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던 내가 타인의 말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 나의 롤모델 모모
모든 것을 의식하며 매 순간을 살 순 없지만 귀 기울여 모든 것 중 어떤 것이 말을 하는, 혹 내게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참 보람차고 훌륭한 일이 아닐까.
나는 <모모>라는 책에 나오는 한 신비로운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 캐릭터의 이름은 모모이다. 작은 고대 원형극장의 폐허가 있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 어느 날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 알 수 없는 '모모'가 나타나며 그 책은 시작된다. 여러 이야기들을 겪으며 이 책은 시간의 소중함과 '현재'의 가치성을 일깨워주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고 페이지를 접어가며, 시간과 관계에 대한 소중함보다도 모모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빠져버렸었다. 시골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모모는 어떻게 이방인에서 가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났을까. 지혜로워서 해결책을 잘 찾아줄 수 있었던 것일까. 매력적으로 생겨서 사람들을 사로잡았나. 그 힘은 다름 아닌 '경청'에 있었다. 입을 여는 대신 귀를 열고 모모는 모든 사람들의 말을 마음속 깊이 담아 들어주었다. 모모는 사람들의 얘기에 진심이었고,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었다.
내 주변에 내 복잡한 마음속을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고 마음속 깊이 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시간이 지날수록 제대로 듣는 사람들이 사라져 간다. 경청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도 내면을 공유하기보다 그저 소모적인 말들과 표면적인 이야기들로 대화거리를 채워가기도 한다. 내 말만 하고 살기에도 바쁜 세상이니까. 내게 필요한 말인지 아닌지 중요도를 가려서 귀를 열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도움 될 얘기들이 아니라면 들어줄 여유라고는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겐 어쩐지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도, 타인에게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듯하다. 타인을 들여다보지 않으니 자연히 타인에게 영감을 얻는 것도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이것은 곧 나에게도 적용이 되어서 내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이 온전히 하루에 주어지기보다는 그저 소모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보내는 날이 쌓여갔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늘 겨를이 없었고 바빴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잿빛 신사가 다녀갔던 것은 아닐까.
우리도 모르게 기억이 지워져 버린 것은 아닐까. <모모>라는 책 속 사람들처럼.
타인에게 귀를 닫을수록 내 머릿속도 막혀버리던 게 희한했다. 모모처럼 진심으로 사람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동의, 공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듣고만 있어도 상대방의 문제가 해결되고 고맙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본받고 싶고 모모처럼 따뜻한 내면으로 소중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입을 다물고 귀로 들리는 것들에만 집중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타인에게 귀를 열고 그들의 대화를 들어줄수록 신기한 일이 생겼다. 상대방은 고마워했고, 나는 때때로 상대방의 이야기로부터 복잡한 내 머릿속 생각들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내 머릿속을 내려놓고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도 더불어 생기게 되었다. 그 집중의 힘은 당연히 내게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 롤 모델은 모모였다. 그리고 그때부터였을까. 복잡한 일이 생길 때면 나는 내 앞에 모모가 앉아 내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것이 꽤나 도움이 되었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내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내 머릿속 문제들에 대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경청이라는 것을 배우고 그로 인해 집중의 힘을 알게 되었다. 경청과 집중의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집중하려는 것에 애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애정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인내심을 가지고 마음속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모든 핵심이었다.
우리는 각자 자기들의 사고관, 이해 방식으로 모든 일들을 받아들이고 타인의 말을 다 이해했다고 이야기할 때가 있다. 대체로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쉽게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것이던지 진정으로 잘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을 의식하며 매 순간을 살 순 없지만 귀 기울여 모든 것 중 어떤 것이 말을 하는, 혹 내게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참 보람차고 훌륭한 일이 아닐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끈기가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도 끈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경청은 애정 어린 집중과 인내, 끈기를 배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경청의 참된 힘을 알게 해 주고 '집중'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배우게 해 준 나의 롤모델 모모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