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도록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고전소설 데미안.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왠지 모를 방황과 심란함을 겪고 있던 내게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다는 묘한 기대감이 들어 읽게 되었던 책이다. 성인이 되어서 내용이 조각 기억으로 남았을 때에도 데미안은 희한하게도 인상 깊었다. 다시 읽고 싶던 책이라고 생각을 하다가 여행을 떠나던 날 자연스레 데미안을 가방에 챙겼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도 난 데미안을 처음 읽어보던 중학생의 시절처럼 방황을 하고 있었고, 길과 답을 찾고 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난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어쩌면 이 한 구절이 머릿속에 맴돌아 마음이 복잡하고 답을 찾길 원할 때면 본능적으로 집어 들게 되었던 걸지도 모른다. 방황할 때면 데미안이 떠올랐으니까.
"용기와 개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니까."
"두려움이 없는 강한 족속이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매우 견디기 힘들었겠지."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가 대부분 진실일 수 있지만 그 진실들이 언제나 사실 그대로 기록되고 올바로 해석돼 왔다고 볼 수는 없어."
"결국엔 모든 사람이 형제라고 할 수 있으니까, 강자가 약자를 죽인 것에 불과해."
이 문장들은 책에서 데미안이 말하는 문장들이지만, 수많은 데미안 서평, 감상문들 중 어떤 글에서도 찾아볼 순 없었던 문장이다. 어찌 보면 이야기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문장이니까. 내가 이 대사들을 되새기게 되었던 이유는 단지 마음 깊이 끌렸던 데미안 때문이었다. 데미안은 모든 것이 쉽고 명확하다는 듯이 멋지게 논리적으로, 그렇게 진심 어린 눈빛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철학과 종교와 자유와 투쟁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그는 결론적으로 나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고. 휘둘리거나 휩쓸리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될 때까지 흔들림 없이 나를 귀중한 손님처럼 대해주었고 존귀한 존재로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면 싱클레어가 되어 데미안을 만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읽으며 데미안이라는 존재를 구체화시킬수록 더더욱 빠져들게 되는 매력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데미안의 행동과 말들, 싱클레어와 함께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들이 너무 매력적이라 자극을 받는다. 그것은 때때로 내게 동기부여가 되어주기도 한다. 데미안을 읽을 때마다 그들은 자꾸만 내가 내 마음을 바라보고 싶게끔 만든다. 마음에 집중하고 사유하는 것이 더 나에게로 가까워지는 길이고, 그것이 마침내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그들이 좋다. 어느 날은 데미안을 읽고 한 단어가 떠올랐고 와닿았다. '탈피'. 이 제목으로 된 곡을 쓰게 될 정도로 데미안은 내게 참 인상 깊고 기분 좋은 끌림을 가져다주었다. '알을 깨고 나오면 새가 되어 신에게로 날아간다'는 표현을싱클레어가 마주하게 되는 장면, 불을 보며 철학과 사유하는 장면들은 데미안에서 내가 너무 사랑하는 장면들이다. 데미안은 함께 여정을 보내고 때론 기다려주기도 하며 모든 걸 벗어던지고 내가 되는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와 메리트, 방법에 대해 몸소 보여주고 가이드를 해준다. 내 마음속에 더 집중하고 귀 기울이게 될수록 원하는 바를 찾게 되고 이루게 될 것이라는 내용은 자기 계발 서적들의 핵심과도 닿아있었다.
자아의 발견, 자아확립, 자아성찰. 이것들은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궁금증 때문에라도 복잡한 머릿속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게 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인내심과 결연함, 단단함을 만들어주는 데미안. 이 책은 앞으로도 계속 내가 방황할 때마다 내 손에 들려있을 것이다. 답을 찾을 때면 앞으로도 나는 아마 데미안과 싱클레어와 함께할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