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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May 16. 2021

스승의 날, J를 생각하며

사랑스런 웬수 J를 기억하며

선물을 말할 때  '마음을 담은 선물'이라는 표현을 흔하게 쓴다.

교사로서 그런 마음을 담은 선물을 받을 때 마음이 쿵! 내려앉을 때가 있다. 쿵! 하는 진동음은 심장에 그대로 전달되고 교사들은 그 순간 뻐근한 통증을 느낀다. 마음의 온도는 올라가고 켜켜이 쌓인 미움과 서운함은 봄눈처럼 녹는다. 아마 녹은 봄눈의 맛을 본다면 짠맛이 나지 않을까.


 스승의 날이면  잊지 못할 선물을 주었던 J가 늘 생각난다.

J가 건네 준 선물은 과거형 문장이 되었지만 선물에 담아 건넨 마음은 현재 진행형이다.

가끔이지만  '회의감'이라는 녀석이 찾아와서 의기소침해질 때는 J가 준 선물을 다시 꺼낸다.

그 선물은 일상이 시들해진 내게  다시 내일을 궁금하게 만들어 준다.




소읍의 남녀공학 특성화고 3학년 담임을 했을 때였다.

 (대도시보다는 지방이, 일반고보다는 특성화고가, 1.2학년보다는 3학년이, 남자 교사보다 여자 교사가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을 직무 연수에서 들었다. )

이런 모든 조건을 너무 조화롭고 완벽하게 갖춘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를 바라며 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다.  

일요일 마다 TV 화면에서 빠르게 위로 올라가는 개그콘서트 엔딩 크레디트가 너무 싫었다.

엔딩 크레디트는 악랄하게 '내일이면 월요일이야'라며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굳이

알려주는 심술쟁이 같았다. 

생활지도를 잘하는 동료 교사를 흘깃거리며 담임으로서 나는 나를 별로라고 여겼다.

아이들의 출결 상황은 담임의 생활지도 장악력을 은근히 과시하는 잣대였다. 빳빳하고 깨끗한 다른 반 출석부와 미인정 지각과 결석으로 너저분한 우리 반 출석부를 비교하면서 나는 나를 못마땅해했다.   


우리 반의 J는 학생과 VVIP였다.

복도를 지나며 거칠게 욕설하는 J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그널이었다.  교과 교사들은 J가 수업 중에 계속 떠들어서 힘들다며 -담임으로서 학생 관리를 좀 더 잘하라는 무언의 메시지- 하소연을 했다.

어느 날은 아침 조회 때 화장실 간다고 나간 J가 1교시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안절부절하는 나를 본 A의 제보를 받고 학교 앞  pC방으로 갔다.  

J는 롤 게임에 열중하느라 내가 뒤에 있는지도 모르고  막아! 거기말고라며 음성 채팅을 하며 줄기차게 자판 커서를 조종하고 있었다.


"J!  당장 끄고 나와라~"


지금 너를 엄청 참아주고 있으니 한 번에 말을 듣는 게 좋을 거라는 암시를 담아 근엄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당연히 다음 장면은 후다닥 컴퓨터를 끄고 잘못을 비는 J여야 했다.  그러나 J는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둔 채로 빠르게 말을 내뱉았다.


 "샘! 잠시만..잠시만요... 이것만 깨고 일어 날게요"



  

2학기가 되었다.

'신의 한 수'는 우연한 기회로 만들어졌다.

1학기 때 실장을 맡았던 아이가 사정이 생겨 실장을 다시 뽑게 됐다.

실장만 잘만 뽑아 놓으면 수월하게 일 년 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업계의 (?) 정설이다.

실장은 꼼꼼하게 담임을 잘 보좌할 수 있는 능력과 반 아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리더십을 갖춘 아이가 가장 이상적이다. 불행하게도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아이를 실장으로 만나는 행운은 나를 한참 비껴나 있었다.

최선을 택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최악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차악을 선택해야 했다.


그 순간 J의 수줍은 웃음이 떠올랐다.


J는 어쩌다(?) 칭찬을 받을 때면 동글동글한 얼굴에 덧니가 살짝 드러나게 수줍게 웃곤 했었다.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살짝 들어가는 J, 학생과 VVIP인 J의 수줍은 미소는 문장이 되어 내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제가요,  맨날  혼나기만 한다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줄 아셨죠?

  봐요.. 저 이만큼 하거든요.   선생님한테 칭찬받으니까 쑥스럽지만 기분은 좋아요"


 판타지 같은 몹쓸 기대감을 갖고 J에게 실장에 출마할 것을 권유했다.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나름 인정을 받고 있던 덕에 J는 반 투표를 거쳐 실장이 됐다.

J가 실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수업 전에는 항상 '실장! 인사'하며 인사 구호를 시켰고 전체 조회시간에는 반을 대표하여 항상 앞자리에 세웠다. 다른 아이들은 떠들어도 '너는 실장이니까..'라며 수업시간에 떠들어서는 안 된다는 압박도 넣었다.

 J가 찬 실장이라는 '완장'을 돋보이게 만들어 J가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만들고 싶었다.

동료 교사들은 J가 실장이 되고 나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며  '신의 한 수'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거기까지 였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아이들의 헹가레를 받는 키팅 선생의 감동적인 눈물은 영화일 뿐이었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이렇게 달라졌어요'라는 인각극장 식의 극적인 반전 또한 없었다.


흡연, 교사지시 불이행 등 학칙위반으로 누적된 벌점으로 J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J를 불렀다.


-나한테 서운하지?

-아니, 뭐 괜찮습니다. 잘한 것도 없는대요 뭘...

-너를  징계에 넘긴 것은 징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야. 한번쯤 너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좋겠어.


이상했던 것은 막 이야기를 마쳤을 때  J는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색함과 쑥스러움이 묘하게 섞인 듯한  웃음이었다.

곁을 내주지 않던 J가 어쩌다 칭찬을 했을 때 그 웃음이었고 연락이 닿지 않는 형을 그리워하며 슬몃 눈물을 훔치며 보았던 여릿한 웃음과 닮아있었다.


J는 외부 청소년 상담기관에서  5일간 특별교육을 받는 중징계를 받았다.

J가 특별교육을 받은 동안 한꺼번에 몰린 출장과 보강수업 그리고 시험문제 출제 등 고된 일정으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입술은 부르텄다. 혼자 몹시 앓다가 약을 먹고 잠을 청하려는데 J에게서 카톡이 왔다.


-선생님! 뭐하세요?

-응.. 좀 자려고.. 무슨 일 있어? 특별교육은 괜찮아?

-헤헤.. 낼이면 끝나요.. 샘~ 이거 좀 꼭 봐주세요..


곧이어 카톡 동영상이 도착했다.  정지 화면 속 J는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다..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빙글빙글 로딩이 끝난 화면 속 J는 스케치북을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1. 놀라셨죠?

2. 선생님한테 화내고 신경질 낸 거 죄송해요

3.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ㅠㅠ

4. 학교 다시 가면 선생님 말 잘 들을게요.

5.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6.  -끝-


스케치북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J는 지금까지 보던 미소 중에서 가장 쑥스럽게 입꼬리를 올리고 웃고 있었다.





신규였을 때 멘토였던 선배교사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다 주지 말라고 조언을 하셨습니다.

진심을 다해서 마음을 주었던 제자에게 상처를 받은 경험을 후배 교사는 격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겠지요. 마음을 다했던 제자의 돌변하는 모습을 겪을 때는  따귀를 맞는 기분입니다.  절대 비약이 아니고 정말 그랬습니다.

정말 믿었는데 울면서 했던 말까지 거짓말이란 것을 알 았을 때는 제자가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데려가고 죽까지 챙겨 보냈던 아이에게  '씨 X'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배신'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선생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메모를 오래 들여다 봅니다.

'선생님 짱! 수업 너무 재미있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오래 기억합니다.


 교사들은 다시 짝사랑을 시작합니다.  




선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세지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선물의 '값어치'가 아니라 선물의'가치'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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