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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 않은 발견

감씨 숟가락

by 박은실


만추다. 고개를 돌려 볼 것도 없이, 도처에 가을이 널려있다.

핏빛 단풍과 노랑 은행잎이 서로 자기 색을 자랑하는 듯하다.

이들 틈에 졸참나무는 갈색 잎을 날리며 저들의 자랑질에 온화한 미소로 평정을 놓는다.

담장 안 감나무는 잎을 다 떨구고 주황색 열매를 매달고 있다.

풍요라는 말이 실감난다. 까치밥을 남겨 놓을 때까지 부디 안녕하기를.

수퍼마켓에는 단감이 손님을 유혹한다.

담장 안의 감에 홀린 마음을 마트 안 가판대 단감을 비닐봉지에 담는 것으로 위로한다.

단감이 제철이다. 가을이 제철이다.



『수필과 비평』 11월호에 졸작 「사소하지 않은 발견」을 발표했다. 짧은 글이니 전문을 소개하려 한다.

유명 가수는 가을에는 떠나지 말라고 했고, 어느 시인은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말자고도 했다.

글벗들이여! 부디 떠나지도 아프지도 말기를 바란다.





사소하지 않은 발견



주황색 단감이 제철이다. 쟁반 위에 놓고 조심스레 칼을 댄다. 과육 속에 박혔던 감 씨가 불빛에 화들짝 놀란 사슴 눈 같다. ‘단감’이라는 이름처럼 단단하면서 달다. 벌써 몇 개째인지 이러다가는 감 한 박스를 다 비워낼지도 모르겠다.

하나를 집어 들고 네가 마지막 타자라며 짐짓 다부진 손으로 자른다. 반으로 나뉘어 벌렁 자빠진 감. 그 속 씨앗도 반쪽으로 잘리면서 뜻밖의 숟가락 모양이 나타난다. 깜짝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다. 감 씨 속에 숟가락이 숨어 있다니.

그래, 세상 살아가려면 뭐든 잘 먹어야지. 제 밥숟가락 하나 대차게 들고 태어나는 게 어때서. 먹고 살아야 훗날도 기대할 수 있는 법. 아기가 태어날 때 젖병을 들고나오느냐 묻던 어릴 적 아들이 생각나 절로 웃음이 난다.

신기한 숟가락을 보려고 일부러 자르다가는 도리어 낭패를 볼지 모른다. 칼날이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밥숟가락 드는 일이 진짜로 힘들어질 수 있다. 이런 발견은 오로지 실수로 이뤄지길 바란다.

짙은 갈색 감 씨의 겉은 딱딱하고 매끈한 것에 반해, 그 속은 뜻밖에도 희다. 젤리 같은 하얀 배젖이 양분을 저장하고, 앙증맞은 숟가락 모양 배아가 줄기와 잎이 된다. 작은 숟가락이 커다란 나무가 된다니,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감 씨 숟가락에 얹힌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야.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거라고.” 감 씨의 독백처럼 들린다. 땅속에서 씨앗은 자신을 감추며 꿈을 품고, 때가 오면 움트리라. 작디작은 씨앗이 어디서 힘을 얻어 우람한 감나무로 자라나는 걸까. 그래서 마침내 가지 끝에 까치밥 서너 개만 남겨 우리로 하여 우러르게 하는 것일까.

두 쪽 난 씨앗을 펼쳐두고 지켜보았다. 시간이 흐르며 젤리가 마르자, 숟가락 모양도 서서히 스러졌다. 허물없이 숟가락이 사라지듯, 어쩌면 생명이란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감 씨 속 숟가락을 보노라니 한때 목걸이 만들어 걸던 감꽃이 흩날리고, 푸른 감잎이 거실 가득 출렁이는 듯하다. 겨자씨에 수미산이 들어있다는 말처럼, 작은 씨앗 속에서 더없이 크고 무량한 감나무를 본다.
이 저녁, 누군가에게는 흔했을지 모를 작은 발견이 내게는 절대로 사소하지 않다. 감 씨 속에서 불어온 바람이 내 마음 깊은 곳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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