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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M Dec 22. 2021

2. 길고도 고독한 청춘

  2020년 서울시에서 발생한 고독사 중 10%가 30대 이하라는 기사를 보았다. 쓸쓸한 죽음 하나하나가 모두 비극적이지만 또래 청년들의 고독사가 늘었다는 말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기사는 청년 고독사의 약 40%가 자살이라고 했다. 청년 고독사 현장에서 나오는 유품들은 취업 준비 서적, 토익 교재, 마음 다잡기용 문구가 적혀있는 포스트잇이 대부분이라 한다. 지난해 취업 준비로 나름의 맘고생을 겪었던지라 죽음을 선택한 청년이 처했던 상황을 조금은 알 것 같아 따끔하게 아팠다. 

  반복되는 구직 실패와 고독한 1인 가구의 삶은 이제 다수 청년의 삶을 상징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5세에서 39세 가운데 취업해 본 적이 없는 청년들의 수는 2019년 23만 1천 명에서 2020년에는 28만 7천 명으로, 2021년에는 32만 명을 넘어섰다. 오죽하면 헤밍웨이의 가장 슬픈 여섯 단어(“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만큼이나 대한민국에서 슬픈 말이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라고 했을까.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해진 1인 가구(전체 가구의 31.7%) 중 30대 이하의 인구는 37%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청년들은 일자리와 학업을 위해 수도권에서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며 혹독한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요컨대 한국의 청년들은 오랜 기간 취업하지 못한 채 혼자살이 어른으로 길고도 고독한 청춘을 보내고 있다. 

  청년들의 분투로 늦어진 결혼과 출생은 어느덧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늦어진 취업, 늦어진 결혼, 늦어진 출생. 일이 이렇게 되자 기성세대와 세상은 안 그래도 조급한 청년들의 마음은 살피지 못한 채 이 모든 과정이 지연되지 않도록 애쓰고 독촉하는 듯하다. 아마 고독사한 청년들의 마음에는 이렇게 늦기만 하다간 평생 제 역할을 하는 어른이 될 순 없겠다는 체념이 깃들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비야르는 참신한 시각을 제공한다. 오늘날 청년들의 취업이나 결혼은 결코 늦어진 것이 아니라 청춘이 길어진 결과라고 말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청년기’라고 부를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났으며 비노동 여가가 중요해지면서 노동과 여가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중요해졌다. 정규직, 결혼, 집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어른이 되었던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청년들은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이렇다 할 지위도 수입도 없는, 긴 수업 과정”에 있다. 

  다소 낯선 이 사회학자는 우리에게 더 낯선 제안을 한다.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준비와 유예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법적·사회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학업, 사랑, 여행, 노동을 4가지 근본적인 청춘 수업으로 규정하고 이에 필요한 수단을 민주화하기 위한 청년 수당 및 각종 지원을 정책적 과제로 제시한다. 또한 유동적이고 불안정성이 증대한 삶의 리듬을 반영한 사회 모델을 구축하여 잦은 변화와 유동적인 삶도 “안전의 부재가 아니라 자유의 약속”으로 경험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현재 살고 있던 집에 청춘들을 욱여넣어 살게 하지 말고 새집을 지어주자는 말이다. 

  장 비야르의 주장처럼 청년들의 고군분투가 지각생 취급을 받기보단 과거보다 길어진 청춘을 살아내고 있다는 점을 모두가 받아들이길 원한다. 그래야만 과거의 잣대로 청년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모든 정책적 제안이 대한민국에서 실현 가능할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비야르의 제안은 비정규직 노동이 일상화되어 있고 출생률도 상대적으로 높은 프랑스의 현실을 반영한 제안일뿐더러 기본소득이나 코로나19 보상에 대한 논의도 이토록 지지부진한 나라에서 과감하게 현실화될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인구 절벽에 몰려있는 이 땅에서 그의 제안이 모두 실현될 때쯤이면 청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현재의 긴 청춘을 지탱해줄 수 있도록 작은 맞춤형 지원부터라도 조속히 실행되길 원한다.

  어느 유명 학자는 “이성으로 비관해도 의지로써 낙관하라”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자는 거짓된 희망보단 논리적 절망이 낫다고 했다. 그리고 분노하라고 했다. 어느 경우라도 너무 잔인하다. 논리적으로 이해한 절망을 의지나 분노로 극복하는 것은 소수의 초인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이제 청춘은 길고 고독해졌다. 그런 청춘을 견디는 데 필요한 힘은 오히려 청년 시인 황인찬의 ‘영원한 친구’에서처럼 “오늘은 죽어야지, 생각하면서 씩씩하게 잘 걷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또래 청년들이 고독사하지 않고 “자꾸만 쓰(이)고, 자꾸만 걷고, 씩씩하고 용감하게” 버텨주기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바란다.  


영원한 친구 (황인찬, 2015)

  이 시는 알아차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불 꺼진 가로등 아래로 걸어가는 저 사람 죽겠구나
  오늘 밤이구나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저녁이 오고 밤이 오고 겨울이 옵니다 몇 개의 문장은 더 쓰입니다 겨울밤에 죽기로 결심한 사람은 장을 보고 돌아와서 차를 마시고

  차분한 마음으로 오늘 있던 일을 다 적습니다
  차는 천천히 식어갑니다 열은 원래 흩어지는 것입니다
  이 시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저 사람은 집을 떠나고,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불이 꺼집니다 몇 개의 문장을 더 쓴다면 겨울밤 불 꺼진 가로등 아래로 걸어가는 저 사람이 걷는 모습이 나타나겠지요

  불 꺼진 가로등 아래로 걸어가는 저 사람
  써 놓고도 구분이 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걷고 있습니다

  오늘은 죽어야지, 생각하면서
  씩씩하게 잘 걷습니다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몸이 굳어 갑니다 몉 개의 문장을 더 쓰면 이 시는 끝이 날 겁니다

  그러나 몇 개의 문장은 자꾸만 쓰이고, 자꾸만 걷고, 씩씩하고 용감하게, 겨울밤은 자꾸만 추워지고,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몇 개의 문장은 더 쓰이지 않고

  그래도 사람은 걷고 시는 계속되고 겨울의 밤입니다
  차가 따뜻하군요

  이 시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아프니까 청춘...외로운 것도 청춘 때문인가요?" 2030 고독사 점점 늘어나, 하이닥, 2021.12.08. 링크: https://www.hidoc.co.kr/healthstory/news/C0000636256

장 비야르, 『기나긴 청춘』, 강대훈 옮김, 2021, 황소걸음.

통계청, 『2021 통계로 보는 1인 가구』, 2021. 

황인찬, 『희지의 세계』, 2015,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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