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께는 얇지만 수필 전문지답게 좋은 작품이 많았다. 내로라하는 수필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사유와 통찰을 다시 생각했다.
안성수발행인의 시 <수필 인간학> 이, 다음 페이지에는 김수오 편집장의 <조선의 신전, 종묘>가 실려 이 수필지의 위상을 가늠하게 했다.
이번 호에는 기획 <20C 수필 도서관 4>에 윤오영선생의 작품과 연혁이 실렸다.
이 어마한 작품들 속에 내 글로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표지 뒷장에 <나에게 수필은>이라며 수필가에게 의미를 물은 점이다.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봄직한 것이 아닐까.
<지는 꽃>
몇 달 전, 꽃다발을 받았다. 그런데 꽃다발 포장 아래에서 물커덩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자세히 보니 비닐 물주머니가 달려있었다. 시들지 말고 전해지기를 바라는 꽃집 주인의 배려처럼 다가왔다. 그래서였는지 이번 꽃다발은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평소처럼 곧장 화병에 꽂는다는 것이 그만 깜빡 잊고 포장 그대로 둔 채 며칠이 흘렀다. 그런데도 꽃은 여전히 우아하고 생생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즈음이면 꽃숭어리가 고개를 푹 수그린다거나 색을 잃게 마련인데, 이번 꽃은 그렇지 않았다. 꽃이 지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시든 꽃은 얼른 따주어야 다른 꽃도 덜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혹시 시든 꽃이 있으면 추려내려 다발 속을 살폈다. 꽃송이 속에 꽃집 광고지인 듯한 무언가가 있어서 꺼내 들었다. 그것은 꽃 보존제 샘플이었다. 아, 그래서였구나. 물주머니 속에 보존제가 섞여 있었구나. 그제야 꽃 선물에 물주머니가 따라오면 버리지 말고 화병에 같이 넣으라던 말이 생각났다. 갑자기 고민이 되었다. 지금이라도 보존제를 섞어 화병에 옮겨주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두어야 할까. 만약 꽃에 심리적으로 느끼는 행복 지수가 있다면 꽃은 어느 쪽을 선택할까. 고민도 잠시, 며칠이 지났는데 이제 와 꽃병에 꽂기도 애매해 나는 그냥 두고 보려 마음을 먹었다. 그 꽃이 진다. 꽃의 숙명이란 스러지는 순간까지도 아름다워야만 하는 것이런가. 겹겹이 싸안긴 포장지 속에서 물기를 잃은 꽃이 해쓱하게 웃으며 숨을 놓아가고 있다. 창백한 색깔이 흡사 악성 빈혈을 앓는 여인의 얼굴 같다. 핏기를 잃어가는 파리한 꽃에 코를 가까이 대어 본다. 시들어가면서도 향기만은 잃지 않으려 작정이라도 한 듯, 농후한 향기가 코끝을 타고 스며든다. 쥐면 바스러질 것 같은 꽃은 아직 모양을 흩트리지 않고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마지막 한 방울의 혈액 같은 물을 쥐어짜듯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어쩌다 축하받을 일이 생겨 꽃 선물을 받을 때가 있다. 뉘라서 꽃 선물을 마다하겠는가.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다른 선물과 달리 꽃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이며 존경이나 애정의 상징이라 받으면 야릇한 설렘까지도 생긴다. 마음을 바치고 싶어 꽃을 바친다고도 하지 않던가. 주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기쁨도 배가 되는 느낌이다. 꽃바구니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꽃다발을 받으면 나는 늘 오래 두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포장을 풀고 병에 꽂는다. 익히 들어서 아는 방법대로 물속에 잠기는 부분의 잎은 모두 떼어내고, 줄기는 사선으로 자른다. 물갈이에 게으름을 피우면 화병 속 물은 금세 미끈거리고, 꽃은 빨리 시들어 버린다. 꽃을 오래 두고 보려면 꽂기 전에 100도 물에 15초 정도 열탕 처리한 뒤 얼음을 넣은 찬물에 꽂는 방법이 있다. 아니면 락스 한두 방울을 화병 속에 넣으면 물때가 끼지 않아 오래 볼 수 있다고 한다. 어설픈 솜씨로 꽃을 꽂아서 거실 구석장에 올려두면 그늘져 있던 공간이 마치 햇살이 번진 듯 환해진다. 꽃병 앞을 지날 때면 발바닥에서조차 향기가 묻어날 것 같아 괜히 발꿈치를 들고 걸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때가 되면 시들다가 가버리는 게 꽃이 아니던가. 아무리 물갈이를 잘해도 결국 스러져가는 꽃. 받았던 꽃다발의 물주머니 속 물이 마르고 꽃도 시들었다. 이미 들어있는 보존제 때문이었을까. 이번 꽃은 다른 때보다 오래 아름다움을 뽐내며 때깔 곱게 버텨주었다. 살이 말라 가벼워진 꽃을 보니, 꽃다발을 받았던 날의 기쁨과 소중했던 시간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졌다. 꽃은 뻣뻣하고 앙상해진 줄기로 색깔마저 바래, 화려한 수의 같은 포장지 속에서 중증 환자인 양 조용히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필 그때, 무심코 켜둔 TV 화면이 시선을 잡아당겼다. 가습기가 켜진 병실 안, 꽃 보존제 같은 줄을 온몸에 매단 늙은 여인이 쓸쓸히 누워 있었다. 옆에 엎드려 잠든 보호자의 모습도 안쓰럽게 비쳤다.
언젠가 나도 지는 꽃처럼 스러질 터이다. 그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될까.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마른 꽃다발을 바라보며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날 나는 지는 꽃들 사이에서 TV 속 늙은 여인을 떠올리며 한참 동안 거실을 서성거렸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은 향기 하나가 천천히 스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