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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Jul 29. 2022

HBO 미국 드리마 '인 트리트먼트(In treatment)'를 보면 정신과 의사가 꿈꾸는 이상향이 있다. 이 드라마가 처음 나왔을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진료 장면을 잘 묘사했다는 극찬을 들었기에 나 또한 공부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봤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각자의 사연을 가진 상담자들이 매주 찾아와 폴 웨스턴 박사와 대화를 나누고 그 장면을 보여준다. 각각의 사연은 의미있는 내용이 많지만 정작 내 관심은 내담자의 세계 이외에는 다른 것은 신경쓰지 않는 마음 편한 분위기, 고급스러운 의자와 따뜻한 느낌을 주는 넓은 면담실이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나면 2평 남짓한 상담실에서 마치 내 자신이 폴 웨스턴 박사(가브리엘 번 역)된 것처럼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한 쪽팔을 턱에 대고 뭔가 집중하고 있는 흉내내곤 했다. 

'음 내가 봐도... 멋있네' 

그리고 지금은 힘들어도 앞으로 그런 일을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없는 형편에 2년 이상 비싼 개인 상담을 받았던 것도 어쩌면 내 마음의 무의식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보다 뭔가 앞으로 꿈꿀 '멋'을 찾는 시도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현실은 상상보다 쓰다. 

처음 들어간 병원에서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사를 한지 오분도 채 되지 않아 직원들이 헐레벌떡 들어와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문제를 알렸다.

'선생님 오시자마자 죄송한데...'

'네?'

'담당 환자분이 도망갔습니다.' 

'네?'

'제가 끝까지 쫒아갔는데 고가에서 놓쳤습니다. 지금 직원분들도 다 나가서 찾고 있는데 어쩌죠?'

'끙...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요...'

그래도 담당의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책임감이 마지막 말을 속으로 삼키게 만들었다.   


도망간 사람을 찾는데 무의식의 해석이 무슨 소용이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어디 쓰이겠는가. 지금이야 혹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내가 직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우선 경찰에 연락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언제까지 기다릴지 머릿 속 매뉴얼대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일단 몸이 먼저 움직였다.


'같이 찾아봅시다.'

한 낮을 지나 가장 더운 오후 두 시였기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병원 주위를 돌면서 매의 눈으로 여기 저기 찾았다. 그러나 솔직히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다니는게 어디 쉬운일인가. 단지 나에게 주어진 단서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 을 찾아야 한다는 것 뿐이니 말이다.

'선생님, 이 정도 시간이면 이 주위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아요.'

옆에 같이 다니던 직원도 더위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한참을 돌다 서로 다른 장소를 찾아보기로 하고 나는 고가 아래 여러대 주차된 차를 보며 무심코 지난 중이었다. 


'응?'

순간 희끗한 환자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차와 차 사이 그늘진 공간에 한껏 움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 

순간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 

'저 사람이다.'

심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지금 내가 달려들거나 소리치면 환자가 도망갈 곳은 차도 밖에 없다. 오히려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 있는 곳이다. 또 혼자 개입하면 서로에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내 시선이 자신에게 향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상대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제 재빨리 돌아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하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달리느냐 마느냐. 

달리느냐 마느냐. 

...


그리고 

나는 조용히 그 옆을 지나쳤다.

분명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없을 것을 알면서 말이다. 

잘못하면 오히려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차피 집 밖에 갈 곳이 없을 것이다. 혼자 내 선택에 대한 이유를 곱씹으면서 병원에 도착할 때 즈음 마지막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할거였음...나 여태까지 뭐 한거지..'


병원에 돌아 왔을 땐 이미 경찰이 와 있었고 가족들에게도 연락된 상태였다. 그리고 저녁 때 가족들로부터 환자가 집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건네들었다. 큰 문제가 터지지 않아 안심이 됐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짜같은 내 모습에 미소 지어지지만, 당시에는 처음 마주한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던 건 분명하다.


사람사는 곳 어디나 다 비슷하고 드라마 같지는 않기에

멋있고 폼나게 사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멋지게 시작하고픈 나의 첫 출근 날 또한 내 바램에서 상당히 엇나갔다. 

그래도 이런 더운 날이 되면 '도망간 환자'와 '답도 없이 이를 찾아다니던 초짜 의사'를 떠올리며 한 번 피식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남았다. '폼'은 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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