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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Nov 10. 2022

20점 더 비기닝

'두근두근'

항상 첫 경험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아빠도 아들도.

유치원에서 받아쓰기를 앞둔 둘째가 어느새 훌쩍 컸다고 느낀 건 괜한 부모의 감상일까.

그래도 첫 시험이니 잘 보고 결과에 자신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아기.... 책상.... 사과....'

둘이 같이 앉아 내일 시험 칠 단어를 미리 써보고 짐짓 시험 분위기를 내봤다.

둘째가 우리 집에 없는 왼손잡이라 아직도 글씨 쓰는 순서를 보고 있자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꾹꾹 눌러쓰며 평소와 달리 진지한 얼굴의 표정을 보니 그래도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에 기특하다.

'음.  그래 첫 시험은 문제없겠다.'

확신을 갖고 둘은 눈빛을 교환하며 씩 웃었다.


그러나

다음날 받아 든 둘째의 시험 결과

'20점'

가지런히 1부터 10까지 적힌 번호 옆에 앞에 두 단어만 지우개로 여러 번 지웠다 썼다 한 흔적이 있을 뿐 나머지 8문제는 깨끗한 백지상태다.

그런데 풋. 웃음이 먼저 새어 나왔다.

아내가 먼저 결과를 알려줬는데 그때도 같이 웃었다.

결과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둘째 다운 점수라 생각했다. 오히려 유치원 선생님은 이런 결과에 대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그래도 부모로서 이 사태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도대체 그 20분의 시간 동안 네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냐.


아내와 이런저런 퍼즐을 맞춰봤다.

애가 첫 시험이니 긴장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처음 두 단어를 썼다 지웠다 반복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글쎄! 연습 때 잘했던 걸 보면 선생님이 불러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글쎄! 아이가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였는데 전날 연습 때 한 번만 확인한게 실수다. 단어 순서를 바꿔 불러보면 좋았을 텐데. 그럴까?


그런데 이 고민의 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 두 번째 받아쓰기를 준비하던 아이를 보며 아내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서야 아내는 아이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받아쓰기는 (남의 것을) 보지 않고 쓰는 거야'

컨닝하면 안 된다는, 아내로서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건냈던 말이 아이에게 심각한 고민을 남겼다.


‘보지 않고 쓴다?’


‘ 기역’

엄마가 단어를 불러주자 아이는 두 눈을 꾹 감았다.눈을 감으니 글씨는 두번째 칸에 끄적여졌다. 슬쩍 실눈을 뜨지만 제대로 보일리가 없다. 아이는 눈을 감고 더듬어가며 힘겹게 받아쓰기를 하며 애쓰고 있다. 끄적대는 왼 손에 오늘따라 힘이 더 들어갔다. 


너의 완벽한 받아쓰기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아이다운' 네 마음을 엿볼  있어서 부모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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