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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모사 Sep 07. 2022

한강뷰보다 한라산뷰

전셋집의 애환


그럼에도 온 대지를 품고 있는 것만 같은 너른 능선의 전망이 좋아서.



바다뷰가 좋아요, 한라산뷰가 좋아요?

셰어하우스에서 하루빨리 독립된 공간을 갖고 싶었다. 다행히 회사와의 적당한 거리, 풀옵션, 청결함에 부합하는 건물 원룸이 매물로 여럿 있어 고민은 어렵지 않았다. 부동산 아저씨는 같은 건물이지만 전망이 다르다며 바다를 좋아하는지 산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제주스러운 프리미엄 옵션이다. 사방에 아무것도 없이 망망한 바다보다는 서귀포 주택가를 감싸 안은 듯한 한라산의 너른 품에 단번에 사로 잡혔다. 매일 한라산과의  맞춤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지독한 출근 기상의 스트레스도 잊게 했다. 계절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녹음의 표면을 감상하는 것도 날씨가 맑을 때에 드러나는  아래 짙은 솔오름을 발견하는 것도 모두 잔잔한 섬에서는 드라마틱한 일이 되었다.


미니멀리스트의 최후

당시에는 코딱지만 한 집에 살아 보고 싶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로망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살던 주택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청소와 마당 관리 모두 내 몫이 되었는데, 특히나 푹푹 찌는 한여름에 에어컨 없이 온 집안을 쓸고 닦는 건 그렇게 고역일 수가 없었다. 해서 집을 고르게 된다면 전제 조건은 무조건 작아야 했다. 작은 평수는 금액 면에서도 합리적인 미니멀리스트를 꿈꾸게 했다. 그리고 3년 후, 맥시멈리스트는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거주기간에 비례하는 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서랍 밖으로 새어 나왔고, 방안을 차지하는 짐들에 가뜩이나 좁은 방은 안락한 생활환경의 정체성을 잃어갔다. 1인 가구의 정신 건강을 해치지 않는 크기가 왜 10평 이상인지 뒤늦게 똑똑히 알게 됐다.

    

더불어 사는 원룸

그동안 단독 주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원룸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려고 누웠을 때 아랫집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를 듣기까지는. 똑같이 소음 유발자가 되기 싫어서 간혹 손님이라도 올 때면 작은 소리라도 새어나갈까 철벽 통제하는 걸 보고, 엄마는 집이 아니라 감옥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크기는 맞다) 이런 이유에는 2년 동안 윗층 옆집에서 들려오는 층간 소음을 겪어서다. 경상도 출신의 부모와 어린아이가 사는 3인 가정은 빈번하게 새벽까지 화목하지 못했는데, 한동안 잠잠해져서 이사를 간 줄 알았으나 몇 달 후 갓난아이 울음소리와 함께 돌아온 가족은 4인 가정이 되어 있었다. 원룸이 이렇게나 서로가 가까운 곳이었다니.

   

집주인과 나의 관계

하필 집주인은 부르는 말도 왜 집주인인지 꼭 주인에게 종속된 노예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그동안 난 우리의 관계가 파트너십이라고 생각했었다. 집 계약 때 처음 만난 집주인은 돈 많이 벌어서 이 집을 사란 덕담도 건넸었다. 전해 들은 지인들은 그거 욕 아니냐고 4.5평을 왜 사냐고 비웃었지만. 계약이 끝날 때가 다가오니 집주인은 좋지 않은 집 상태에 대해 전부 나를 탓했고, 아니라기엔 원래의 모습을 증명할 바가 없어 너무나 원통했다. 게다가 문 앞에 택배로 보낼 이사 박스를 본 후 쓰레기를 왜 집 앞에 두냐고 당장 치우라고 말하며 우리의 감정은 극에 달했다. 엄마는 원래 남의 집에 살 땐 별 드러운 일이 다 있다고 위로했지만, 3년 동안 내 신분이 슈퍼 을인걸 나만 모르고 있었던 울분은 꽤 오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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