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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실 Oct 08. 2024

그 남자와 첼로

시월의 마지막 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날 그가 남자 란에 체크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대한민국의 당당했던 남자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당당한 남자가 아니다. 그는 할아버지이며 속이 빈 첼로다. 몇 달 전 모 대학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남자 란에 체크가 된 종이를 바라보면서 안도와 걱정을 함께 느낀 건 그가 팔순을 코앞에 둔 노인이라 어쩌면 영면의 순간을 그리 오래 남겨두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마을에서 소문난 효자였다. 수난의 시대 일제강점기를 겪은 아버지의 소원인 ‘내 아들 공무원 만들기’를 단번에 들어주었고 아버지를 위해 술과 고기를 떨어뜨리지 않았으며 동네에서 제일 먼저 집 안에 컬러 TV를 들여놓기도 했다. 또한, 그는 자기 직업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공휴일이나 주말에도 출근했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그날도 출근을 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으니까. 그러나 그는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나 오 남매의 아버지로서는 부족함이 많았다. 결혼기념일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으며 아내를 위해 속옷 한 장 사다 주는 살가움조차 발휘하지 않았다. 자식의 생일을 챙기는 일도 없었고 입학식이나 졸업식은 아예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잔정이라고는 일 푼어치도 없는, 상투만 틀지 않은 구시대 남자 그대로였다. 그 남자는 지그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근엄한 저음과 품격 있는 음색을 자랑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첼로 같은 존재였다.
 

그랬던 그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오십 고개를 넘어 중년 남자로 한껏 달아오를 만큼 올랐을 때였다. 공원의 노란 은행잎이 그 남자의 당당함처럼 최고로 아름답게 하늘을 뒤덮었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그는 하인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비를 맞아 무겁게 땅으로 떨어진 플라타너스 잎 같은 거래 하나가 그에게 주어졌다. 목숨을 연장하는 대신 목소리를 내놓을 것인지, 목소리를 쥐는 대신 목숨을 단축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목소리를 잃어버린다는 건 위엄 있는 가장의 자리도 직원들에게 불호령을 치는 상사의 자리도 위풍당당한 남자로서의 자리도 모두 버리는 일이었다. 쥘 수도 놓을 수도 없는 거래 앞에서 그는 망연자실했고 오랜 고민 끝에 아내와 자녀들의 판단에 따라 목소리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22년 전, 연인들에게는 마치 축제 날처럼 의미심장해진 시월의 마지막 날에 나는 H병원 수술대 위에서 아들을 얻었고, 공교롭게도 이틀 후 또 다른 대학병원 수술대 위에서 그는 목소리를 잃었다.    

인생이란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일들이 내 일이 되는 과정이라더라. 갑상샘이 떼어지고 림프샘이 도려내어지고 성대가 그의 목에서 잘려나갔다. 그렇게 식도를 제외한 목 주변 조직이 난도질당하는 수술을 두 차례나 받고 방사선치료를 받고 다른 환자들과 똑같은 순서를 밟은 뒤 그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스무 번도 넘게 시월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몇 해 전 후유증인 식도 천공으로 입원한 후 그는 병원을 자주 찾게 되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나는 늘 그와 동행을 한다. 말은 하지 않지만, 꽤 흐뭇한 모양이다. 가끔씩 바쁜 업무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다는 의사를 밝히면 전해줄 물건이 있다는 둥 보여줄 것이 있다는 둥 그럴싸한 핑계를 만들어 나를 병원 가는 길에 기필코 동참시키신다. 엊그제만 해도 그랬다. 나는 불참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급히 시간을 만들어 병원 대기실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라 비어있는 병원 대기실. 저만치에서 새로 산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덩그마니 앉아있는 그의 쓸쓸한 옆모습이 내 눈에 띄었다.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 슬그머니 옆자리에 앉으며 그를 불렀다.   

“아빠-”

까무룩 핏기 없는 얼굴로 앉아있던 늙은 남자가 아침 햇살같이 환하게 웃었다.    
  

두어 달 전 지인과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갔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커다란 첼로를 멘 어느 여학생과 마주쳤다. 양해를 구하고 한번 들어보았다.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가을은 현의 계절이라던가. 바이올린의 G현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했던가. 덩치 큰 첼로 소리가 나를 슬프게 한다. 그해 가을을 맞기 전까지 그는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자신만만했던 남자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늙고 야윈 작은 체구의 노인으로 변해버렸다. 변해버린 그의 모습이 무거운 듯 가벼운 여학생의 첼로를 닮았다. 무엇이 그의 속을 갉아먹었을까. 속이 텅 빈 고동색 첼로의 낮고 둔탁한 소리가 잃어버린 아빠의 목소리를 닮은 듯해, 가을이 깊어가는 이맘때면 내 마음속 뜰에 어김없이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린다.   

 창밖의 노란 은행잎이 아기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말이 없는 노래’라는 뜻을 가진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첼로 연주를 듣는다. 탄력을 잃고 거칠게 갈라지는 첼로 소리가 식도를 울려 간신히 내뱉는 남자의 꺼끌꺼끌한 목소리처럼 허공을 맴돌고, 무거운 현의 가락에 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월은 왔고 손을 맞잡은 연인들은 사랑하고 은행잎은 물들어 떨어지고 나는 잃어버린 그 남자의 본래 목소리를 미치도록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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