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대한 회의와 성장에 대한 맹신 사이에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Queen의 Keep yourself alive의 킬링파트는 이 가사가 흘러나오는 부분이었다.
"Do you think you're better every day?"
너는 네가 매일 나아진다고 생각하니?
"No! I just two steps nearer to my grave."
아니 그냥 매일 내 무덤에 두 발자국 더 가까워질 뿐이지.
인생이라는게 그다지 나아질 것이 없다는 이 회의적인 생각은 나의 이십대 중반까지의 테마였다.
나는 이런 종류의 말들을 모으는 것이 참 좋았다.
노력하지 말라는 테마의 말들은 그 당시 해야하는 일들을 회피하고, 그 당시 내가 하고 싶었던 시시콜콜했던 것들에 집중하는 나의 생활을 합리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좋아하는 철학과 인문학 강의를 듣고 생각을 하고, 영화를 보고 생각을 하고, 만화책을 보고 생각을 했다. 학교 공부는 너무 재미 없었다. 사실 가끔은 재미있었지만 보통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힘든 수업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전공공부는 잘 안했다. 그리고 열심히 연애를 했다. 정말로 열심히 했다. 전공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장학금을 받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몇 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가 받은 성적표는 F였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이러다 어떻게 세상에 나가지 라는 불안감이 강해진다. 그리고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일에 노력을 쏟아부은 적이 없기에, 앞날이 막막하다. 합리화를 위한 하고 싶은 일 타령은 성적도 인간관계도 개판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이십대 후반에 나는 정말 180도 변했다. 매주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그렇게 싫어하던 자기계발서를 수십 수백 권씩 읽으면서, 전형적인 자기계발서형 인간이 되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바뀌게 된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늦은 나이에 군생활을 하고, 취업을 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운동을 하게 되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 인 것 같다. 인간의 뇌에서 충동을 조절하는 부분은 가장 늦게 완전해진다고 하고, 그 시기는 만 27세에서 29세 사이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어른들이 말하는 철이 사실은 뇌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말이었고, 나는 전형적인 사람으로, 그냥 남들이 다 철들 때쯤 나도 철이 들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변해버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No pain, No Gain'
고통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할 수 있다.
같은 말들이 되어버렸다.
매일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을 채찍질하고, 몰아세운다. 만족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생각하고, 그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 계획을 짠다. 그런데 인간이란 언제나 하자가 있기 때문에, 이전의 부족함은 잘 채워지지 않고, 새로운 부족함만 계속해서 늘어나 버린다. 그래서 언제나 부족한 인간이라고 스스로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달린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결국은 지치고 만다. 몸도. 마음도.
삶과 발전에 대한 태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노력해봤자 나아질 것 없다. 그냥 현재를 즐겨라.'
'노력하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 계속 노력해라'
둘 다 어딘가 일리가 있는거 같기도 하면서 둘 다 어딘가 틀린거 같은 그런 말들이다.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도를 도라고 할 수 있으면 제대로 된 도가 아니라는 말인데, 하나가 맞다고 주장하다보면 사실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제대로 된 정말로 맞는 것을 찾을 수 없는 뜻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즐겁다'와 '나아진다' 사실 이 두가지를 판단하는 것은 분명 자기 자신이 해야되는 것일텐데, 살다보면 즐거운 것도 나아지는 것도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과 남들이 해야한다는 기준들에 맞춰서 정작 '나'는 소외된 채로 살게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살다보면 결국엔 '즐겁다'와 '나아진다' 둘 다와 멀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둘 중에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결정하는 일에 '나'를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 그것 하나만은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