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소멸

by someformoflove

“사랑이 그렇게 사라지는데 감정이란 걸 어떻게 믿죠?”


누군가 이별 후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이 귀에 닿는 순간, 나는 몇 초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무슨 위로나 조언을 건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감정이라는 것은 그렇게 사라지기도 하고, 동시에 붙잡을 수도 없는 것이기에, 그 사람의 말은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한때 전부였던 사람이,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변해버린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함께했던 순간들, 공유했던 미소와 대화,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올랐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는 나를 감싸지 않고, 오히려 내 안에서 서서히 지워져 가는 그 경험을 나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기가 어려웠다. 내가 그 말에 어떤 대답을 한다고 해도, 그 상처를 더 깊게 만들까 두려웠다.


이별 후의 감정은 생각보다 깊은 허무함을 남긴다. 감정이라는 것은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처럼 흩어지기 쉽고, 그런 연약한 것에 다시 기대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한때는 그토록 강렬했던 마음들이, 사라지고 나면 그저 텅 빈 공간만 남는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나 싶은데, 어느 순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나는 그 감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에게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어차피 위로는,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냥 침묵했다. 그 침묵이 어떤 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어쩌면, 그 사람도 나처럼 그 감정의 허무함을 알아가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그 감정에 너무 자신을 던지지 않길. 그리고 그 상처 속에 갇혀버리지 않길. 감정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좌절하더라도, 그가 다시금 마음을 열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했다.


사랑이 사라지는 것, 감정이 옅어지는 것.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믿기 힘든 일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다. 어떤 감정은 지속되지 않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랑이 가짜였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순간순간이 진실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떠올렸다. 하지만 결론은 없었다. 그저, 그가 지금 느끼는 감정에 너무 매몰되지 않고, 언젠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찾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감정에 너무 깊이 잠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마음의 문을 닫지 않기를. 사랑이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감정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니까. 사랑은 때로는 사라지고, 때로는 옅어지기도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별은 그저 하나의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으로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깨닫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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