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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빈 Aug 25. 2021

어린 내가 쓰던 우산

이 우산 내 거야.




우리 집 현관문  우산꽂이에는 우산이 족히 5 이상 꽂혀있고

접을  있는 3 우산은 자동차 문짝 틈에, 신발장 서랍에,  찾을  없는 어딘가에 숨겨져 우리 집에는  10 이상의 우산이 있다.

가족은 네 명뿐인데 우산은 2.5배나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산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장우산만 쓰다 보니 휴대용 3 우산이 필요해 구매하고, 아이가 우산을 잃어버려 새로 구매하면 잃어버린 우산은 어딘가에서 다시 나타났으 남편은 퇴근길에 쏟아진 소나기에 편의점에서 우산을 급히 사 오곤 했다.



그렇게 우산은 번식하듯이 늘어났다.




이렇게 번식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우산이 너무 저렴했기 때문이다.

품질은 말하지 않겠다.

편의점에서는 비싼 가격에 비닐 같은 우산을 팔기도 하고, 다 있는 그곳엔 5천 원에도 질 좋은 우산을 팔기도 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조금이라도 구멍이 나거나 살짝 휘어진 우산도 맘 편히 버릴 수 있었고,

설사 우산을 잃어버렸다 해도 큰 아쉬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어린 시절, 그러니까 지금 우리 둘째 아이 나이랑 비슷한 때에(둘째 아이는 6살이다.) 사용하던 핑크색 우산이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앵두가 그려져 있었고  우산을 쓰고 찍은 사진도 찾아보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후에 어떤 이유에선지 핑크색과 파란색이 섞인 우산을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산은 초등학생  사용했을 것이다.




우산 따위를 이렇게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나는 장난감을 많이 가진 아이도 아니었고, 그다지 갖고 놀만한 것이 없던 때에 화려한 '핑크색' 우산이 꽤나 인상 깊었던  같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마당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우산을 펼쳐  안에 들어가 동생과 소꿉놀이하며 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비 오는  밖에  나가지 않는 어른이 되었고, 비 오는 날의 운치는 베란다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족하지만

내가 유치원~초등학생 시절 천둥번개가 치는 밤이면 아빠는 자는  깨워 집 앞에 주차된 차로 데려가 번개가 번쩍이는 모습을 구경시켜주곤 했다.


아, 이제 생각해보니 비 오는 날 유리창 밖을 바라보는 건 그때 아빠가 알려준 걸 따라 하는 건가?



어쨌든, 나에게 비와 핑크색 우산은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그런데 잊고 살다가도 문득 핑크색 우산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바로 아이를 키우는 지금이다.

딸아이를 키우며 화려한 우비는 있지만 우산은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공주들이 그려진 우산과 뽀통령이 그려진 우산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어쩜 2n 년이 지났는데도 내가 쓰던 그 우산만도 못한 디자인일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후, 내가 19년간 살던 어린 시절의 그 집에는 아빠가 살고 있다.

아빠는 보통 주말마다 고향에 내려갔고,

나도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사느라 아빠 집엔 자주 가지 못했다.

만나도 우리 집에서 만나거나 밖에서 외식을 하곤 했으니까.




그러다 종종 아빠 집에 가면 어릴 때 사용하던 물건들을 발견하곤 했는데 이미 내가 청소년기에 사용하던 물건들은 내 흥미를 끌기엔 너무 칙칙했다.






그렇게 우산이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갈 때쯤 아빠의 집에서  우산을 발견했다.

핑크색 우산과 핑크&파랑 우산을 말이다.





나는 너무 놀라 이 우산이 어디 있었냐고 물으니 아빠는 다락방에서 찾았다고 했다.

아빠 집은 1층짜리 주택이었지만 다락이 있는 구조였다. (언젠가 올라가 꼭 그 물건을 다 털어봐야지.)


이거 가져가도 되냐 물으니 네 거니까 가져가라고 쿨하게 건네주셨다.





나는 다음날 화장실에서  우산들을 펼쳐 씻으며 작은 구멍 한두 개를 발견했지만 우산의 상태는 너무나 좋았다. 녹슬지도 않고 휘어진 곳도 없었다.

나는 너무나 깨끗하고 완벽하게 보존된 고대 유물을 발견한 것처럼 들뜬 마음이었다.




우산을 잘 닦아 말리고 다시 돌돌 말아 우산꽂이에 끼워 넣으며 아빠에게 연락을 했다.

우산 상태가 너무 좋다고 말이다.




(전형적인 충남 사람인) 아빠는 우산이 명품이라고 돌려 말했지만(진짜 명품인지 확인해봤으나 역시나 아니었다.)  어린 시절엔 지금처럼 우산을 가벼이 생각하지 않았다. 잃어버렸다고 쉽게 다시 사주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만한 디자인도 찾기 힘들고 그땐 그렇게 물건 하나하나를 아꼈던  같다.







그렇게 다시 내 품에 돌아온 우산에 대한 재회의 기쁨도 잠시.

비가 오지 않으니 꺼내볼 수도 없었고 이제 내가 사용하기에 그 우산은 너무나 작았다.

그저 관상용으로 나는 현관을 지나치며 ‘그래 내가  우산을 썼었지하고 회상하곤 했다.





그러다 비가 온다.

나는 아이에게 장화를 신기고 내 장우산을 챙기며 같이 밖을 나서는데

아이가 "엄마 이거 내 거야?"하고 묻는다.



무얼 물어보는지 돌아보니 아이가 내 우산을 들고 있다.

내 핑크색 앵두 우산이다.




"그거? 엄마 건데~" 하니 아이가 운다.

왜 엄마만 핑크색 우산을 갖냐며 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제 내가 쓰기엔 너무 작은 우산이다. 우산을 물려주자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에게

그래. 엄마는 이제 이거 작아서 못써,  가져~"하고 쿨한 척해본다. 하지만 마음은 쓰리다.

진짜 내건데...





그렇게 아이가 눈물을 그치고 꽃이 그려진 핑크색 장화와 핑크색 앵두 우산을 들고 따라온다.

우리는 1층으로 내려가 우산을 펼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아이가 잘 따라오는지 바라봤는데, 맙소사 날 쏙 빼닮은 아이가 내 우산을 쓰고 있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듯한 신비한 감정을 느꼈다.



아이는 그날따라  웅덩이에서 물을 튀기며, 우산을 돌리며 그렇게 비를 만끽했다.

새 우산이 마음에 든 것이다.





차에서 아이에게  우산을  간직하라고 얘기해줬다. 엄마가 너처럼 어릴  쓰던 우산이라고 말하며.


아이도  우산을 쓰며 자신이 어린 시절에 사용하던 예쁜 우산이라고 기억할  같아 기뻤다.




그렇게 물건이 돌고 돌아 세대로 전해졌다.

이렇게 전해지는 물건이 많아서, 같이 공유하는 기억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은 너무 빠르게, 너무 자주, 너무 쉽게 물건을 교체하고, 잊고, 혀지고  구매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10개의 우산은 다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아무렇게나 꽂혀있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비단 우산뿐만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우리 가족이 사용하는 물건들이   의미 있게, 기억에 남게 쓰이면 어떨까 싶다.

그러려면 다 있는 그곳부터 끊어야 할까...? (자주 교체하는 생필품만 구매하기로 다짐해본다.)






어쨌든, 지금도 비가 내린다.

연이은 비 소식에 눅눅하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지만 내일도 아이는 나의 핑크색 우산을 쓰고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산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한다. 우산 하나로 나의 과거와 아이의 현재가 이어지고 있다.





쿨한 척하며 속으로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우산을 건네주었지만, 내일은 정말 진심을 담아(이번엔 정말 쿨하게) 우산은 완벽한 너의 것이라고 얘기해줘야지.



그래야 또 추억이 이어지지 않겠는가?




















(글을 마무리하며 생각해보니 아마 우산이 잘 보존된 것도 부모님 덕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어린 내가 우산을 아꼈어도 이렇게 멀쩡한 상태로 있었던 건 엄마나 아빠의 손길이 매번 닿았음이 틀림없다.


나도 아이가 우산 쓰고 돌아온 다음에는 잘 펼쳐 말리고 관리를 잘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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