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기중 Apr 04. 2023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

치매를 앓는 분들의 애도 (breavement)

'응 별일 없어, 잘 지냈어'

할머니는 원래 말 수가 적은 분이셨지만, 오늘따라 목소리에 힘이 없다.

같이 온 큰 아들이 조심스레 어머니 얼굴을 한 번 보고 동생의 부고를 알렸다.

'동생이 세상을 떴습니다.'


순간 할머니의 표정을 다시 한번 살피는데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슬픔이 담겨 있는 눈빛인데, 할머니의 감정은 일렁이지 않는다.

아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쩔 때는 아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둘째를 찾으세요. 어디 갔냐고. 빨리 데려오라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과 사별 후 겪는 슬픔을 애도 반응(breavement)이라 부른다. 정신과 의사 존 볼비(John Bowlby)는 이를 4 단계로 설명했는데, 첫 번째는 충격을 받고 무감각해지는 단계, 두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고 되찾고 싶어서 헤매는 단계. 세 번째는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우울, 절망감을 느끼는 단계, 마지막으로 점차 자신의 생활을 회복하면서 추스르는 단계로 나눴다.


이런 심리적 변화는 정상적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비통한 마음을 설명하기에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자식을 잃은 부모 앞에서는 말이다. 다 키운 자식을 떠나보낸 것에 절대 비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기다리던 출산 당일, 이유도 모른 채 첫 아이를 잃은 기억이 있다. 당시 이런 일이 나에게 왜 일어났는지, 이 고통의 무게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스스로 정리하기 전까지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쥐어짜는 듯한 고통과 분노, 무너지는 마음을 어떻게 사람의 말로 끄집어낼 수 없었기에 남몰래 동물의 소리를 '컥컥' 내뱉으며 가슴을 쳤다. 이 당시 내 감정의 흐름은 절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불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한 동안 자식을 잃은 부모를 앞에 두면 말문이 막혔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떤 '말'에 그 고통을 담아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어떤 정신의학 전공서적에도, 심리학에도 답을 찾기 어려웠다.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을 말에 담지 못하면, 밖으로 나오지 못한 감정은 마음 깊은 곳에서 더욱 곪고 뒤틀린 채 자리 잡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참척(慘慽)'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참척(慘慽)


참혹할 참(慘), 슬플 척(慽)을 써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애통함을 뜻한다. 2004년 출간된 박완서 작가님의 책,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이 단어를 발견했다. 57세에  박완서 선생님은 남편을 폐암으로 잃고 석 달 후 아들을 잃었다. 개인적으로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을 인간의 말로 온전히 표현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망, 고통, 자책, 의문,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로서 살아온 박완서 선생님이기에 더 처절하게 마주하고 글로 써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허기를 느끼는 것조차 떠나보낸 사람에 대한 미안함을 불러일으키고, 누군가의 위로는 당사자에게 비극을 상기시킬 뿐이다. 이런 마음을 담은 '참척'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터져버릴 것 같은 내 감정도 조금씩 담아낼 수 있을 듯했다.


감정은 오롯이 말에 담긴다. 그리고 말에 담긴 감정은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시간의 흐름 안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 때까지 조금씩 다듬어진다. 


하지만 치매를 앓는 분들은 안타깝게도 감정을 담아낼 '말'을 잃었다. 감당할 수 없을 감정만 남았기 때문에 그럴까? 그분들은 애도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감을 보이거나 자식을 떠나보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에 당황한 가족들은 상황이 더욱 나빠질까 두려워 죽음조차 알려야 할지 주저한다. 


그러나 우리의 불안으로 인해 그분들이 슬퍼할 시간을 앗아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비록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일지라도, 남들보다 말하는 능력을 잃었을지라도, 그렇기에 남들보다 고통을 삼키는데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대로 지켜봐 줬으면 한다. 가족들은 치매가 더욱 악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애도의 과정에서 치매가 악화되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된 경험은 없었다.


단지 남들보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상실을 기억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분들이 슬픔을 피하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으로 자녀에 대해 묻거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분들이 슬픔을 못 느끼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대해 막연히 돌려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세상을 '떠났다'는 표현조차 그분들에게는 또 다른 물리적 장소로 '떠났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때는 돌아가신 분과 우리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음을 이해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치매로 인해 언어 소통이 제한적이라면 같이 찍은 사진이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물건을 이용해 위로와 공감을 준비할 수 있다. 또는 어떤 위로 보다 두 팔로 꼭 껴안아 주거나 두 손을 잡고 다독여주는 것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독이는데 도움이 된다. 터치 요법(touch therapy: stay in touch)은 단기간이기는 하나 나쁜 치매 증상의 불안과 우울, 초조와 관련된 행동을 완하 시키거나 영양 섭취를 독려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Niels Viggo Hansen et al 2006) 터치의 감각은(sensation of touch) 모성애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옥시토신(oxytocin)의 분비를 자극하고 이는 초조와 우울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Ople의 연구에 따르면 감각의 자극(senrory stimulation)은 말을 통하지 않더라도 기억과 의미의 비언어적 패턴을 활성화(activate non-verbalizing pattterns of memories and meanings)시킬 수 있다. 치매로 언어 기능이 망가졌을지언정 떠나보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의 위안과 같은 감정을 수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수개월이 지나 요양보호사와 같이 방문한 할머니는 여전히 말이 없다. 별일 없었다는 듯 무심한 표정에 짧은 대답만 하는 건 여전하다. 안부 확인 후 모니터를 보며 처방 프로그램에서 약을 입력하다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요새 슬프거나 힘든 일은 없으셨어요?'

그리고 할머니의 눈치를 슬쩍 본다. 

아들의 죽음조차 슬퍼할 수 없는 업보가 무겁다.

할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한 듯 보이나 순간 대답한다.  

'자식을 먼저 보냈는데 왜 안 아프겠어. 그냥 아파. 계속 아파.'

그리고 할머니는 다시 입을 닫는다.

그래도 이제 됐다. 

그거면 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