻑 흡수할 수 있는 장소다. 이름의 '걸매'가 매화의 '매'자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피어나는 매화로 봄의 시작을 알게 되고, 개울가로 흐드러지는 벚꽃잎으로 봄은 절정을 맞이 한다. 물론 굳이 봄이 아니더라도 사계절 온난한 서귀포답게 항상 푸르러 계절을 가리지 않고 피톤치드를 흡수할 수 있다. 데크 산책길에서 바라보는 모든 곳곳이 아름답지만 하이라이트는 단연 한라산 전망. 제주올레 7-1코스 막바지에 걸매생태공원이 속해 있어 코스 완주의 감동이 배가 될 만큼 초록의 효과는 강력하다.
서귀포항
관광객의 대부분 천지연 폭포와 새연교를 찾아 도착하게 되는 곳. 산책이 주는 최적의 효과를 위해 사람이 많은 관광지는 배제하는데, 의외로 해가 지는 시간대에는 인적이 많지 않고 동네 주민들이 주를 이룬다. 인근에 '제주올레 6,7코스', '작가의 산책길', '칠십리시공원' 등 걷기 좋은 길이 모두 위치해 있어 '오늘 운동 좀 해야겠다' 싶을 때 마음 먹고 연결해서 장거리로 걷는 코스다. 자연이 유독 선명해지는 어스름한 무렵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걷기에 매진하다보면 훌쩍 깜깜해진 때 맞이하는 서귀포항 야경도 무척 근사하다. 총총하게 차오른 항구 일대와 새연교의 조명이 밤을 깊어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