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한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소설이 마지막이니, 거의 네 달 가까이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이다. 책에서 멀어지니, 쇼츠, 유튜브와 같이 도파민 가득한 미디어와 가까워지더라. 다시금 책을 읽어야지란 생각으로, 종종 보는 유튜버가 진행하는 북클럽에 참여했다. 매일 인증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라 다시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였다. 읽을 책은 이미 충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새 집에 머물게 된 지 벌써 7달째가 되어가니 그동안 들렀던 서점에서 한 두 권씩 계속 사 와서 (읽지는 않았지만) 스무 권 남짓한 책이 책장에 꽂혀있다. 그중 하나를 꺼내 읽으면 되는 거였다.
최근에 예고편을 보고 보고 싶던 영화가 있었다. 김고은 배우가 나오는 "대도시의 사랑법"이 그것이었다.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친한 친구가 SNS에 원작 소설을 읽고 책 후기를 인증글로 남긴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나서 친구에게 "이 책 재밌어?"라고 물었다. 거의 항상 영화보다도 원작 도서들이 더 낫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순간의 진정한 재미를 원작 소설을 통해 느끼고 싶은 맘이었다. 친구가 쉽게 읽힌다고 했다. 쉽게 읽힌다는 말에, 다시 독서를 시작하기에 적당한 책이라 생각이 들어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책장에 가득함에도 새로 책을 구매해 버렸다.
친구의 말대로 책은 술술 읽혔다. 병원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금세 한 권을 다 읽어버렸으니 말이다. 여기서 책의 세세한 내용에 대해 말할 생각은 없다. 그저 책을 읽고 내가 했던 생각들을 적어나가려 한다.
재희와 함께한 우정이란 이름 하에 함께 공유하며 만들어나갔던 그들만의 이야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존재였기에 큰 실망감으로 다가왔을 순간들을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고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챕터 [재희]를 읽으며 나에게는 이런 만남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청춘 같은 삶이 내게는 있었나 하는 생각에 약간은 후회스럽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어딘가의 기준에 갇힌 생활만을 해온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생활하던 그들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관계의 변화가 생기는 것들을 보며 관계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하면서 변화하는 삶 속에서도 이어지는 인연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챕터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을 보며, 이 정도면 가스라이팅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나는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 옆에서 불안감이 드는 사람이다.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가까이 두고 싶어 하지 않기에 주인공이 함께하는 사람이지만, 함께하는 캐릭터의 존재만으로 불편했다. 자신의 생각에만 사로잡혀 세상을 제대로 보질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실제 존재하기도 하고 만나보기도 했기에, 그런 사람들은 책에서나 현실에서나 어찌나 한결같은가 하는 맘으로 짜증을 내며 읽었다. (나의 두 번째 연애가 생각났다.)
챕터 [대도시의 사랑법]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
서로 사랑을 하고 만나는 순간들은 조금은 드라마틱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다. 내게도 그랬던 순간도 있었다. 서로 맘을 전하던 그날 커튼을 비추던 따스한 햇살이 생각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그다지 대단히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지 않은가.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을 한다. 다툼과 화해도 하고, 그렇게 사랑을 한다. 그러다 이별을 한다. 다시 상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함께 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그렇기에 상대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런 그들의 사랑에 대해 읽어가며, 나는 온전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것만 같다. 어딘가 겉핥기의 경험만 해본 게 아닌가 싶다.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기에 상대로부터의 마음조차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왔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마음을 가지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너여야만 했다? 그런 사람은 없었다. 함께했던 연인들은 그저 헤어지면 그만- 정도였다. 그렇기에 책을 읽은 후 나는 조금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
p.228
언젠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둘이 함께 누워 있던 밤에, 규호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카일리가 있음에도 그때 왜 선뜻 나와 사귀기로 했냐고.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그래서나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아니라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다고. 나는 그 말이 좋아서 계속 입안에 물을 머금듯이 되뇌었다.
-그러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