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건강검진 후, 혈액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있어 추가로 병원을 찾아간 후 더 큰 병원까지 가게 되었다. 의사의 조언에 따라 식이요법과 함께 건강관리를 하면 한동안 직접 싼 도시락만 먹어왔다. 그렇게 2주 정도 식이요법을 하던 중,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주말쯤에는 맛있는 거 하나 먹어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는 나에게 주는 보상 같은 거라고나 할까. 그렇게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면서, 너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내가 도시락으로 챙겨 먹는 것들과는 다른 것들이 먹고 싶었다. 또한 굳이 식당을 위해 먼 곳을 가고 싶지는 않아서 가까이에서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60년 영역사의 "도가니탕"을 파는 곳이다. 한 주를 주말에 먹을 도가니탕을 생각하며 보냈다.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물론 내 도시락도 맛있다.) '주말에는 도가니탕을 먹어야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주말이 되었고, 카페에서 낮동안 계획했던 작업들을 하고는 혹여나 사람들이 많아 웨이팅을 할까 두려워 조금 이른 저녁에 식당을 찾았다. 버스로 두 한 정거장이면 도착하는 곳이었다. 식당에 도착하니, 5시경이었음에도 이미 자리는 거의 만석이었다. 다행히 내가 앉을 한 자리쯤은 남아있어 바로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은 단출한 편이었다.
-도가니탕 보통/특 (+4000원)
-수육
-소주
-해장국
오래간만에 외식이니 고기가 더 듬뿍 담긴 "특"으로 시킬지 보통으로 시킬지 한참을 고민하였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건강 관리를 위해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으니 도가니탕 보통사이즈로 주문을 마친다.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단한 반찬들과 도가니탕이 나온다. 반찬으로는 배추김치(약간 겉절이), 고추장 마늘장아찌, 그리고 깍두기였다. 도가니탕을 한번 맛을 본다. 소금이 조금 필요해서 간을 맞춘다. 국물이 진한데 깔끔하다. 국물이 정말 잡내가 하나도 없이 정말이지 잘 끓여진 육수라서 감탄을 하며 숟가락으로 계속해서 국물을 떠먹었다. 안에 도가니도 듬뿍 들어있었기에 (나에겐 충분했다) 특을 시키지 않은 것을 후회하진 않았다. 생마늘을 좋아하진 않지만, 도가니탕을 먹다가 중간에 한번 매콤하게 마늘장아찌를 먹는 맛도 좋았다. 오래된 식당에서 꾸준히 반찬으로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도가니탕을 먹고는 혼자 이 국물을 먹는 게 아쉬웠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항상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나곤 한다. 이때가 추석 전이었기에, '추석에 여기서 도가니탕을 포장해 갈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먹고는 기분이 좋아 엄마에게도 전화를 하여 도가니탕에 대해 얘기를 했다. 다음에 함께 와보자는 말과 함께.
처음에 60년이 된 도가니탕이라고 해서, 뭐가 그리 특별할까 싶었다. 그냥 육수 내는 거 아닌가 했는데 맛을 보니 이 깔끔한 육수를 위해서는 분명 온 정성을 다해서 끓인 국물이 틀림없었다. 억지로 맛을 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끓여내며 좋은 맛을 모두 뽑아낸 그런 국물이었다. 따뜻한 도가니탕으로 몸을 데우고 쫄깃한 듯 부드러운 스지를 한 입 베어 먹으니 오래간만의 외식을 위한 이 날의 선택에는 한치의 후회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