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
이제 우리는 떠난다.
다시 일상으로, 그러나 달라진 나로.
푸른 하늘 아래,
고요한 커피 잔처럼 잔잔한 바다 위엔 작은 배들이 떠 있었고, 모래사장엔 투명한 게들이 바쁘게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며칠 사이 너무 익숙해져 버린 풍경.
이젠 눈을 감아도 그릴 수 있을 만큼 깊게 스며든 이곳의 아침.
바람도, 파도도 마치 우리 마음을 아는 듯,
고요하게 일렁였다.
여느 때 처럼 조식을 먹고, 산책을 했지만, 익숙한 풍경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함 속에 숨어 있던 이별의 기척이, 마치 낮은 파도처럼 가만히 다가와 발목을 적셨다.
수영장 물놀이조차 이별을 미루기 위한 우리만의 의식처럼 느껴졌다. 아들은 거침없이 수영장 깊은 쪽으로 뛰어들었고, 이제 팔을 뻗고,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며 물 위를 누볐다. 투정도 사라졌고, 내 눈엔 어느새 제법 의젓해 보였다.
"이 아이도 이 여행만큼이나 자랐구나."
내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찡해왔다.
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가 체크아웃 하는 사이 뛰다 넘어진 아들.
당황한 엄마, 그리고 뛰쳐 나온 직원들.
모두가 아이에게 집중했지만, 아들은 울음을 멈췄고, 그 순간 모두가 멈췄다.
그 장면은 웃겼지만, 엄마는 심각했고, 아들은 아픈 것보다 엄마에게 혼날까봐 울지도 못하고 눈치를 봐야했다.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못내 아쉬운 마음에 비행기표를 미리 끊지 않았다.
그러다 배에 오를 즈음, 비행기 표를 예약하려고 하니 여행사 사이트에 예약이 막혀 버렸다. 결국 공항에서 직접 발권해야 하는 상황.
"시간은 지체되고, 가격은 비싸질 것이다."
이런 생각에 하루 더 머물까 했지만, 라일레이는 이미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올 때도 쉽지 않았던 여정, 돌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배에서 내려자마자, 손님을 물색 중인 택시기사들이 몰려들었다.
공항으로 가는 사람은 우리 뿐.
기사들은 다른 여행객들에게로 발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예약을 하지 않은 탓에, 최대한 빨리 가서 항공권을 끊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앞섰다.
흥정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적당히 깎은 가격에 선불로 지불하고 탑승했지만, 공항에는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도착했다. 이미 끝난 협상이라 묵묵히 택시에서 내려야 했다.
크라비 로컬 공항의 카운터에선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손짓, 눈짓, 짧은 단어들로 방콕행 표를 간신히 발권했지만, 예상대로 아침보다 가격은 30%나 올라 있었다.
'예약은 필요없어. 그때 그때 결정하면 돼. 서두룰 필요없어'
그렇게 말했던 내가,
'조금만 빨리 예약했어도, 몇 만원은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여유가 쫒김으로 바뀌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여행이 현실로 변해가고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한발 더 현실에 닿아 있는 내 모습이 왠지 낯설고, 씁쓸했다.
이제 남은 여정은 방콕에서 하룻밤과 두 번의 낮.
방콕은 돌아갈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구간.
우리는 그 감정의 환승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