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말이지만 작사가라고 인정받는 것도 중요했지만 난 그저 작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좋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랫동안 작업해오면서 한곡도 방송에 나오지 않는 곡을 작업한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던 건 사실이었다.
정민이가 2집을 준비하고 있던 여름이었다. 그때도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는데 (대학 졸업 후 전업 작사가가 되기 전까지는 인테리어를 했었다) 그 와중에 성진이와 한곡을 주었다.
성진이가 처음 데모 테이프를 들고 왔던 날 그 자리에서 들어볼 수 없던 나는 집에 돌아오는 순간
(내게는 변변한 카세트 플레이어도 없었다) 여동생 방에 들어가 옷도 벗지 않은 체 카세트를 넣고 음악을 들었다. 그 당시 내게 가사를 쓴다는 것 자체보다는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작사 작곡을 한다는 것에 더 마음을 주고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되어진다. 너무나도 오랜 친구이면서 또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이기에 항상 즐거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건 난 고성진이라는 친구가 만든 멜로디를 좋아했다는 거였다.
그가 내게 준 멜로디를 들으면 수만 가지의 형상들이 떠올랐고 그만큼 여러 가지로 글을 쓸 수 있어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아! 데모 얘기 중이었지!.... 카세트를 트는 순간 난 충격을 받았다 단번에 느낄 수 있는 아주 세련된 멜로디 ,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 작곡가이자 친구였다!
음악을 다 듣고는 성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진아! 정말 좋은 곡이야 아마도 히트하겠는걸"
사실 대로 얘기하자면 정확히 성진아 고생 끝 행복 시작 이야 라고 말했다... 그만큼 기대가 큰 곡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많은 글들을 멜로디에 붙여봤다 아무리 열심히 써도 멜로디가 주는 감동만큼은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기간은 늘 정해져 있고 가사는 주어야만 했다.
분명히 기억한다. 압구정동 에 있던 어느 카페에서 내가 성진이에게 가사를 보여주었다.
자신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성진이는 몇 단어를 제외하곤 쓰겠다고 말했다
친구이자 일의 파트너란 현실은 쉬운 관계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120곡 정도를 같이 쓰기까지 미묘하게 불편한 부분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서로를 배려하면서 잘 지내왔다.
그 당시 내가 성진이게 말했다 다음번엔 정말 잘 써주겠다고 이번은 더 이상 표현할 길이 없으니 이쯤에서 이해해 달라고 말이다.
웃긴 건 그 당시 아무도 우리의 곡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나와 성진이만이 서로의멜로디와 가사를 좋아하고 소중히 생각했다.
보통 발라드는 가을이나 겨울에 발표되기 때문에 여름에 작업을 많이 한다. 노래가 녹음되고 가을쯤에 정민이는 2집을 발표하게 되었다.
스물아홉에 겨울 참으로 암담한 날이었지만 꿈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정민이 2집 타이틀은 또 우리 곡이 되지 않았다 서른이 되고 있었고 이젠 조금은 더 현실적이 돼야 한다고 세상과 타협하려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고 싶었던 것이 현실과 괴리를 만들고 더 이상 꿈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고 느끼던 이십 대의 마지막 벼랑 끝에서 이젠 우리들도 포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현실을 조금씩 받아 드리려 했던 어느 날이었다.
난 동업하던 인테리어 회사를 그만뒀고 성진이는 광화문 어느 지하 작은 사진 스튜디오에서 보조 사진기사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성진이와 나는 그런 대화를 했었다
아무래도 우리 음악은 안되나 봐! 음악은 취미로 즐기자........
하지만 슬픈 언약식으로 히트를 치던 정민이는 이내 써브 타이틀 인 "마지막 약속"을 다시 녹음한다는 얘기를 했다.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았다. 다시 녹음하게 되던 그날 녹음실에서 조차도 나는 믿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겨서 우리가 쓴 곡은 방송에 나오지 않을 거야!라고 그렇게 생각되었다.
녹음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서른의 봄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방송에서는 "마지막 약속" 이란 곡이 발표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난 만족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곡을 쓴 작사가가 아니라도 좋았다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작사했다는 것 그것으로도 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으니 말이다.
운이라는 거 참 무서운 놈이다. 안될 때는 무엇을 해도 안되더니 한번 운을 타고나니까 정민이의 힘을 얻고 노래가 알려지는 게 아닌가!
결국엔 처음 방송된 곡이 수치상으로는 공중파 가요프로 1위를 했다.
그때의 감동은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혼자서 자축하며 술도 마셨더랬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히트 작사가 나왔다
늘 말하는 거지만 길의 끝에서 다시 길이 시작되듯이......... 절망 속에서도 빛이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