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기중 Dec 09. 2022

산타를 믿으세요?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수능 날도 지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 시즌이다. 아침 출근 전 아내가 딸 아이와 전날 나눈 이야기를 했다. 


'산타는 진실로 존재하는가'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준다는 미지의 존재. 

당신이 나한테 선물을 주는 이유는 단지 그것뿐인가요?

일년 전 어느 날 선물과 별개로 딸 아이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가 합리적 의심이 들만한 상황을 목격한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기도하던 그날 밤, 부모가 수근거리며 선물을 찾아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아무리 구글과 미항공우주국에서 산타 트랙킹을 하고 아이들에게 산타의 존재를 알리려 노력해도 이런 부모의 허술함에 아이의 꿈은 산산조각났다.


그리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엄마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산타는 진짜 있는거에요?'

'.....'

엄마는 잠시 말을 잊었다. 


'산타가 가져다 줄 선물을 부모가 신청해야하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걸 콕 짚어 알려주면 좋다'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설명을 할 것인가. 

'이제 너도 다 컸구나. 선물은 제공할테니 대신 아직 어린 둘쨰의 꿈은 깨지 않기로 하자.' 는 타협을 할 것 인가. 

하지만 둘째도 귀를 쫑긋세우며 엄마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아내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산전수전을 겪고 부모가 된 우리가 산타의 진실 앞에 이렇게 당황하다니. 


하지만 위기의 순간. 

'경청의 힘'이 도움이 됐다.

당황하면 답을 해야한다는 강박에 계속 뭔가를 설명하려는 욕구가 커진다. 하지만 아내는 이를 견뎠다. 그리고 아내가 어떤 대답하기 전 딸 아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그거 보고 산타가 엄마 아빠인가 했는데.. 지금은 산타를 믿고 있어요'

'응?'


이건 또 무슨 전개인가. 

아이의 꿈이 현실에 무너지는 걸 보고싶지 않았는데 정작 합리적 의심조차 이겨낸 동심에 아내는 이유가 궁금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날 밤 일이 너무 생생해서요.'

'그날 밤 일?'


아직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크리스마스 이브 날.

딸 아이는 그날 밤 경험을 처음으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겨울이 되면 창을 통해 찬기운이 새어 들어와 문풍지를 붙이고 창문에 뽁뽁인 것도 모자라 난방 텐트 안에 들어가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우풍을 막아준다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지만,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엄마까지 포함해서 세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자면 난방 텐트의 포근함은 배가 됐다. 대신 좁은 난방텐트에서 누구라도 몸부림을 치면, 다른 사람은 마치 김밥에서 삐져나온 속재료처럼 얼굴이나 다리가 텐트 밖으로 나왔다. 


그 날도 딸아이는 난방텐트 안에서 갓난 아기인 동생, 엄마와 함께 선물을 갖고 올 산타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푸르스름한 새벽, 아이는 찬공기에 살포시 잠에서 깼다. 몸부림에 얼굴만 텐트 밖에 빼꼼히 나와 있는 상황이다. 다시 눈을 감은 순간,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자기 이마에 뽀뽀를 쪽 하는게 아닌가. 놀란 딸 아이가 눈을 뜨니 앞에 길고 하얀 수염을 갖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미소지으며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딸아이는 무서움보다 산타할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음날 선물까지 발견했으니 딸 아이로서는 확신이 들었다.

'아직도 내 이마에 뽀뽀한 감촉이 생생해요'


아내는 나를 힐끗보지만, 당시 한참 당직으로 병원에서 자는 날이 많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새벽에 돌아와 딸 아이 이마에 뽀뽀를 해 준 기억은 없다. 

'어휴 무서워! 귀신 아냐?'

어린 둘째의 현실적인 반응에 순간 괴담이 된다.

그래도 첫째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산타를 만난 신비한 경험이다. 

물론 누군가 내 진료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잠들 때 환각(hypnogogic hallucination)과  잠에서 깰 때 환각(hypnopompic hallucination)은 정상적으로도 경험할 수 있는 반응이라는 다소 딱딱한 설명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크리스마스다. 

아비로선 딸 아이에게 그 순간이 산타가 찾아온 특별한 날로 남아 다행이다. 그것이 환상이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존재든, 산타든 말이다. 게다가 코카콜라 광고로 뉴욕에서 만들어진 상업적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산타가 아니라서 좋다. 최소한 아직 무언가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딸아이도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것이다.

  

'산타를 믿으세요?' 

아이들 앞에서 난 아직 고개를 끄덕여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서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는 동안 만큼은, 12월이 단순히 보험료를 정리하거나 연말정산하는 달이 아닌 크리스마스를 품은 좀 더 특별한 달로 기다려 질 것임은 분명하다. 

작가의 이전글 20점 더 비기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